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밀리 디킨슨의 밤> 을 함께 보고 토크콘서트를 함께하는 자리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

- 영화 감상평

작중에서 에밀리와 파트너 수잔의 관계는 겉으로 이성애 제도의 탈을 쓴 채로 유지된다. 학창시절에는 문제되지 않았지만, 망혼적령기에 수잔은 정상으로 보이는 길을 택한 것이다. 에밀리는 비혼여성으로 남았고, 수잔은 에밀리의 오랩충과 형식적으로 결혼해서 관계를 이어나간다. 영화에서는 격렬한 키스신을 통해 둘의 열정을 보여주지만 그 관계는 대외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것이었다. 에밀리가 수잔에게 쓴 수천 편의 시는 결국 수잔의 이름은 지워진 채로 사후에 출판되었다. 지워진 수잔의 이름은 근래에 와서야 복원되었다고. 영화는 지우개 지우는 소리를 끝으로 하며 크레딧이 올라갔고, 그 결말은 지금의 현실이기도 했기에 가슴 한켠이 저릿해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영화 상영회 장소를 대관할 때도 종교건물이라 레즈비언이 언급된 포스터를 대외적으로 부착하지 못하게 했다고.

또한 남성 중심적인 문단 역시 작중에서 드러난다. 에밀리가 출판사에 보낸 시는 ‘운이 맞지 않는다’며 퇴짜를 맞고, 수잔 또한 그가 생전에 출판할 수 있게끔 부탁을 해보지만 좀처럼 되지 않았다. 그가 생전에 시인으로서 성공했더라면 생애 끝자락에는 스스로 관계를 밝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일전에 본 <콜레트>와 그를 겹쳐 보기도 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레즈비언 관계성 자체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시인으로서 그가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해선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느꼈다.

영화 총평: 비가시화된 당대 여성 시인/레즈비언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너무 어둡지 않게 유쾌한 요소들을 적절히 섞어놓은 영화였다. 영상미도 좋았다. 여성의 불행 포르노는 지뢰라서,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어둡고 비참하게만 그려냈다면 내 성격상 보다 뛰쳐나갔을 것이다.

토크콘서트

그 자리에서 나는 비연애주의자 레즈비언이라고 선뜻 밝히기 어려웠다. 2시부터 시위를 뛰고 와서 내 언어로 엮어내기엔 너무 피곤하기도 했거니와, 대부분 파트너가 있거나 파트너를 만들 사람들인데 내 이야기가 얼마나 잘 전달될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애초에 영화부터가 두 여성의 평생의 로맨틱한 관계를 다뤘는데, 홀로서기를 택한 레즈비언도 있다는 발언이 이 자리에 ‘적절하긴’ 한 걸까. 머리가 복잡해졌고 나는 침묵하기를 택했다. 그러나 온라인 공간에서라도 분명히 말해야겠다.

첫번째 질문, "레즈비언의 역사는 어떻게 왜곡되고 탈취되었는가" 는 영화의 주제와 직접 관련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학교든 가정이든 직장이든 집단 내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보수적일수록 더하다) 개개인의 레즈비언들은 커밍아웃을 꺼린다. 완전히 벽장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에밀리 디킨슨처럼 사후에라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이들은 그냥 평범한 이성애자 여성쯤으로 기억될 것이다.

또한 레즈비언은 퀴어판에서는 퀴어란 이름으로 포괄적으로 묶이고, 동성애자로 게이와 함께 묶여왔다. 그러나 레즈비언은 여성으로서 특수한 이해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무시되어 왔기에 레즈비언들은 독자적인 정치세력화, 가시화를 위해 GettheLout 으로 나왔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았다. 당연히 뽑아낼 수 있는 주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두번째, 세번째 질문이었다.

- 두번째 질문. 로맨틱한 우정 하에서 누락되는 레즈비언 ? 혹은 그 프레임에서 어떻게 관계성을 확립/보증받나
여자 둘이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걸어도 커플이 아닌 친구로 독해되는 것, 소위 말하는 ‘헤녀우정’이 레즈비언 지우기라고들 한다.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언니가 있었을 때는 그 말에 쉽게 동의했다. 하지만 비연애주의자가 된 지금은 연애지상주의가 녹아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레즈비언 관계는 연애로만 한정되어야 하는 걸까? 당사자들이 레즈비언이어도 ‘연애가 아니라면’ 레즈비언 관계가 아닌 것인가? 연인이냐 친구냐 굳이 따지려 들지 않고 ‘친밀한 두 여성’의 모습 그 자체를 흐뭇하게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한국 사회에선 비혼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고, 여성들은 자기들의 친밀한 관계를 ‘연인’으로 정의하지 않아도 비혼이기 때문에 이성애가부장제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동거하는 n명의 여성들이 연인이든 친구든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 사실 혼자 살아도 충분하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로서 던져야 할 질문은 “그래서 이들이 가부장제를 위협하는가?”이며, 내 대답은 “그렇다”. 레즈비언은 파트너가 있을 때만 가부장제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다. 본질은 우리가 이성애 제도에 편입되지 않기 때문에 가부장제에 위협이 되는 것이다.

