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7.9.21일경 feminist current에 실린 Meghan Murphy의 칼럼을 번역한 것입니다.
http://www.feministcurrent.com/2017/09/21/terf-isnt-slur-hate-speech/

지난주에, 60세의 여성이 자유발언대에서 여러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녀는 "젠더란 무엇인가"라는 연설을 하기 전, 하이드 공원의 역사적 코너를 집회 장소로 정한 무리의 여성들과 함께 있었다. 마리아 맥라클란(Maria MacLachlan)을 때리고 걷어찬 남성들은 이 여성들에 반대하기 위해서, 그리고 "젠더 정체성"을 둘러싼 법제화와 새로운 방식의 대화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자들은 그들의 분노와 선동적인 레토릭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구조화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여성들을 "TERF(트랜스배제적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하였다. TERF는 닥치게 만들고, 희롱하고, 때리고, 그렇지, 죽이기 위한 현대판 마녀사냥이다.


"젠더 정체성"개념에 의문을 갖는 페미니스트들이 폭행당하고 살해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칭 좌파들이 굉장히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트위터 알계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더 큰 플랫폼을 가진 남성들, 그러니까 공적으로 안티파(Antifa)와 미국민주사회주의자(DSA) 같은 집단에 소속된 남성들은 동지들의 지지를 받으며 "터프를 때리자", "TERF를 단두대로 보내"같은 메시지를 자랑스럽게 증폭시킨다.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의 표현을 빌리자면, 많은 사람들이 "TERF를 벽에 매달아"라고 말하기 위해 이용된다.

<시녀 이야기>에서 반역죄로 처형당해 매달린 시체들


그 비유는 놀랍게도(그리고 무섭게도) 이런 남성들의 의도에 대해선 진실된 입장이다. <시녀 이야기>의 "벽"에는 처형당한 사체들이 매달리는데, 종종 그 목에는 "젠더 반역"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린다.* 시체들은 다른 이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이용된다. 반역을 꿈꾸지 말고, 대항하지 말고, 가부장제의 질서를 거부하지 말라고. 그리고 이는 정확히 "TERF"라는 말을 사용하는 남성들이 여성에게 말하는 것들이다. "우리의 규율에 따르지 않으면 처벌하겠어"

자유발언대에서 일어난 폭력을 비난하기는커녕, 많은 트랜스활동가들과 자칭 좌파남성들은 이를 축하하고 장려했다.

 

TERF가 중립적인 단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용어는 정반대로 사용된다. 그건 여성들이 스스로를 위해 만들
어 달라고 한 용어가 아니다. "slut(창녀)" "cunt(보지년)" 내지는 "bitch(썅년)"처럼, "TERF"는 여성을 닥치게 하려고,
괴롭히려고, 비난하려고, 모욕하려고, 수치심을 주려고, 그리고 쫓아내려고 낙인찍는 말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 말은
위협이다. 내가 살면서 cunt, bitch, slut이란 말을 남자한테 들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나는 거의 항상 그들에게서 폭력을
당할 위협을 느꼈다. 이 말들 뒤에 있는 경멸하는 분노- 뒤따라가서 한대 갈기고 싶은 욕망-은 너무 자주 현실이 된다. 나는
항상 이 말이 나한테 "너는 피지배계급이란 걸" 대놓고 일깨워주기 위해 사용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여성이 얼마나 자신
감있고, 거칠며, 자기확신에 차 있고, 강하고, 용감한지랑은 상관없이, 이런 말들은 그녀를 종속적인 그 자리에 머물게 한
다.

"TERF"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의도적인 조작으로, 여성해방운동의 기반이 되기는커녕 페미니스트들의 사상과 운동을 배제적이라 재구조화한다. 달리 말해, 이는 여성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적 조직화와 가부장제에 대한 여성주의 분석의 토대가 되는 기초이론에 대한 공격이다.


예를 들어, “TERF”라 불리는 우리들은 아래 항목을 포함해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다고 낙인찍힌다.


•여성이 피억압자 계급의 사람들이라고 이해 (여기서 피억압자 계급이란, 케이트 밀렛이나 쉴라 제프리스가 말한 성별
계급/카스트)
•선천적인/내재된 젠더 개념에 문제제기
•"젠더 정체성"에 대해 대화하기* (역주: 주로 비판하는)
•아이들은 트랜지션 과정을 정말 겪어야 하는가 질문하기
•이미 “TERF”라고 낙인찍힌 여성과 어울리거나 그런 여성을 옹호
•여성억압과 남성우월주의의 근원은 생물학적 성별에 기반한다고 이해
•젠더는 강요당한 것이며, 억압적이고 여성과 남성 간의 위계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이해
•“트랜스여성은 여성이다” 같은 도그마나 주문에 문제제기
•여성전용공간을 지지
• “남성” 과 “여성”이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는 이데올로기에 논박하기

이런 점들은 범죄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페미니즘의 근본이다. 달리 말해 어떻게 가부장제가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선, 당신은 우선 누가 지배계급의 구성원이고 누가 피지배계급의 구성원인지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당신은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 구조적이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당신은 여성이 선천적으로 "여성적"이지 않으며 남성도 선천적으로 "남성적"이지 않다는 걸 이해해야만 한다. 당신은 기꺼이 비판적인 대화를 하고 주류 이데올로기와 주류 정치적 담론 양쪽 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당신은 가부장제가 여성의 재생산능력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되었으며, 그러므로 그들의 입장에서 여성의 생물학을 “하등한” 것으로 취급하는 일이 매우 핵심적이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당신은 페미니즘이 여성이 중심이 되는 운동이며 따라서 여성은 그들 자신의 해방을 위해 지배계급의 구성원(남성) 없이 그들끼리 모이고 조직화할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TERF”라고 할 때 지칭하는 건 “페미니스트”다. “건방진 여성”이다. 그들이 종종 “배제적”이라고 말할 때 그 말이 의미하는 건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을 배제한다” 가 아니라 “남성을 배제한다”는 뜻이다. 젠더 비순응성은 페미니즘이 환영한다 — 페미니즘은 젠더규범에 순응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순응하는 데 관심있다면, 우리는 요구받은 대로 앉아서 닥치겠지.


