내일 아침은 눈을 뜨지 않아도 괜찮다고 몇 번이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겹게도, 정말 지겹게도 살아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는 불안정함. 당장 일 년 후에 내 모습조차 그려지지 않는 불확실함. 그 가운데서 나는 한 가지 확인받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있어. 나는 이렇게 살아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그렇게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고, 그렇게 세상에 대해서 악을 쓰고 발버둥치면서 도피성을 찾고 있었다. 나를 인정해 주는 공간,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 내가 기댈 수 있는 안전한 장소. 홈그라운드.


여기는 발이 닿지 않는 땅
발이 닿지 않는 땅에 나는 서 있다
이렇게 살아있다
발버둥치면서 너를 보며
그 이름을 불렀다

균열
돌을 던졌어
누가
누구였을까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발이 닿지 않는 땅에 나는 서 있다
그 땅에 네가 없어서
우두커니 홀로 서 있다

왜?

비어 있는 공간,  
허공에 흩어지는 소리,
그리고 정적. 
스스로 답을 찾아내라고 말하는 듯한,
그런 정적. 

답은 이미 알고 있다.
머리로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나는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떠다니고 있었다 
두어 번 고개를 주억거리면
어김없이 세계는 소용돌이치며 나를 덮친다

가볍디 가벼운 기억은 수면 위로 떠올라
공기 중에 흩어져버리고
몸은 공기방울을 뒤로 하고서―
침잠해간다
여기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곳
닿을 리 없는, 심해

세계는 몇 번이고 무너져내린다
도피성이란 허락되지 않았다는 듯이
나를 비웃듯이 무너져내린다
그리고 무너진 세계에는 내가 있다.
우두커니 남겨진 내가 있었다.
어차피 깨어질 줄 알면서도 나는 또다시 세계를 만들러 가겠지
깨어지지 않는 세계를 꿈꾸면서.
내가 살아있는 세계를 꿈꾸면서.

그런 생각을 해
내일 아침은 눈을 뜨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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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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