내가 비혼 친구들에게 느끼는 감정을 로맨틱한 연애감정이 아니라 ‘우정’으로 정의한다 해서 그것이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것으로 읽혀야 하는가. 연애감정이 없는 스킨십은 ‘헤녀우정’인가? 그런 해석은 레즈비언을 성애적인 존재로만 국한시키고, 우정을 연애보다 급이 낮은 관계라고 못박으면서 비연애주의 레즈비언들을 레즈비언 커뮤니티 밖으로 밀어낸다.

세 번째 질문. 레즈비언의 정치적 의제 고민하기
레즈비언이 문화컨텐츠 등으로 더 많이 가시화될 필요성, 그리고 불평등한 임금/고용 문제, 생활동반자법 및 동성결혼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1인가구 의료법 개정 문제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보충하고자 한다. 레즈비언은 ‘파트너가 있는 상태’가 디폴트인 것인가? 생활동반자법은 레즈비언이어도 파트너가 없는 여성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 동성결혼 법제화 역시 비혼 혹은 솔로로 남는 레즈비언을 또다시 누락시킨다.

일전에 비혼의제를 생각하며 만든 구호가 있다. “여자 혼자 잘 살면 둘이서도 잘 산다.” 경제력 문제 때문에 동거하는 경우가 제법 많을텐데, 여성빈곤 문제가 해결되면 굳이 ‘파트너’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스스로 법적 보호자가 되면 굳이 수술할 때 보호자로 싸인해줄 동반자가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여성 혼자서 누릴 수 있다면, 둘이면 더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다.

무엇보다도 여성은 일대일 관계로 묶여야 할 필요가 없다. 일대일로 여성을 구속하는 것, 여성이 혼자 살기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은 이성애가부장제의 오래된 관습이다. 이성애가부장제는 자기만의 온전한 삶을 영위하는 여성을 ‘히스테릭한/외로운/선택받지 못한’ 존재로 낙인찍고 여성의 노동력을 평가절하함으로써 남성에게 매이는 선택으로 이끈다. 그 선택의 끝은 망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와 경력단절이다. 물론 여성 간 일대일관계의 양상은 출산과 육아를 일반적으로 포함하지는 않는다.(입양해서 키우는 레즈비언들도 있다) 그러나 오직 나라는 한 사람에게 정신적, 물질적 자원을 쏟아부으라고 하면서 상대방의 사랑을 의심하고 확인하려 든다는 점에서 구속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또한 ‘영원한 나의 동반자’를 욕망하는 것도 이성애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실제로 보고듣는 현실의 레즈비언 연애썰을 생각하면 이것도 판타지)

종합

영화가 던지는 주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나는 개인적인 위치성 때문에 마냥 편하진 않았던 공간이었다. 레즈비언으로 느슨하게 묶여 있지만 나는 반-성애주의자anti-sexualist이다. (나는 무성애자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무성애는 스펙트럼으로 넓게 정의되기 때문에 반성애라는 표현을 썼다.) 아마도 나는 이 특수성 때문에 이번뿐 아니라 레즈비언 담론에서 지속적으로 위화감을 느낄 것 같다. 레즈비언 연속체라는 개념은 얼마나 유효한지, 레즈비언 재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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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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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직접 제작한 피켓을 들고서 혜화역 시위를 다녀왔다. 1만2천명이라는 많은 인원이 모인 시위였지만, 규모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나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시위가 일회성이 아니라 2,3차 시위로 이어질 것을 감안하여 비판 위주로 글을 써보려 한다.


수많은 인파가 모였음에도 시위는 온건함을 넘어 무해한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재기해"라는 말이 모욕죄가 아니라 고인 모독이라고 사용하지 말라는 권고가 내려왔다. 메갈리아-워마드를 거쳐 성립된 반격의 목소리는 모욕죄 요건에도 걸리지 않는데, 고작 6고인 모독9이라며 입막음당한 것이다. 그 PC함이 누구를 보호하고 지켰나. 아무것도 지키지 않았다. 시위의 본질을 왜곡하고 호도하니 쓰지 말라고? 언론은 어차피 알탕연대고 여성문제에 호의적인 건 기자들밖에 없다, 남기자가 아니라. 재기해도 쓰지 마, 뻐큐도 하지 마는 혜화역에 모인 "웜련"들의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일이었고, 자지카르텔이 허락하는 시위를 만들 뿐이다.


또한 끊임없이 "찍지마", "구속해"가 절반을 넘긴 것. "구속해"는 남경의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나았지만, "찍지 마" 는 피해자의 반격조차 되지 않는다. "찍지 마"는 여성을 피해자로 남성을 가해자로 전제하고, 여성의 피해만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15년 이전부터 학습해 왔듯이' 그건 한남들에게 통하는 언어가 아니다. 가해자들은 가해-피해 위치가 뒤집어질 때만, 자기가 조롱당하는 위치가 될 수 있을 때만 알아듣고서 발악한다. 그게 이번 시위의 발단이기도 하지 않았나.