“TERF”가 항상 비속어이긴 했지만, 이 단어가 더 이상 단순한 욕설이 아니란 건 결국 분명해진다. 그 단어는 혐오발언이다.


페미니스트 언어학자이자 옥스포드 대학의 언어 및 커뮤니케이션 교수인 데보라 카메론은 어떤 단어가 비속어인지 판단할 때 우리가 반드시 체크해야 할 주요 질문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 단어는 부과되었나 혹은 단어가 가리키는 집단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그 단어가 증오나 경멸을 드러낸다고 흔히 받아들여지는가?
•그 단어에 대응하는 중립적인 말, 그러니까 증오나 경멸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동일한 집단을 의미하는 표현이 있는가?
•그 단어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이를 욕이라고 여기는가?


그래, 위 질문들의 답을 생각하면, 그 단어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부과되고, 항상 경멸적이라 인식되며, 대응하는 중립적인 말이 있다.(즉, 개인은 단순히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쓸 수 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은 지속적으로 그 단어가 욕이라고 말해 왔다 — “TERF” 는 두말할 나위 없이 욕이라고. 여성이 이 욕설의 주요 타겟이 된다는 점과 흔히 폭력의 위협(최근엔 현실로까지)이 따라온다는 걸 고려하면, 우리가 지금 씨름해야 할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자유발언대에서 발생한 폭력적인 사건에 뒤이어, 나는 온라인에서 남성들에게 수백 통의 살해협박을 받았다.(가해자들 중 한 명이 “terf들 몇명 강간해”라고 그 속내를 공공연하게 내비쳤던 건 일도 아니었다) 나뿐만이 아니다. 자유발언대에서 벌어진 폭력을 축하하고 옹호하는 남자들에게 문제제기한 여성은 누구나 타겟이 되었다. 이 모든 위협은 “TERF”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식으로 낙인찍혀 왔다. 구체적으로는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그 정치학에 대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퍼뜨리고(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사람들을 죽이려고 한다거나 제노사이드를 옹호한다면서), 젠더 비순응자로 정체화한 남성에 대한 억압자로 재구조화하며, 대개는 사악한 마녀로 먹칠해서 폭력을 당해도 싸다고.

 

 

학대를 정당화하고자 억압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거짓말을 퍼뜨리고 이들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행위는 인종차별주의자와 외국인혐오자들이 예로부터 사용한 전략이다.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을 저지르기 위해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 실제로, 나치가 반유대주의를 퍼뜨리고, 반대파들을 진압하며, 사람들이 또다른 집단을 적대하게 만드는 데 선동은 핵심적인 장치였다. 독일 신문에서는 반유대주의적인 이미지와 메시지를 담은 만화와 광고를 찍어냈다.


“당신이 충분히 큰 거짓말을 하고 이를 반복하면 사람들은 결국 믿는다.” 히틀러가 통치에 대해 남긴 말이다. 그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며 단순히 공포 혹은 지적 게으름에 따라 행동하고, 철저히 목적과 근간을 따지지 않고 시류에 편승할 뿐이라고 믿었다. 유대인 학살은 대중이 동조했으므로 성공적이었다 —왜냐하면 개개인은 나치가 퍼뜨린 미신과 거짓말을 믿었고, 그들이 비판적으로 생각하거나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혐오발언방지법은 그때그때 다르게 적용되며, 애매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증오하거나 폭력을 저지르는 것 혹은 제노사이드를 옹호하는 일이 혐오발언에 해당된다는 걸 알게끔 하려는 의도임을 서술하고 있다.


젠더정체성 이데올로기에 문제제기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종종 제노사이드를 옹호한다며 (전략적으로)비난의 대상이 되므로, 확실히 해두자. “제노사이드”는 생물학적 성별이 실재라는 주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타고난 것이라는 사상에 문제제기하는 것도 아니며, 여성들만을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제노사이드는 다음을 뜻한다

:식별가능한 집단의 구성원들을 살해하거나, 그런 집단을 물적으로 파괴하려고 고의적으로 삶의 조건을 제약하는 일

 

달리 말해서, 페미니스트들은 전부 살해당하고,해고되고, 집을 잃고, 괴롭힘당하며, 침묵당하고,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학대당하고, 강제 노동 수용소에 보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https://twitter.com/laurelaiissexy/status/90995557719916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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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제노사이드를 옹호하거나 장려하는 일은 기소해야 할 위법행위다. 마찬가지로, 식별가능한 집단에 대해 혐오를 조장하거나, 평화를 깨뜨릴 것처럼 보이는 식별가능한 집단에 대해 공적으로 혐오/폭력을 선동하는 말을 하는 것(i.e. 예:자유발언대에서 일어난 사건)도 기소가능한 위법행위다.


그러나 이런 법률은 강제하기 어렵다. 이것이 필연적으로 나쁘단 건 아니다.우리는 좋든 싫든 트위터에서 말하는 걸로 사람들에게 빚져서는 안 된다. 확실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남성들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미디어나 다른 기관이 혐오발언을 일상화하는 것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는 일이다.


