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자, 그 이중적인 위치

  흉자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이중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여자로 태어난 이상 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어렸을 때부터 핑크색과 리본,레이스 따위를 좋아하게끔 사회화되고, 예쁘게 꾸미고 다이어트하라는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초경을 시작하게 되면 월경을 하는 당사자가 되고, 임신과 출산을 강요당하겠지요.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경우에 따라 통금 때문에 아쉬워한 적도 있겠지요. 취업에서, 임금에서, 그리고 승진에서 차별을 경험합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여성혐오적 프레임에 그대로 노출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들 역시 가부장제 사회의 피해자라는 점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여성 집단을 쪼개 페미니스트- 차별주의자라는 틀에서 보면, 그 사람들은 가해자이며 기득권자로 위치하게 됩니다. 아직 페미니즘이 상식이 되지 않은 사회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밝히는 여성은 뒤에서 꼴페미다, 페미나치다 혹은 메갈/워마드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흉자는 그 뒷담에 얼마든지 동참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남자들과 함께 그 페미니스트들을 욕하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들 수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나도 여자지만 난 안 불편한데?" 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흉자의 아무말은 종종 한남의 그것 못지않게 해롭습니다. 한남의 아무말은 맨스플레인으로 취급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같은 논리라도 여성의 입에서 나오면 페미니스트들은 예민하고 비정상적인 여자들이 되니까요. 남성들은 정확히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줄 흉자들의 발언에만 주목하며, 정상적인 여성(흉자)와 비정상적인 여성(페미니스트)을 분할하여 페미니스트들을 매도합니다. 따라서 흉자는 남성권력을 지탱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을 가스라이팅하는 가해자입니다. 
연대와 비판 사이에서
이중적인 위치이기 때문에 우리는 세심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페미니즘이 보편적 여성을 위한 운동인 이상 그들도 페미니스트들이 싸워 쟁취한 권리를 함께 누려야 할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각종 성범죄, 데이트 폭력, 여성대상범죄의 피해자가 된다면 분노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흉자든 아니든 뭐가 중요한가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문제인데. 그러나 그들은 페미니스트들의 발목을 잡는 존재이므로 한남과 마찬가지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페미니스트인 이상 여성혐오적인 언어로 패는 건 지양해야겠지요.
  또한 흉자였다가 페미니스트가 된 사람은 일단 아묻따 환영해 줘야 합니다. 우리도 한때는 흉자였지 않았나요? 기존의 페미니스트들이 내가 과거에 어떤 개념녀짓을 했는지 일일이 캐묻지 않았던 것처럼, 굳이 그 사람의 과거를 들출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각성하기 전까지는 마땅히 비판/비난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흉자라는 단어의 필요성
  흉자라는 단어가 여성을 서열화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부장제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가해자로서  이 여성들을 설명하고 정의할 언어는 필요합니다. 또한 페미니스트들이 이 여성들을 '흉내자지'라는 모욕적인 언어로 부른다 해도, 그게 실제적인 억압이나 위협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들은 기득권인 남성의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에 비해 권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성범죄를 당해도 나는 상관없을 거라며 2차 가해하는 여성들이 흉자이고, 페밍아웃하면 뒤에서 당신을 매장하는 데 동참하는 여성들이 흉자입니다. 흉내자지라는 표현 하나만으로 따지는 것은 도덕적 검열이며, 오히려 미러링과 같이 대항적 발화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는 과도기로서 사용하고 있지만 흉자는 결과적으로 사라질 단어입니다. 과거에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을 비웃으며 개념녀를 자처하는 여성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여성의 선거권이 너무나 당연한 권리가 된 것처럼, 흉자라는 말은 페미니즘이 상식이 되는 때, 여성해방이 이루어지는 때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입니다.​

앨라이와 흉자?


    젠더 감수성이 높다고 타고난 성별 계급(sex class)이 바뀌진 않습니다. 잘 와닿지 않는다면, 앞서 흉자도 가부장제의 피해자라 설명한 부분을 다시 읽어보시길.우리가 흉자를 비판하고 한남 수거해가라고 조롱하는 것은 가부장제에서 그들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기득권자죠. 페미니스트들이 메갈이라고 쌍욕과 외모조롱을 당할 때 남성이라는 이유로 유니콘,개념남 취급받는 사람이라고요. 넥슨 사태 때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도 위협을 당할까봐 현실에서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를 못 입었지만, 남자인 당신은 티셔츠를 입어도 문제가 없었다고요. 

  차별적인 발언에 눈감고 귀막으라는 것이 아니고 본인의 사회적인 위치를 자각하라는 겁니다. 근거를 제시하면서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지적할지언정, 당신에겐 그 단어를 쓰면서 여성혐오하는 여성을 조롱할 자격이 없습니다. 


※현재는 명예남성, 혹은 명자보다 흉자가 널리 쓰이고 있으므로 '흉자'로 통일하여 표기하였다.  참고로 흉자는 흉내자지의 준말로, 사회의 여성혐오에 대해 무감각하며 여성혐오를 재생산하는 여성을 의미한다. 기존 갓치/코르셋/명자라는 삼분법이 존재하였으나 현재 갓치라는  표현은 잘 쓰이지 않게 되었고, 코르셋 역시 사람을 지칭하기보다 화장과 같은 여성성 규범을 뜻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흉자는 실질적으로 여성혐오를 깨닫지 못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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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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