그리고 앞에서 하는 퍼포먼스가 뒤쪽까지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상당히 유감이었다. 1) 메가폰을 써도 뒤쪽까지 구호가 전달되기까지는 한계가 있었는데, 이 점이 구호를 묻히게 하는 데 한몫 했다. 뒤에서 누군가 몰카충을 발견하고 찍지 말라고 소리치면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시위 구호보다 더 잘 들리니 관심은 분산되고 흐름이 계속 끊겼다. 그러나 몰카충을 처리하는 건 스텝과 경찰의 몫이고, 그래야만 한다. 2) 포돌이 캐릭터를 뿅망치로 때리고 발로 차는 퍼포먼스가 있었다는데 나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무해한 시위에서 그나마 직설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이었는데, 참여자들의 호응과 사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스크린이라도 설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적 시위가 아닌, 정적인 시위. 다 마무리할 때쯤에 와서야 인파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그마저도 혜화역 1번 출구까지 가는 게 아니라 시위 본부까지 걸어가는 데 그쳤다. 이 수많은 인파는 늦참한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나 겨우 움직였을 뿐, 지극히 정적이었다. 못해도 일반 행인들이 많이 출입하는 1,4번 출구까지는 움직이거나 제자리에서 파도타기 정도의 퍼포먼스로 세를 과시했어야 했다. 안전라인 바깥에서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 시위대는 그 라인 안에 '갇힌' 존재로 보이지 않았을까.


다음 시위는 더 색채가 뚜렷하고 한남 눈치 안 보는 페미니즘 집회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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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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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프로필 소개부터 시작하여 한국의 레즈비언 인권운동이 어땠는지(특히 어떤식으로 거부당했고, 남성 게이들과 왜 분리해야 했는지), 레즈비어니즘이란 무엇이고, 레즈비언 내 부치팸 이분법과 위계구조 및 현재 티부/일스 용어의 문제점, 트랜스젠더리즘이 왜 문제인지 잘 들을 수 있는 강의였습니다.

 뒷풀이때는 30명 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래디컬 페미들끼리만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이야기, 전략논의가 많이 나와서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다음번에도 또 이렇게 속시원한 강의를 들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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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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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는 한껏 치장한 바리데기의 모습과 머리가 하얗게 센 노장 바리데기의 모습을 위-아래 컷으로 대조하여 보여준다. 위 컷에는 바리데기 뒤에 수많은 여성들이 서 있다. 치장한 바리데기는 여성의 대표로서 부각되어 있다. 이는 사회에서 대표되는 전형적 여성성을 상징한다. 반면 아래 컷의 바리데기는 '혼자' 서 있다. 편하게 담배를 한대 피우는 노인의 모습으로. 그 모습은 사회적으로 주입된 '여성성'과는 거리가 멀다.

한편, 위 컷은 전쟁 전 동료들과 함께했던 바리데기의 모습이라면 아래는 동료를 잃은 노장(老將)의 모습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그 모습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보다 당당해 보인다. 고독의 시간을 버티며 자신을 지켜온 대장의 모습이 보인다. 고독의 시간을 보내며 홀로서기를 했다는 건 전후 장면을 통해 추론할 수 있다. 전쟁 가운데 죽는 사람도 있고, '진매'처럼 흔들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동료들을 잃고 변절하는 사람이 생길 때 불리한 전쟁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선 당연히 자신만의 주관을 세우고 버텨야만 한다.

전쟁을 계기로 변한 그의 모습으로부터 읽는다. 첫째, 불편한 치장은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 둘째, 그가 동료를 잃으며 홀로 견디는 시간을 겪었다는 것. 셋째, 치장을 버리고, 동료와 함께 서 있지 않은 모습이건만 오히려 훨씬 편안하고 당당해졌다는 것

​​
2.
용감한 바리데기, 효녀 바리데기, 유리천장을 부순 바리데기라는 설명을 읽어보자. 용감하다, 유리천장을 부쉈다는 말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어울린다. 그러나 효녀라는 수식어는 설화의 속성이지만 이 작품에선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다소 이질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바리데기 설화를 살펴보면, 죽음을 무릅쓰고 저승으로 갔으며, 여성의 몸으로 신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 때문에 크게 이상하지 않다. 작가는 '효녀'라는 수식어를 통해 설화의 이미지를 계승하며 '유리천장을 부쉈다'라는 말에서 바리데기라는 인물을 재해석하고 있다.


3.
이 장면도 눈여겨봐야 한다. 투항해서 남자로 태어나고 싶은 진매. 남성으로 살게 된다는 건 다른 억압당하는 여성을 두고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며 가부장적 권력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이다. 진매는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여성, 즉 TIF(trans-identified Female)으로 읽을 수도 있고, 빨간약을 먹었으나 토한 흉자로 읽을 수도 있다. 그는 여성의 위치를 거부하며, 남성의 권력을 원하지만 사회를 바꿀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개인주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진매에게 신라는 말한다. 그거 다 개소리라고. 아직도 남자들 말을 믿냐고. 그래. 실제로 가부장제 권력에 순응한 흉자가 한남과 동등한 권력을 누리나? TIF가 남성권력을 누릴 수 있나? 아니,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개념녀가 누리는 권력은 철저히 가부장제 질서에, 남성들에게 의존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것. TIF는 신체적 조건 때문에 남성사회에 편입되어도 그 끝자락을 차지하게 된다. 특히 한남게이들은 그를 남성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나는 종종 빨간약을 먹고 나서 너무 괴로워 그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괴롭다. 공포영화 한 편을 보면서도 그 안에 있는 여적여 프레임을 발견하고, 노래 가사는 죄다 남자한테 사랑받아야만 하는 의존적인 존재로 여성을 묘사한다. 시위에 나가선 몰카를 찍혔고 트라우마가 생겼다. 실친들을 설득하다가 걔네 머릿속에 박힌 너무나 견고한 여성혐오를 발견할 때 얼마나 답답한지. 내 실명을 걸고 메밍아웃을 했을 때 얼마나 많은 한남들이 친구를 끊었던지. 종종 나를 어떻게 씹고 있을지, 머리로 상상을 한다. 왜 나만 이렇게 불편해야 하냐고, 머리가 있으면 생각들 좀 하라고 혼잣말로 욕을 골백번도 더 했었다.