따라서 법을 넘어서서 의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미디어가 혐오 발언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만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출판물은 흑인을 설명하기 위해 n-word(흑인비하표현)을 사용해선 안 되고 유대인을 설명하기 위해 “kike”란 단어를 쓸 수 없다. 이런 표현이 인종차별주의를 강화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며 그리고/또한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억압당해 온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욕하는 일임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기관, 그리고 정부당국이 특정한 용어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조장하는 데 사용된다는 걸 알게 되면, 이런 단어의 사용을 장려하지 못하게 비난하거나, 단어 사용을 삼가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미디어 창구에서 아직도 그 단어를 무비판적으로 쓰고 있는 걸 목격한다.

“TERF”라 불리는 사람들을 폭력, 죽음, 그리고 제노사이드의 위협에 빠뜨리는 대다수는 남성이다. 이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어떤 면에서, 이 단어는 여성혐오적인 법안을 공적으로 만들지 못하게 막거나 그게 아니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옹호하면서 스스로를 좌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바쳐졌다. 그들이 "진보적일" 자격은 정치적 올바름(PC)의 허울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TERF”로 낙인찍힌 여성이 나치와 차별주의자랑 비교당하며, 트랜스젠더 운동이 소외된
사람들의 관심사에 연대하라고(명시적인 반페미니즘적, 개인주의적 이데올로기에도 불구하고) 요구하기 때문에 이 좌파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법한 구실을 획득한다. 사실, 그들은 즐기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마치 동지들한테 환영받으며 “썅년”*이라 고래고래 소리질러도 아무도 제동을 걸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다루기 힘든 특정한 여성을 겨냥해서“때리거나”불태우고 싶어한다면 아마 “마녀”가 더 정확할지도?)


 


https://twitter.com/petercoffin/status/909608113224978433
만약 “TERF” 가 단순히 비방하고, 침묵시키고, 모욕을 주고, 차별하며, 폭력을 조장하는 걸 넘어서 목적이 분명하고, 정확
하며, 유용한 무언가를 전달하는 단어라면 이는 아마도 중립적이거나 해롭지 않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 단어 자체
가 정치적으로 부정직하고 사실을 와전하기 때문에,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만큼 그 의도가 비
방, 폄하, 위협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 단어는 위험하고 정말 혐오발언의 자격요건을 충족한다. 예전부터 여성들이 이게
“TERF”의 결과가 될 것이라며 지적해온 반면, 그들은 흔히 무시당했다. 우리에겐 이제 “TERF”라는 붓으로 여성을 먹칠하
는 게 실질적인 신체적 폭력을 불러온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 당신이 우리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이제는 더 이
상 변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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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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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자: Charles Rae

역자: Team Hermes 남혜리

원제목: The differences between Mainstream and Radical Feminism[각주:1]

출처: 링크


※초벌번역은 작년 4월 7일경 역자의 페이스북에 게시하였으나 원저자가 글 내용을 수정함에 따라 재번역하였다.


최근, 두 페미니즘 노선 사이에 팽팽한 온라인 논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여성들이 그들의 차이점을 뒤로하고 가부장제 종말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여긴다. 불행히도,두 페미니즘 노선의 이데올로기는 서로에 대한 안티테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차이점이 확실히 정립되었고 차이를 좁힐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의 점 찍힌 항목들은 제 3물결(자유주의 페미니즘)과 제 2/4물결(급진주의 페미니즘) 간 최근의 분명한 차이점들에 대해 개괄한다.


자유주의/주류 페미니즘


  • 페미니즘의 정의: 성 평등
  • 정치적, 사적 영역에서의 평등에 대한 투쟁
  • 기회와 권리 획득에 대한 요구
  • 가부장제는 남성에게도 피해를 준다(=맨 박스)고 말한다
  • 주류

- 유명인사의 지지

- 국가적인 플랫폼

- 잘 알려진 메시지들: 평등한 결혼, 종교적 평등, 동일 임금, 임신중단권


  • 젠더 개량하기

- 정체성의 정치학

- 생물학에 기반을 두지 않음

- 개인은 젠더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

- '여성성'에 대한 비판을 여성혐오로 간주

- 여성성이 역량을 강화한다고 주장


  • 트랜스여성 포용적

-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남성[각주:2]을 페미니즘이 받아들일 것을 추구함 


  • 모든 여성전용 공간을 여성으로 정체화한 남성에게 개방하길 원함

- 탈의실, 화장실, 스포츠팀 등등

- 여성전용 가정폭력 쉼터, 여성전용 안전지대

- 여성의 리더십역할, 여성들을 위한 기회, 펀딩, 장학금

- 컨벤션, 축제, 모임 등


  • 성적자유주의, (aka SM지지자)

- 여성에게 자율권을 주는 수단으로 성노동을 언급

- 성매매를 여성을 위한 실용적인 경제적 기회로 취급

- 건강한 성적 충동이라며 사디즘을 지지함(BDSM)


  • 폭넓은 교차성 

- 3물결에선 페미니즘은 모든 사람을 끌어안아야 하는 운동이라 이론화한다. 즉 남성 앨라이들에게 공간을 마련해 주고, 모든 이들을 위한 범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남성, 게이나 헤테로남, 여성으로 정체화한 남성을 지원해야 한다는 뜻.