그래, 정확히 진매처럼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었을까.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신라가 말을 걸어왔다. 너는 이미 얼마나 한남들이 탐욕스럽고 서열에 목매다는지 충분히 알지 않느냐고. 한남들의 사랑인 개념녀 권력이 허상이라는 거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고. 그렇게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그 전으로는 결코 돌아가지 않아. 돌아갈 수 없어.

이번 화만으로는 진매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저 장면 자체는 빨간약을 먹고 괴로움에 돌아가고 싶다고 느꼈던 사람들의 정곡을 찌른다. 아직도 남자를 믿느냐라는 말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다. 그건 우리가 ^남페미^에게 통수를 맞았던 경험이기도 하고, 우리보다 한 세기를 앞서 살았던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이용당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해일조개론 역시 그 안에 포함되어 있고. 또한 기득권인 남성에겐 차별이 당연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지랄하지 않는 한 결코 파이를 나누지 않으리라는 이해이기도 하다.

덧) 보통 중간 리뷰 잘 안쓰는데, 감상 포인트가 꽤나 많은 회차여서 길게 써봄. 다음 화에서 작가가 바리데기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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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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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5.31일)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진행된 가정폭력 피해 성인자녀 집담회를 다녀왔습니다. 기대와 흥분, 한편으로는 초조함 등 복잡한 심경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집담회가 어땠는지 전체적인 진행- 참여한 계기- 집담회에서 내가 발언하고 싶었던 내용 전문(사실 그 중 극히 일부만 발언했다) - 느낀점으로 후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전체적인 진행


피해생존자 4명이 패널로 앞에서 우선적으로 자신의 피해경험을 나누며 이야기의 장을 열었고, 프로젝터로 ppt띄워놓고 미리 준비된 주제들을 넘기면서 사회자가 패널, 그리고 청중들에게 질문하면서 경험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70명이라는 인원이 순수한 피해자만 70명이 모인 것이 아니라, 여성의전화에서 현재 활동중인 사람들까지 수용하는 인원이 아니었나 싶어요. 생각보다 마이크 경쟁이 심하지 않았거든요.


 

집담회에 참석한 계기?


저는 페이스북이 주활동지인 페페미인데, 어느날 타임라인에 여성의전화 포스팅이 보이길래 이런 집담회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집담회 주제를 보니까 완전 제 이야기거든요? 온전히 저를 위한 자리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우선 다른 사람들의 피해경험을 듣고 내 경험도 나누면서 치유받고 싶었고, 또한 지금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상담을 받는 상황인데 제 존재, 그러니까 가정폭력을 경험한 성인자녀의 목소리가 지워지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정말 이건 나를 위해 준비된 자리라고 생각해서 집담회에 참석했습니다. 


말하고 싶었던 것(1) 폭력을 폭력이라 말하지 못했다


저는 아동/청소년 학대 피해당사자입니다. 저는 제 경험을 말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왜 폭력을 폭력이라 말하지 못했냐고요?

첫번째 이유: 이걸 가정폭력이라 불러도 되나요?


학교에서는 체벌 금지 조항이 생겼지만, 여전히 수많은 가정에서는 체벌이 공공연하게 훈육의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체벌의 수위는 전적으로 양육자에게[각주:1]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수위와 상관없이 모든 체벌은 전부 '사랑의 매'가 되고요. 신체적 폭력은 그렇게 합리화됩니다.
폭언은 어떤가요?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말, 변화의 가능성을 지워버리는 말,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말, 상품화하기, 위협, 쌍욕... 제가 실제로 들었던 말들 쭉 나열해 볼게요. 



이런 말들은 결국 '널 위한 잔소리'로 포장됩니다. 아동, 청소년기의 정서적 폭력은 성격발달,정체감 확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데도 불구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요.

  그리고 경제적인 위협 역시 가정폭력에 해당되는데, 저는 이런 유형도 있는줄 몰랐어요. 집 나가라고 말하는 것, 통장을 빼앗는 것, 재산을 함부로 처분하는 것 역시 가정폭력입니다. 보통 집 나가라고 말하는 양육자는 그 기저에 "그래봤자 나가서 먹고 살 돈이 없으니 들어오겠지"라는 심리가 깔려 있거든요. 정서적으로 독립을 원한다 한들,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저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통장을 뺏고 재산을 처분하는 것 역시 나의 소유물을 인정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려는 행위입니다.

(※성폭력, 방임도 폭력의 유형이나 제가 겪은 것은 아니기에 생략.)

두 번째 이유: 아무도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다 

저는 무언가 잘못되었고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자각했고, 거기에 가정폭력이라 이름붙이기 어려웠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위에서 설명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너 지금 그거 학대당하는 거야" 라고 확실하게 알려줬다면 이게 가정폭력인지 알았을 거예요.
왜 아무도 나한테 그게 가정폭력이라 말해주지 않았나요?
제가 스스로를 가정폭력 피해자로 정체화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입니다. 왜 아무도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을까, 내가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나는 덜 괴로웠을 텐데. 저는 그 이유에 대해 쭉 생각해 봤어요. 약식으로 사고의 흐름을 정리해 보자면,


가정폭력을 당하는 줄 몰라서=> 왜 몰랐을까?=> 가정폭력의 징후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가정폭력을 당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알리지 않는다=> 그건 '그 가정의 일'이니까/ 어떻게 도와줄지 몰라서


가정 바깥에 있는 사람들 중, 그 징후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건 유치원/초, 중등교사 정도가 될 것입니다. 물론 그 외에도 아동과 가까운 관계인 성인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신체적 폭력이 아니라 정서적 폭력이라면, 더욱 파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학교에서 소위 말하는 '범생이'인 경우에는 더더욱 사각지대에 놓입니다. 왜냐하면 선생님들은 규칙을 잘 지키고, 성적을 잘 받는 학생들에게는 가정에 특별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거든요. 저도 그렇게 사각지대에 있는 학생이었습니다.[각주:2]

세 번째 이유: 이탈자는 받아들일 수 없어- 전체주의 문화와 '정상적인' 가정


우리 사회에는 공동체주의의 탈을 쓴 전체주의 문화가 만연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집단을 벗어나면 안 되고, 소수의 의견은 예민하게 취급되며, 밖으로 나가 새로운 시도를 하겠단 사람을 굳이 그 안으로 억지로 밀어넣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디어에서는 화목한 가정 위주로 비추기 때문에 우리 집도 그래야만 할 것 같고, 문제 가정으로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입을 꾹 닫아버리게 됩니다. 설령, 정말 어렵게 말하게 되더라도 반응은 이런 식이죠 


"다른 집도 다 그래" 맞아요. 어제 사회자분이 말하셔서 처음 안 사실인데, 두 집 중에 한 집이 폭력 가정이라 하더라고요. 얼마나 흔해요? 정말 다른 집도 다 그래. 그런데 다른 집도 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느낀 감정이나 내 경험은 무시당해도 좋을까요? 
'정상적인' 가정은 이탈자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견디지 못해 집을 나온 가출은 비행으로 취급하며, "그래도 널 키워주셨잖니, 그래도 널 사랑하실거야"라는 말로 양육자에 대한 증오의 감정조차 허락하지 않아요.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강제적으로 연극을 해야 합니다. 

네 번째 이유: 피해자인 것도 서러운데, 편견 때문에 두 번 죽는다


 

나는 내가 원해서 폭력가정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피해자도 폭력가정을 자기 의지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피해자가 된 것은 내 책임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피해자이기 때문에 '인격/정신장애가 있다'거나, '가정폭력을 저지를 거야'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는 거예요.

실제로 성인이 될 때까지 가정폭력을 당한 피해자들 중에서는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피해자들이 모두 어딘가 문제있다는 식으로 낙인찍는 방식으로 이어져야만 하나요? 그런 태도야말로 우리가 피해자로서 발언하지 못하게 입막음하는 겁니다. 미리 판단하지 마세요. 또한, 실제로 치료받는 사람들에게 환자라며 시혜적인 태도로 동정한다거나, '역시 집안에 문제있는 사람은 사회적 부적응자야'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들은 피해자됨을 넘어서, 힘든 과정이지만 상처를 회복하고 치유하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세요. 

그리고, '폭력이 대물림된다'는 말은 정말 잘못되었습니다. 내가 원치않게 피해자가 된 것도 억울한데, 나를 예비 가해자로 만들고 있잖아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학생이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피해야 한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요. 더구나 피해자들이 반드시 다른 사람과 가정을 이루리라는 법도 없습니다. 이는 비혼주의자의 존재까지 지워버리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다섯번째 이유. 양가감정- 사랑과 증오, 해방과 부채감 사이의 줄타기

피해자들이 떠나지 못하게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건 바로 이 양가감정 때문입니다. 분명히 무언가 잘못되었고, 이게 폭력이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여전히 양육자는 날 사랑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양육자가 술주정을 하며 폭력을 가해도 다음날 그 사람은 미안하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합니다.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체벌해도 그 지옥같은 순간이 끝나면 많이 아팠냐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나를 안아줍니다. 

필자의 경우에는 애증의 감정과는 조금 다릅니다. 나를 투자상품쯤으로 여기며 본인의 잣대로 나의 성취를 재단하는 엄마가 너무 싫고 도망가고 싶지만, 동시에 분명히 물질적, 정서적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부채감을 느끼고 있어요. 