  • 슬로건: “트랜스여성은 여성이다”,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 “페미니즘은 쿨하다”, “시스젠더 여성만이 아닌, 자매들을 지지해 주세요”,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 “페미니즘은 욕이 아니다, "페미니스트는 이렇게 생겼어", "TERF를 때려"

  • 전문 용어: 트랜스여성혐오, 시스젠더, TERF(트랜스젠더 배제적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SWERF[각주:3], 논바이너리, 에이젠더[각주:4], 슬럿쉐이밍[각주:5], 창녀혐오, 강간문화, 성에 긍정적인[각주:6], 유리천장, 맨스플레인, 나쁜 페미니스트, 3의 물결, 코튼실링[각주:7], 트랜스레즈비언, 트루스컴[각주:8]


급진주의 페미니즘


  • 페미니즘의 정의: "남성으로부터 여성 해방"
  • 정치적, 사적 영역에서의 해방을 위한 투쟁: 그들은 남성이 "평등" 패러다임을 부정해온 것 같이 폭력과 억압할 자유를 원치 않는다고 주장한다.
  • 공간, 저술작업을 요구
  • 가부장제는 남성을 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남성은 가부장제로부터 이득을 얻는다. 
  • 지하에 파묻힘

- 유명인사의 지지 없음

- 전국적으로 연단에서 쫓겨나는 신세(레프트포럼 사건, 밴쿠버 여성 도서관 사건, 저자 나타샤 차트[각주:9], ACLU(미국시민자유연맹) 회장 마야 딜라드 사임[각주:10], 그 외 수많은 폭력의 위협)

- 논쟁적인 메시지: 결혼제도 폐지, 종교 비판, 노동인구의 재구조화, 임신중절 지지[각주:11], 자궁흡입술 지지, 자연분만 옹호, 분유식 반대, 노르딕모델 지지


  • 젠더의 폐지 추구

-  '성별을 기반으로 한 위계적 사회화(즉 성차별주의)와 억압의 체계'라는 젠더의 본래 정의를 사용

- 여성들이 입는 옷과 소유물 일체를 성적으로 대상화하기 위한 종속적,수동적인 성격 훈련에 저항

- 훈련된 남성 성역할인 남성적 사회화, 마초이즘, 나르시즘을 비판

- 생물학에 기반을 둔 섹스/젠더 분석법

- 페미니스트 이론으로서의 '여성성' 비판


  • 트랜스남성 포용적

- 모든 여성을 남성우월주의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함


  • 어떤 남성/트랜스 여성도 여성전용 공간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함

- 화장실, 탈의실, 스포츠팀 등등

- 여성전용 가정폭력 쉼터, 여성전용 안전지대

- 여성의 리더십역할, 여성을 위한 기회, 펀딩, 장학금

- 컨벤션, 축제, 모임 등


  • 성매매와 포르노(돈 받는 성매매) 폐지론자 

- 포르노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폭력을 일상화한다

- “성노동”은 억압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된 여성억압이자 착취로, 남성의 수요에 맞춰 여성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한다.


  • 교차하는

- 어떻게 생물학적 성별에 기반한 억압이 계급, 인종을 기반으로 한 억압과 교차하는지 연구(i.e 구조적 교차성)

- 페미니즘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성별을 기반으로 한 계층적 억압에 저항하는 모든 여성을 위한 것

-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고 오로지 지지자(Ally)로서만 가능하다. (여성으로 정체화한 남성도 포함됨)


  • 슬로건: "문제를 명명해라" (예: 남성 폭력),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여성이 우선이다", "나는 급진 페미니스트지, 괴짜가 아니다", "남성 폭력을 끝장내자" "여성 전용", "트랜스여성은 남성이다",  "포르노는 페이강간[각주:12]", "여성은 느낌이 아니다" 

  • 전문 용어: 형평성, 젠더비판적, 소아성도착 문화(by Alicen Grey), 강간 문화, 성 비판적[각주:13], 유리천장, 맨스플레인, 남성 테러리즘, 4의 물결/2의 물결, 피크 트랜스[각주:14], 젠더교





  



  1. 처음 번역할 당시 저자는 Mainstream이 아니라, Liberal feminism이라 제목을 명시하였다. 이는 처음 글을 게시한 역자의 페이스북에서도 확인 가능. https://www.facebook.com/RFHyeriNam/posts/192426304593898 [본문으로]
  2. 해외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이들을 MtT(Male to Trans, 남성에서 성전환한) 혹은 TIM(Trans-identified Male,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남성)이라 부른다. 구독자가 14000명이 넘는 젠더크리티컬 레딧에서는 MtT를 버리고 TIM을 쓰는 분위기. 이 링크에서 토론을 볼 수 있다. https://www.reddit.com/r/GenderCritical/comments/7eghte/on_language_mtt_vs_timtif_which_acronym_is_the/ [본문으로]
  3. Sex Worker 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즉 성노동자 배제적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본문으로]
  4. 접두사 a-는 '없음'을 의미한다. 즉, 에이젠더(agender)란 젠더가 없는 젠더라는 뜻이다. 참고로 많이들 에이젠더와 혼동해서 쓰는 에이섹슈얼(asexual)은 무성애자를 뜻하며, 70억 젠더 정체성 분류에 해당되지 않는다. [본문으로]
  5. 사람들, 특히 여성이 성 행동에 대한 통념을 깼다고 인식되었을 때 가해지는 사회적 오명의 한 형태. (영문 위키백과 번역) [본문으로]
  6. 소아성도착증, BDSM, 성매매, 다자연애, 포르노 등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성적 실천과 충동을 긍정하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성적 자유주의자로는 게일 루빈이 있다. [본문으로]
  7. 시스젠더들이 트랜스젠더를 섹스 파트너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적 장벽(https://en.m.wiktionary.org/wiki/cotton_ceiling 의 설명 번역) 역주) 한마디로 외않자조? [본문으로]
  8. 트랜스메디칼리스트 혹은 트랜스근본주의자로도 알려져 있다. 다른 트랜스젠더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위신을 깎는 트랜스젠더를 뜻한다. 이들은 개인이 성별 위화감(여기선 본인 신체에 대한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선 진짜 트젠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http://sjwiki.org/wiki/Truscum#cite_note-1의 설명 부분번역 [본문으로]
  9. 해외 래디컬 페미니즘 노선의 언론 feminist current의 저자. [본문으로]
  10. 마야 딜라드(Maya Dillard)는 메일바디 트랜스젠더와 화장실을 함께 쓸 수 없으며,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출입 옹호가 여성과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발언했고, 결국 사퇴하게 되었다. [본문으로]
  11. 리버럴보다 한발 더 나아가, 과잉 인구를 조절하는 데도 효과적이고 의미있는 방법으로 간주함, urban dic 출처 [본문으로]
  12. 원문에서는 'paid rape'라 표현하였는데, 이미 워마드에서는 성매매를 대체하는 용어로 '페이강간'을 사용하고 있기도 해서 굳이 풀어서 번역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13. 성적 자유주의와 반대되는 입장으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일찍이 성 전쟁Sex War에서 이들이 말하는 자유가 남성의 욕망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하였다. 흔히 성자유주의자들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을 보수 기독교와 엮어 성적 보수주의로 매도하나, 이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정치질일 뿐이다. 성에 비판적이라는 말은 남성의 욕망을 반영하는 성매매, 포르노, BDSM, 아동성도착증 따위의 실천을 비판하는 입장이지, 여성의 자위나 생식기마저 저속하게 보는 견해가 아니다. [본문으로]
  14. 어떤 사람이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의 모든 것이 옳지 않다 여기고, 트랜스정치학의 지지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 (http://peaktrans.tumblr.com/about 의 설명 번역) a.k.a 탈젠더교 각성타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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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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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스젠더란 표현 자체를 거부합니다. '시스'라는 말은 정확히 정신적 성별과 신체적 성별이 같은 경우를 의미합니다. 실질적으로 '시스젠더'라는 말은 자신을 트랜스젠더 혹은 젠더퀴어로 정체화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붙여집니다. 그렇다면 정신적 성별이란 무엇인가요? 왜 스스로를 여성으로 느낍니까? 