바로 이런 양가감정 때문에 우리는 감히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피해자라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이 나를 물질적, 정신적으로 지원해준 것, 그 사람의 사랑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러나 그대로 있으면 나는 계속 괴로울거고. 그렇게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말하고 싶었던 것(2) 지금, 폭력을 폭력이라 말하지 못한다


저는 가정폭력을 경험한 '성인'입니다. 특별히 저는 지금 성인인 상태를 조금 많이 강조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특별히 성인이기 때문에 경험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된 지금, 우리가 폭력을 폭력이라 말하지 못하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이유도 많이 겹치겠지만, 중복되지 않는 이유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경제적/정서적으로 독립한 상황이라 갈등이 종결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과거 아동, 청소년기에 경험한 것들을 가정폭력으로 인식했든 아니든 지금 내가 고통받지 않으니 굳이 피해경험을 나눌 필요성이 없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더구나 앞서 이야기한 3,4번째 이유는 더더욱 경험을 말하지 못하도록 입막음하고요. 피해를 나눠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더구나 말해봤자 나에게 비난이 돌아온다면, 누가 입을 열고 싶어할까요? 

둘째로, 스스로를 피해자로 정체화하는 과정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된 현 시점에서 폭력이 지속되건 그렇지 않건, 나 자신을 피해자로 정체화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끄집어내야 합니다. 내가 겪었던 경험들이 가정폭력으로 분류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니까요.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묻어두었던 기억과 감정을 되살려야 해요. 시간이 흘렀기에 그 당시만큼 아프진 않더라도, 굳이 아팠던 기억을 회상해 가며 내 자신을 피해자라고 말해야 할까요? 앞서 말한 양가감정도 스스로를 피해자로 정체화하기 어렵게 합니다. 

셋째로, 무엇보다 우리 존재가 가시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정폭력 피해자라 한다면 우리는 흔히 기혼 여성이나 아동/청소년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나는 기혼 여성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은 이미 너무 성장했으니 아동/청소년 학대 피해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기도 어렵거든요. 우리는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어요. 분명히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배제당해 왔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는 용기내어 가정폭력상담소를 방문했는데, 첫날부터 꽤 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 "젊은 애기 엄마인줄 알았어요" 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때 확실히 제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배제당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앞서 언급한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인자녀로서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정하고 피해경험을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아동/청소년기에 경험하는 학대는 성격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번 형성된 성격은 바꾸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또한 지금 당장은 더이상 폭력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치유되지 않은 기억은 무의식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가 언젠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어요. 그로 인해 내가 왜 이러는지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당신에게 상처가 있다고 흉보는 말이 아니에요. 아물지 않은 곳을 방치하지 말고 연고를 바르고 회복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내가, 당신이 피해경험을 말함으로써 성인자녀의 위치에서 피해경험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보다 확산되기 때문입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일 때, 그것은 더 이상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관련된 정말 유명한 구호가 있지요. (개인적으로 2nd wave의 구호 중 가장 좋아하는 문구입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느낀 점


1. 친부가 가해자, 친모와 자신이 피해자인 경우가 대다수였으며, 친모가 피해자고 자신을 목격자라고 하는 케이스도 많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자기 엄마에 대해서는 가해자라기보단 불쌍하다, 같은 피해자라는 동질감을 느끼는데 저는 친모= 주된 가해자, 친부는 방관자라 공감이 잘 안되었어요. 특히 PPT 내용에서도 "아빠는 그래도 날 사랑하는데..." 라는 문구가 들어갔는데, 친부만 가해자로 등장해서 친모가 가해자인 사람들, 혹은 모부 외에 다른 양육자가 가해자인 피해 생존자들을 배제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2. 발언기회가 한 번밖에 없어서 아쉬웠어요.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정말 많았는데, 앞에서 말한 분들과 겹치기도 했고, 워낙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위에 써놓은 것 외에도 하고 싶은 말은 많아요. 이 글에 구체적인 피해경험은 제대로 드러나 있지 않잖아요?) 실제로 발언할 때는 구조화가 잘 되지 않았던 듯. 
3. 주제 선택은 꽤 좋았어요. 특히 가해자들이 했던 말을 나눌 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한 경험담을 나눌 때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듯. 마지막 끝날 때 가서 가정폭력을 신고해 본 사람들의 경험담을 듣는 시간을 배치하는 등, 현실적인 해결책까지 제시하려 했던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4. 집담회 형식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70명이라는 인원에 여성의전화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도 많이 섞여 있었을 것 같지만, 3시간 동안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부 듣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비효율적이다. 특히 동일한 가정폭력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청중은 발언기회를 중복되지 않게끔 하면서 패널 중심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건 피해경험의 무게를 달리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대규모의 인원을 모아 진행하고자 했다면, 5-6명 정도의 인원으로 다수의 모둠을 구성한 후, 그 소모임에서 주제에 맞게 이야기를 나누며 피해 경험과 그때 느낀 감정 등을 정리한 후, 모둠별로 한 명씩 대표로 발언하게끔 하는 것이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이 경우 모든 사람들이 발언할 수 있고, 또한 그 경험들을 취합할 수 있으므로 효율적이었을 듯. 물론 이런 구성이었다 해도 선착순 70명은 너무 많아요. 아무리 많아도 절반 수준이어야 합니다. 
5. 사회자분께서 "2000년대에 카페를 만들고 소모임을 했는데 생각보다 흥하지 못했다"라고 하셨습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시금 이런 자리가 만들어졌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자 합니다. 피해자에서 배제되어 있던 성인자녀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데 힘써주셨으면. 다음번에도 가능하면 또 참석할텐데, 그 때는 어제보다 더 좋은 집담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원문은 2017년 6월 1일, 이전 블로그에 게시되었습니다.