  자신이 원해서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없겠지요. 차별이 존재하는 줄 알았더라면 아무도 여성으로 태어나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바는 여성 취급이 아니라, '인간' 취급입니다. 그런데 이 시스젠더라는 표현은 우리가 스스로를 여성으로 느낀다고 말합니다. 대체 그 여성은 누구입니까? 주민등록번호 2로 시작하는 사람들이고, 취업과 승진에서 차별을 받고요, 여성이기 때문에 화장실 몰카를 두려워하고,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핑크색을 좋아하고 리본과 레이스를 좋아하고 꾸미는 걸 당연시하게끔 요구되는 사회의 2등 시민입니다. 

  누가 2등 시민을 하고 싶습니까? 1등 시민이 되기를 원하지요. 그러나 사회에서 나를 그렇게 취급하기 때문에, 그 억압이 존재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인식합니다. 내가 여성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당하는 각종 차별, 강요되는 여성성은 다른 젠더로 나를 표현한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시스젠더란 표현은 너무 간단히 이런 맥락을 지워버립니다. 그 사람들은 과연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불만이 없을까요? 아니란 겁니다. 우리는 좆같은 성역할에 거부감을 느끼는 여성들이고, 우리 중 자신의 몸에 혐오감을 느끼는 여성들은 의외로 많아요. 매달 생리할 때마다 불쾌함과 생리통 때문에 포궁을 들어내고 싶은 기분을 느끼고, 내 가슴을 쳐다보는 한남들의 시선폭력이 싫어서 유방이 없어졌으면 하고 바라는(혹은 바랐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요, 나는 성기를 기준으로 여성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가 2로 시작하고 여성으로 보이기 때문에 여성혐오범죄에 노출되고 차별을 당합니다. 나는 그래서 이 여성이란 이름을 혐오합니다. 그 이름은 차별, 억압, 2등 시민, 인형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 또한 나에게 강요된 '여자는 어쩌고저쩌고~' 와 같은 성 역할을 혐오합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트랜스젠더/젠더퀴어라 부르지 않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정체화하는 것으로 내가 겪어왔던 차별을 없앨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내 신체를 굳이 부정할 게 아니라 생각을 전환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요. 가슴이 있다는 걸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시선폭력하는 한남들한테 따지면 되고, 생리가 너무나 좆같지만 그건 생리에 대한 연구가 미비했기 때문에 해결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내가 억압적인 신체를 절단한다면, 개인적으로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결국 시선폭력과 같은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이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여성성/남성성 규범, 고착화된 성역할은 모두를 억압해요. 그러나, 그 억압에 대해서 급진주의자들은 성역할을 타파하고 젠더 분류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입장이며, 트랜스젠더/퀴어들은 새로운 젠더의 명칭을 쓰고 의료서비스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결국 트랜스젠더/퀴어들과 급진주의페미는 동일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한 엇갈린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저는 스스로를 '시스젠더'라 부르지 않을 것이며, 또한 시스젠더 여성이 강자, 트랜스젠더/퀴어는 약자라는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원문은 2017년 8월 2일 페이스북에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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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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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자:  Claire Hauchan 

역자:  남혜리

원제: Sex, Gender, and the New Essentialism 

원문 출처: 링크


내가 처음으로 젠더학 수강생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는 나를 지지해 주었다. 내가 삶의 방향을 찾고 졸업하는 해 동안 전혀 구체화하지 않았던 가치체계를 계발하는 것에 기뻐하시면서. 하지만 그 과목에 대해선 별 생각이 없으셨다. "뭐 때문에 공부하지?" 할아버지는 물었다. "나는 얼마든지 말해 줄 수 있단다. *남성의 신체를 가졌으면 너는 남성이야. *여성의 신체를 가지면 너는 여성이지. 그 이상 뭐가 더 있을까. 그걸 알기 위해 학위가 필요하지 않단다."(*사회적 합의 때문에 할아버지와 나는 이 대화에서 자지 혹은 보지/외음부란 단어, 혹은 우리가 공유하는 다른 어떤 말도 쓸 수 없었다.) 