  1. 굳이 양육자라 워딩한 이유는 대개 모부가 양육을 담당한다지만, 이혼 가정이라 한 사람만 담당하거나 혹은 조모부나 다른 친척들이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2. 현재 교직에 종사하는 분들을 마냥 탓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30여명을 다 철저하게 케어하기가 쉬운가요. 그러니까 선진국처럼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야 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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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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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저께 개봉한 페미니즘 역사의 일부를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를 벼르다가 오늘 보러 갔다. 영화에 대해 짧은 감상평을 두 줄로 요약하자면,
1. 당대의 시대상이 현실감 있게 잘 반영되었고 그 덕분에 영화를 보며 인내심이 +50 상승하였습니다.
2. 여성 운동의 대모님들 존경합니다. 저는 심각한 귀차니스트이나 분석글을 찌지 않을 수가 없네요.

이만 각설하고, <서프러제트에 관한 상식> 과 <주관적인 인물 분석> 을 하겠습니다.



1. 서프러제트: 여성 참정권 운동


서프러제트란, 20세기 초에 일어난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을 말한다. 이러한 여성 참정권 운동은 각 국가별로 다양하게 전개되었는데, 이 영화의 배경이 영국이므로 이 포스트에서는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에 한하여 구체적으로 설명을 덧붙이겠다.

영국에서 여성참정권 운동이 싹튼 것은 프랑스의 여성운동가 구즈의 영향을 받은 M.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옹호》에서였으나, 현실운동으로서 전개된 것은 1865년 런던에서 '여성참정권위원회'가 결성되고부터이다.

그해 여성참정권 요구를 정치강령으로 내걸고 하원에 당선된 J.S.밀은 67년의 선거법개정에 즈음하여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는 수정안을 제출했으나 부결되었다. 이를 계기로 각지에서 여성참정권위원회가 결성되었다.

69년 밀은 《여성의 예속》에서 여성참정권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였고 그해 의회선거에서 여성 납세자에게도 처음으로 선거권이 인정되었다. 70년대에는 거의 매년 여성참정권 법안이 하원에 제출되었으나 여성의 투표권이 정당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가 많았고, 84년 제3차선거법개정에서도 인정되지 않아 운동은 정체기에 들어갔다.

97년 '여성참정권협회전국동맹'이 결성되었다. 이 동맹은 지식인과 중산층을 구성원으로 하고 회합이나 청원·문서배포 등 온건한 방법으로 운동했다. 1903년 팽크허스트 모녀에 의해 여성노동자까지 포함한 '여성사회정치동맹' 이 결성되었으며 과격한 운동방법을 취했기 때문에 전투적 참정론자(militant suffragist)라 불렸다. 제1차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이 운동은 중단되었지만 1918년 국민대표법의 성립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18년 국민대표법에 의해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선거권·피선거권이 인정되었고 1928에 이르러서야 전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이 부여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

참고) 여성 참정권과 관련한 EBS 동영상
http://tvcast.naver.com/v/296699


2. 등장 인물 분석: 각 인물의 상징성


<페미니스트들>
모드 와츠
영화의 주인공으로, 그녀의 시선에 의해 사건이 서술된다.
영국의 노동자 계급의 여성으로, 본래는 그냥 여성 운동과는 관계없는 일반인이었고 서프러제트 단원들과 얽히기를 꺼려했으나, 현실에 회의감을 가지게 된 이후 적극적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에 가담하여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캐릭터를 분석할 때는, 그녀가 원래는 '일반인'이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원래는 일반인이었다. 평범한 한 개인이었다] 라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데? 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처음부터 페미니스트였던 사람은 없다. 여성 운동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으며, 일반인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존재이다.
좀더 사고를 확장해 본다면, 영화는 한 평범한 개인이 여성 운동가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당신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디스 엘린
모드와는 같은 동네 주민으로, 약방을 운영한다. 남편을 사장으로 내세우긴 했으나 실질적으로 환자를 보는 것은 그녀. 모드나 바이올렛과는 다르게 엘리트 여성이지만 여성 참정권 운동에 동참하고 있으며 수사관들에게는 "선동꾼"이라는 평을 받는다.
이 캐릭터가 보여주는 것은 계층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 인권을 향상시킨다는 목적으로 여성들이 단결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다만, 이것은 당시의 이야기이며 현대의 페미니즘 물결은 계층별로, 인종별로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바이올렛
주인공인 모드와는 직장 동료이다. 그녀를 서프러제트 단원이 되게끔 유도한 장본인. 영화 초-중반부까지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요구되는 지령이 과격해진데다 임신하게 되어 결국 손을 떼는 인물.
여성운동을 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으며, 가시적인 성과를 보기 힘들어 중간에 지쳐서 떠나는 페미니스트들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참고: 실제로, 과거 유명한 페미니스트들은 루머에 시달리고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최초로 여성의 교육권을 주장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경우에는 사생활이 논란이 되었으며 그녀의 대표 저서 <여성의 권리 옹호>는 당시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또한 <여성의 신비>를 저술한 베티 프리단의 경우 거칠고 오만하며 동성애를 혐오한다는 소문에 시달렸다. )

에밀리 데이비슨
여성 인권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높이기 위하여 경마대회에서 스스로 달리는 말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은 여성.
여성 참정권 운동은 단순히 여성들의 배부른 투정이 아니며,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담고 있으며, 여성 개인에게는 목숨을 걸 정도로 유의미한 투쟁이고 저항임을 시사하는 인물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
서프러제트들의 리더. 연설을 통해 수많은 여성들에게 깨우침을 주며 강한 행동력을 요구한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게끔 하기 위해서, 최후의 수단으로서 이들은 폭력을 택했습니다. 실제로 서프러제트와 관련된 자료들을 구글링하면,​


각종 건물 파괴, 방화, 채찍으로 때리기까지 함. 여성을 하위 존재로 규정하고 말이 안 통하는 남성들에 대한 분노를 행동으로 표출한 것.
현재 한국 사회의 경우에는 '여성 참정권'이 아니라, '여성 혐오'가 화두로 떠오른 상태이다. 지속적으로 행해진 여성 혐오에 대하여 여혐하지 말라고 '온건하게만 말하다' 메갈리아를 주축으로 [미러링]이라는 반격이 나왔는데, 사실 이것은 99% 온라인 상으로만 행해지고 있다.
(오프라인상으로 나오게 되면 신상이 털리고 사회적 매장을 당할 것이 뻔하므로. 오프에서는 상대적으로 일반인들에게 거부감이 없는 <프로젝트> 로 활동을 전개한다.)



<가부장제의 상징>
소니 와츠
-모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녀와 그녀를 통해 얻은 자식인 '조지'를 철저히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인물이다. 여성 운동가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성들의 시각을 대변한다.
- 또한, 모드가 감옥에 수감되기를 여러 번 하자 양육이 자신의 몫이 되었는데 조지를 제대로 양육할 수 없기 때문에 입양보낸다는 점에서 ,가사와 양육을 철저히 여성의 몫으로 치부하는 가부장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사실, 소니와 같이 맞벌이를 하면서도 가사와 양육을 아내에게만 지우는 남성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다. 거기에다 대리효도까지 있으니.. 3D(독박가사, 독박육아, 대리효도)가 아닐쏘냐.


타일러(테일러)
모드와 바이올렛이 일하는 공장의 관리자. 여성들에게는 더 많은 노동시간을 요구하면서 남성들보다 적은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어린 여공을 성추행하며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 소니와 마찬가지로, 여성을 단순히 남성의 부속품 정도로만 여긴다.
- 성추행하는 장면으로부터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으며, 고용주- 노동자라는 계급의 차이를 이용하여 자신보다 하위에 속하는 여성들을 착취하는 존재.
-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면접 때 성희롱 질문을 던지는 면접관 혹은 회사 내에서 외모 평가나 성추행을 일삼는 남성 상사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아더 스티드 수사관
서프러제트들의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특별히 파견된 수사관. 의회의 결정에 반발하는 여성들이 짓밟히고 끌려갈 때는 묵인하면서 방화와 기물파손이라는 이유로 여성 운동가들을 가두고 심문한다. 모드를 포함하여 일부 단원들을 회유하려고 시도하는데, [네가 하는 일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 남편에게로 돌아가]라는 비하와 조롱의 태도로 일관되어 있다.
- 자신들의 기득권을 나눠주기 싫어하는 남성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 소니, 타일러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법]을 중시한다.

모드를 비웃는 마을 사람들
여성운동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반대파를 의미한다. 기존 가부장제의 사고를 그대로 답습하여 사회 구조를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며, 여기에는 단순한 방관자들도 포함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대입하자면, 여성혐오에 대해 부정하거나 방관하는 사람들, "나는 개념녀니까 상관없어" 라고 김치녀-개념녀 프레임을 재생산하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 외의 인물들>
조지
모드와 소니 사이에 태어난 아들. '아버지의 법' 에 의해 강제로 입양되며, 성별은 남성이지만, 어린이였기 때문에 전혀 그 의사가 존중되지 않는다. '모드'에게 있어서는 여성운동을 하며 잃는 희생물이다.

성추행당하는 인물
(필자가 이름을 까먹었습니다. ) 가부장제, 자본가-노동자로 계급화된 사회에서 철저히 착취당하고 유린당하는 사회적 약자를 상징한다. 해당 인물이 어리다는 설정으로부터,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후대에게 그대로 답습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지금 우리는 선대 여성 운동가들의 피나는 투쟁의 결과로 여성 참정권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에 감사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150여년 전부터 많은 여성 운동가들이 차별을 타파하고자 노력했으나 아직까지도 성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세계 성평등지수 117위라는 통계가 나온(....)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 참정권]이 아니라 현재 우리 시대에 해당하는 여성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해야 할 것이다.
물론, 100여년 전과는 시대 상황도 많이 다르고, 페미니즘의 운동 방향도 엄청나게 다양해졌다. 그러므로 각자에게 맞는 노선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여성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떨까.

두려워하지 마라. 당신은 변화의 주체이다.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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