맨 처음 느낀 건 충격이었다. 트위터에서 젠더를 둘러싼 양극화된 담론싸움을 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소셜 미디어에서 그런 의견을 드러내면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만약 70대인 내 할아버지가 시험삼아 트위터를 시작한다면 그는 거의 항상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폭력에서 안전할 것 같다. 할아버지는 백인 남성이니까.

다 똑같지만, 정원에 앉아 있는 듯한 편안함 가운데 의견을 듣는 건 온라인 세계의 긴장, 그러니까 여성이 잘못된 길로 들어선 페미니스트로 분류되어 결과적으로 공공의 표적이 되는 공포와는 동떨어진 세계였다. 이런 대화는 나를 젠더의 실체는 물론이요 젠더담론의 맥락을 생각하게 이끌었다. 위협은 강력한 침묵시키기 전략이다. 공포가 지배하는 환경은 비판적 사고, 공적 담론, 의견 개진에 도움이 안 된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할아버지는 젠더가 페미니즘 운동에서 만들어져 소위 말하는 TERF전쟁에서 분열되었다는 걸 모르는 행복한 상태이셨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TERF는 트랜스젠더 배제적인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를 뜻하며 젠더에 비판적이며 위계질서의 철폐를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여성을 설명하고자 사용되는 약어이다. 페미니스트와 퀴어 정치학 간에 흐르는 긴장은 아마 틀림없이 젠더에 대한 접근방식의 차이가 주된 원인이다. 


젠더의 위계


가부장제는 젠더 위계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페미니즘 운동의 핵심적인 목표인 가부장제 해체를 위해선, 젠더 또한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젠더는 남성을 인간의 기본값으로, 여성을 타자로 만든다. 젠더는 여성 섹슈얼리티가 엄격히 제한되는 근원이다. 여성은 남성에게 성관계를 맺도록 허락하면 창녀라고 불리며, 거절하면 순진한 척한다는 소릴 듣는다. 남성 섹슈얼리티는 그런 식으로 판단하는 법이 없다. 젠더는 남성에게 학대당하는 여성이 ‘여자가 원했잖아’ or ‘여자가 꼬리쳤네’라며 비난받고 수치심을 느끼는 근원이다. 반면 가해자인 남성의 행동은 흔히 ‘남자는 커도 애야’ or ‘그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로 정당화된다. 젠더는 소녀들이 보살피고, 수동적이고, 도덕적이며, 소년에게는 권장되지 않는 특성에 가치를 부여하게끔 만든다. 젠더는 소년들이 경쟁하고, 공격적이며, 진취적이고, 소녀에게는 권장하지 않는 특성에 가치를 부여하게끔 만든다. 젠더는 결혼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남편에게로 그 소유권을 넘기면서 여성이 소유물로 간주되게끔 한다.젠더는 여성이 가정적이고 감정적인 노동을 제공하도록 기대받는 이유로, 그런 노동은 ‘여자들이나 하는 일’이라 가치폄하되고 비가시화된다.

젠더는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다. 영국에서 여성은 3일에 한 명 꼴로 남성에게 살해당한다. 영국과 웨일즈에서는 매년 추산 85000명의 여성이 강간당한다. 영국 여성의 1/4이 남성 파트너에게 폭행을 당했고, 1/3까지 세계적인 규모로 그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오늘날 여성할례를 당한 20억이 넘는 여성이 살아 있다. 남성 지배질서, 힘의 불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폭력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는 일은 근본적인 페미니즘의 목표다. 페미니즘의 목표는 우리 삶에서 가능한 기준선이랍시고 젠더가 부여한 한계를 받아들이는 일과 양립할 수 없다. 

“젠더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는 것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 규정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젠더의 요구사항들이 우리를 짓누르지 않을 때 우리가 얼마나 더 행복해지고, 우리 개개인이 진짜 우리 모습으로 살 때 얼마나 더 자유로울까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사회화는 그 차이를 과장합니다. 그리고 나선 자기충족적인 과정을 시작합니다.” –치아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Chimamanda Ngozi Adichie, We Should All be Feminists)


젠더규범은 감옥이다. 젠더는 남성이란 성별계급의 이득을 위해 여성이라는 성별계급을 억압하려고 사회가 파놓은 함정이며, 최근 젠더를 위계질서가 아닌 정체성으로 재구조화하려는 시도가 있긴 하지만, 생물학적 성별의 중요성은 간과될 수 없습니다.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번식을 위해 착취하는 일은 여성억압의 본질적인 기저이다. 억압자인 남성은 지배 수단으로써 생물학을 사용한다. 생물학적 성별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소수자들(간성)이 존재하나, 이 사실이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여성억압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다.


페미니스트들은 수백년 동안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젠더 위계를 비판해 왔다.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가 여성성을 해체하자고 했을 때, 그녀는 흑인 여성이 규정되는 방식을 만들어내는 여성혐오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주의를 비판했다. 그 자신의 고유한 신체적 기량과 불굴의 용기를 경험적 증거로 들면서, 트루스는 여성들이 여성성이라 불리는 특성에 의존적이지 않음을 발견했으며, 백인 여성들의 연약함이라 알려진 것을 여성스러움의 표본으로 끌어올리고자 흑인 여성 신체를 타자화하는 경향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Ain’t I a Woman)는 가장 먼저 알려진 젠더 본질주의에 대한 페미니즘 비평 중 하나다. 트루스의 연설은 백인우월주의 가부장제 사회의 맥락에서 인종과 젠더 위계 사이의 상호작용을 인정한 것이다.(hooks, 1981)

시몬 드 보부아르 역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로 여성성을 해체하였다. <제 2의 성>(The Second Sex)에서 그녀는 젠더가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사회화하도록 역할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 역할의 제약, 특히 젠더는 타고난다는 젠더본질주의의 결과로 여성에게 부과된 제약을 강조하였다.  

보부아르가 관찰했듯이, 젠더 본질주의는 수 세기에 걸쳐 여성들이 공적 영역에 출입하지 못하게, 남성지배질서로부터 독립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끔 하려는 일환으로 이용되었다. 여성은 지적으로 열등하며, 날때부터 수동적이고 비이성적이란 주장은, 여성은 집에 있는 게 자연스럽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죄다 여성의 삶을 가정에 예속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역사는 여자 뇌에 대한 주장이 참정권, 재산권, 신체 해부학, 공교육 기회를 남성들만의 것으로 유지하기 위한 가부장제의 전략이라 서술한다. 과학적으로 참이 아니란 점에 덧붙여, 여자 뇌의 존재성을 전제로 이어진 여성혐오의 긴 역사 탓에 뇌성차별주의(neurosexism)는 페미니즘의 관점과는 모순된다. 

하지만 여자 뇌 개념은 사회적 보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진보적이라 여겨지는 퀴어/좌파 정치학에서 한번 더 지지를 받고 있다. 위계로서의 젠더에 상반되는 정체성으로서의 젠더 연구는 젠더는 타고난 것( 젠더는“머리에 있으며”사회적으로 구성되지 않는다)이라는 추정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트랜스젠더 정치학의 발전, 그리고 이어지는 여성억압의 본성(그 뿌리에 무엇이 있으며 어떻게 여성이 정의되는가)에 대한 불일치는 페미니즘 운동에서 실패하게 된다.(MacKay, 2015)


페미니즘과 젠더 정체성


트랜스젠더는 개인이 자신의 젠더가 생물학적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이해하는 개인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여성의 몸으로 태어나 남성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사람은 트랜스남성이라 불린다. 남성의 몸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사람은 트랜스여성이라 불린다. 트랜스젠더가 된다는 건 호르몬 대체 요법과 성별 재지정 수술을 포함해서, 어쩌면 의학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 있는 일이다.그러나 트랜스 하위영역에 포함되는 65만명의 영국인 중 집계상 3만명 남짓만이 수술/의학적 트랜지션을 거친 상태이다.  

트랜스젠더란 단어는 애초에 남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사람들 혹은 그 반대의 경우를 설명했으나, 지금은 젠더 비순응성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트랜스젠더는 논바이너리 정체성(남성도 여성도 아닌 성으로 정체화하는 사람), 젠더플루이드(한 개인의 정체성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뀔 수 있거나 그 반대), 그리고 젠더퀴어(남성성과 여성성 둘 다로 정체화하거나/정체화하지 않는 개인)을 포괄한다.

트랜스젠더의 반대는 시스젠더로, 생물학적 성별과 부여된 성역할이 일치함을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된다. 퀴어 담론은 시스젠더인 사람들은 억압자,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은 피억압자로 위치시키며 시스젠더를 특권층으로 만든다.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이 소외된 집단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어떻게 소외되는가에 대한 이해에서 시스 남성과 여성 간 일말의 차이도 서술하지 않는다. 트랜스여성 살인자들이 저지르는 남성 폭력은 꾸준히 발생하며, 이러한 남성 폭력은 “…문화적으로 유지된 남성권력과 남성성 규범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남성의 필요”의 산물이라고 주디스 버틀러가 밝힌 하나의 비극적인 양상이다.

퀴어이론의 시각에서 젠더는 성별계급과는 반대로 개인이 정체화하는 것이다. 개개인이 속하는 성별 계급은 개인이 가부장제의 억압으로 소외되는 쪽에 속하는지 혹은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지를 좌우한다. 이 관점에서 퀴어 정치학은 근본적으로 페미니스트 분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퀴어이론의 틀은 젠더를 마음에 있는 것으로, 그러니까 위계질서가 아니라 스스로 정의한 정체성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둔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젠더는 가부장제가 성별 계급 간에 만들어 놓은 구조적인 힘의 불균형을 영속시키는 하나의 방법으로 여겨진다.

“당신이 억압의 축으로서 생물학적 성별의 물질적 실체 혹은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당신의 정치적 이론은 가부장제에 대한 어떤 분석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역사적이고 지속적인 여성의 복종은 우리 중 일부가 열등한 사회적 역할로 정체화하길 선택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치면 어처구니없는 피해자 비난하기가 된다) 아이를 잉태하고 성적/재생산 노동을 착취하는 게 가능한 인간의 절반을 남성들이 지배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발생했다. 우리는 여성 생물학의 실제와 생물학적 여성 계급의 존재성을 인식하지 않고선, 가부장제의 역사적 발생과 지속적인 성차별, 문화적 여성혐오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 레베카 레일리 쿠퍼, <섹스와 젠더에 대한 나의 생각> (Rebecca Reilly-Cooper, What I believe about sex and gender)

퀴어이론은 후기구조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기에, 정의에 따르면 체계적 억압에 대해 결합력 있는 구조적 분석을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만약 물질 자신이 개인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을 임의로 결정한다면, 어떤 정치적 계급으로도 이해할 수 없다. 퀴어이론은 구조적 억압이 어떻게 개개인이 정체화하는지와 관련이 있는지 밝히는 데 실패하였다. 정체성으로서의 젠더는 지배의 매트릭스에서 벡터값이 아니다.(Hill Collins, 2000) 개인이 특정한 성역할로 정체화하는지 아닌지는 가부장제에서 개인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와는 관계가 없다.


'시스'의 문제


시스는 당신이 태어날 때 지정받은 젠더로 정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별 특성에 기반한 성역할 지정은 여성을 복종시키기 위한 가부장제의 장치이다. 특정한 방향으로 발달하게끔 젠더가 부여한 한계는 가부장제가 가장 처음으로 아동의 삶을 조종하는 방식으로, 특히 소녀에게 해를 끼친다. "여성은 날 때부터 그 억압에 적합하며, 남성은 날 때부터 우리에 대해 권력을 휘두르기 적합하다" 본질주의 뒤에 여성이 억압의 수단으로 자신을 정체화한다는 가정은 이러한 신념에 기반해 있다. 다시 말해, 여성을 '시스'로 분류하는 건 여성혐오다.


성별 계급으로서의 여성억압은 퀴어이론의 포스트모던한 렌즈를 통해 특권으로 재포장되었다. 그러나 여성에게 '시스'가 되는 것은 특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남성 폭력은 여성이 죽는 주된 원인이다. 페미사이드가 풍토병인 세상, 1/3의 여성이 남성폭력을 경험하는 세상에서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건 특권이 아니다. 여성의 몸으로 태어난 사람이 특정한 성역할로 정체화하는지 여부는 그녀가 여성할례의 대상이 되는가, 임신과 출산 문제로 산부인과에 가는가, 월경한다고 추방당하는가와는 관련이 없다.

개인이 정체화하는 방식의 본질적인 기저가 되는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시스젠더란 꼬리표는 여성이 가부장제에서 어떤 위치에 놓이는가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여성의 몸으로 사는 걸 특권으로 만드는 건 가부장제 사회의 사회정치적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는 일이다.

가부장제에 저항한 사람들이 막대한 비용을 치르면서 성과를 거두었으므로, 여성인권을 위한 투쟁은 길고 어렵다고 알려져 왔다. 그리고 그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2물결 페미니즘이 일궈낸 여성인권 인식의 중요한 진전은 필연적으로 사회정치적인 반동과 마주하게 되었다. (Faludi, 1991) 그 반동은 여성이 합법적으로 임신중단과 다른 재생산 의료복지를 누릴 권리가 유럽과 미국을 가로지르는 주류 보수주의 파시즘 때문에 위기를 맞이함에 따라, 현재 반복되고 있는 패턴이다. 인종, 계급, 장애, 그리고 섹슈얼리티의 교차점 역시 여성에게 가해지는 권력을 구조화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포괄성이라는 이름 하에, 여성은 스스로를 정의하고 여성으로서 경험하는 억압에 도전하기 위해 필요한 언어를 빼앗겼다. 임산부는 임신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모유 수유는 수유(chestfeeding)로 바뀌었다. 여성 생물학을 언급하는 일은 일종의 편견적 행위가 되었으며, 이는 도덕률을 깨지 않고 직접적으로 재생산, 출생, 모성의 정치학을 언급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생물학적 성에 대한 모든 것을 중립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여성이 성별 계급으로서 억압당한다는 것에 대항할 수 없게끔 한다. 여성의 신체를 지워서는 젠더가 여성을 억압하는 방식을 바꾸지 못한다.

퀴어 이론의 틀은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을 확실하게 젠더 담론의 당사자로 놓는다. 결과적으로 젠더는 여성억압의 근본적인 역할을 하는 위계질서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들이 피하고자 하는 주제가 되었다. 당연하게도, 표백제를 마시라든가 불에 타 죽으라는 도발은 효과적인 침묵시키기 전략이 되었다. 반대의견을 억누르기 위한 수단으로, 여성폭력은 농담인지 위협인지 불분명하게 언급된다. 이런 방식의 가해는 피억압자가 억압자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주먹으로 때려”랑 똑같이 취급할 수 없다. 아무리 좋게 쳐줘도 수평적 적대감[각주:1]이고, 최악의 경우 여성에 대한 남성 폭력의 정당화다.(Kennedy, 1970)

퀴어정체성 정치학은 여성이 성별계급으로 억압받는 방법을 설명하지 못했고 때때로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해방의 정치학에 대한 이런 식의 선택적 접근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 젠더를 비정치화하고, 젠더가 만들어내는 힘의 불균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누구에게도, 적어도 모든 여성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젠더의 폐지만이 젠더가 정해놓은 제약으로부터 해방을 가져다줄 것이다. 젠더의 속박은 자유를 추구한다는 미명 하에 다른 목적으로 탈바꿈할 수 없다. 


참고문헌


Simone de Beauvoir. (1952). The Second Sex
Susan Faludi. (1991). Backlash: The Undeclared War Against American Women
Cordelia Fine. (2010). Delusions of Gender
bell hooks. (1981). Ain’t I a Woman?
Florynce Kennedy. (1970). Institutionalized Oppression vs. the Female
Finn MacKay. (2015). Radical Feminism
Chimamanda Ngozi Adichie. (2014). We Should All be Feminists
Rebecca Reilly-Cooper. (2015). Sex and Gender: A Beginner’s Guide
Sojourner Truth. (1851). Ain’t I a Woman?







  1. 수평적 적대감(Horizontal hostility)은 1970년대부터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운동에서 내분과 파벌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해 온 용어이다. 소집단들은 협력하기보다는 서로 저격한다. 수평적 적대감의 예시로, 미국에서는 청각 장애인이 미인대회에서 ‘미스 아메리카’에 당선되자 뜻밖에도 청각장애인 활동가들은 ‘미스 아메리카’에 대해 반대하였다. 그녀가 수화를 하지 않고 말을 했기 때문에 '청각장애로 보기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피부색이 비교적 옅은 흑인 여성이 미국에서 저명한 대학의 법학교수가 되자 흑인학생회(Black Students Association)에선 충분히 검지 않다고 임용을 반대하였다. -Judith B.White, Ellen J.Langer. (1999) Horizontal Hostility: Relation Between Similar Minority Groups. Journal of Social Issues, Vol.55, No.3, pp 537-55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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