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7.9.21일경 feminist current에 실린 Meghan Murphy의 칼럼을 번역한 것입니다.
http://www.feministcurrent.com/2017/09/21/terf-isnt-slur-hate-speech/

지난주에, 60세의 여성이 자유발언대에서 여러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녀는 "젠더란 무엇인가"라는 연설을 하기 전, 하이드 공원의 역사적 코너를 집회 장소로 정한 무리의 여성들과 함께 있었다. 마리아 맥라클란(Maria MacLachlan)을 때리고 걷어찬 남성들은 이 여성들에 반대하기 위해서, 그리고 "젠더 정체성"을 둘러싼 법제화와 새로운 방식의 대화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자들은 그들의 분노와 선동적인 레토릭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구조화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여성들을 "TERF(트랜스배제적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하였다. TERF는 닥치게 만들고, 희롱하고, 때리고, 그렇지, 죽이기 위한 현대판 마녀사냥이다.


"젠더 정체성"개념에 의문을 갖는 페미니스트들이 폭행당하고 살해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칭 좌파들이 굉장히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트위터 알계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더 큰 플랫폼을 가진 남성들, 그러니까 공적으로 안티파(Antifa)와 미국민주사회주의자(DSA) 같은 집단에 소속된 남성들은 동지들의 지지를 받으며 "터프를 때리자", "TERF를 단두대로 보내"같은 메시지를 자랑스럽게 증폭시킨다.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의 표현을 빌리자면, 많은 사람들이 "TERF를 벽에 매달아"라고 말하기 위해 이용된다.

<시녀 이야기>에서 반역죄로 처형당해 매달린 시체들


그 비유는 놀랍게도(그리고 무섭게도) 이런 남성들의 의도에 대해선 진실된 입장이다. <시녀 이야기>의 "벽"에는 처형당한 사체들이 매달리는데, 종종 그 목에는 "젠더 반역"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린다.* 시체들은 다른 이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이용된다. 반역을 꿈꾸지 말고, 대항하지 말고, 가부장제의 질서를 거부하지 말라고. 그리고 이는 정확히 "TERF"라는 말을 사용하는 남성들이 여성에게 말하는 것들이다. "우리의 규율에 따르지 않으면 처벌하겠어"

자유발언대에서 일어난 폭력을 비난하기는커녕, 많은 트랜스활동가들과 자칭 좌파남성들은 이를 축하하고 장려했다.

 

TERF가 중립적인 단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용어는 정반대로 사용된다. 그건 여성들이 스스로를 위해 만들
어 달라고 한 용어가 아니다. "slut(창녀)" "cunt(보지년)" 내지는 "bitch(썅년)"처럼, "TERF"는 여성을 닥치게 하려고,
괴롭히려고, 비난하려고, 모욕하려고, 수치심을 주려고, 그리고 쫓아내려고 낙인찍는 말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 말은
위협이다. 내가 살면서 cunt, bitch, slut이란 말을 남자한테 들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나는 거의 항상 그들에게서 폭력을
당할 위협을 느꼈다. 이 말들 뒤에 있는 경멸하는 분노- 뒤따라가서 한대 갈기고 싶은 욕망-은 너무 자주 현실이 된다. 나는
항상 이 말이 나한테 "너는 피지배계급이란 걸" 대놓고 일깨워주기 위해 사용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여성이 얼마나 자신
감있고, 거칠며, 자기확신에 차 있고, 강하고, 용감한지랑은 상관없이, 이런 말들은 그녀를 종속적인 그 자리에 머물게 한
다.

"TERF"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의도적인 조작으로, 여성해방운동의 기반이 되기는커녕 페미니스트들의 사상과 운동을 배제적이라 재구조화한다. 달리 말해, 이는 여성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적 조직화와 가부장제에 대한 여성주의 분석의 토대가 되는 기초이론에 대한 공격이다.


예를 들어, “TERF”라 불리는 우리들은 아래 항목을 포함해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다고 낙인찍힌다.


•여성이 피억압자 계급의 사람들이라고 이해 (여기서 피억압자 계급이란, 케이트 밀렛이나 쉴라 제프리스가 말한 성별
계급/카스트)
•선천적인/내재된 젠더 개념에 문제제기
•"젠더 정체성"에 대해 대화하기* (역주: 주로 비판하는)
•아이들은 트랜지션 과정을 정말 겪어야 하는가 질문하기
•이미 “TERF”라고 낙인찍힌 여성과 어울리거나 그런 여성을 옹호
•여성억압과 남성우월주의의 근원은 생물학적 성별에 기반한다고 이해
•젠더는 강요당한 것이며, 억압적이고 여성과 남성 간의 위계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이해
•“트랜스여성은 여성이다” 같은 도그마나 주문에 문제제기
•여성전용공간을 지지
• “남성” 과 “여성”이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는 이데올로기에 논박하기

이런 점들은 범죄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페미니즘의 근본이다. 달리 말해 어떻게 가부장제가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선, 당신은 우선 누가 지배계급의 구성원이고 누가 피지배계급의 구성원인지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당신은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 구조적이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당신은 여성이 선천적으로 "여성적"이지 않으며 남성도 선천적으로 "남성적"이지 않다는 걸 이해해야만 한다. 당신은 기꺼이 비판적인 대화를 하고 주류 이데올로기와 주류 정치적 담론 양쪽 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당신은 가부장제가 여성의 재생산능력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되었으며, 그러므로 그들의 입장에서 여성의 생물학을 “하등한” 것으로 취급하는 일이 매우 핵심적이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당신은 페미니즘이 여성이 중심이 되는 운동이며 따라서 여성은 그들 자신의 해방을 위해 지배계급의 구성원(남성) 없이 그들끼리 모이고 조직화할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TERF”라고 할 때 지칭하는 건 “페미니스트”다. “건방진 여성”이다. 그들이 종종 “배제적”이라고 말할 때 그 말이 의미하는 건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을 배제한다” 가 아니라 “남성을 배제한다”는 뜻이다. 젠더 비순응성은 페미니즘이 환영한다 — 페미니즘은 젠더규범에 순응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순응하는 데 관심있다면, 우리는 요구받은 대로 앉아서 닥치겠지.


“TERF”가 항상 비속어이긴 했지만, 이 단어가 더 이상 단순한 욕설이 아니란 건 결국 분명해진다. 그 단어는 혐오발언이다.


페미니스트 언어학자이자 옥스포드 대학의 언어 및 커뮤니케이션 교수인 데보라 카메론은 어떤 단어가 비속어인지 판단할 때 우리가 반드시 체크해야 할 주요 질문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 단어는 부과되었나 혹은 단어가 가리키는 집단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그 단어가 증오나 경멸을 드러낸다고 흔히 받아들여지는가?
•그 단어에 대응하는 중립적인 말, 그러니까 증오나 경멸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동일한 집단을 의미하는 표현이 있는가?
•그 단어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이를 욕이라고 여기는가?


그래, 위 질문들의 답을 생각하면, 그 단어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부과되고, 항상 경멸적이라 인식되며, 대응하는 중립적인 말이 있다.(즉, 개인은 단순히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쓸 수 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은 지속적으로 그 단어가 욕이라고 말해 왔다 — “TERF” 는 두말할 나위 없이 욕이라고. 여성이 이 욕설의 주요 타겟이 된다는 점과 흔히 폭력의 위협(최근엔 현실로까지)이 따라온다는 걸 고려하면, 우리가 지금 씨름해야 할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자유발언대에서 발생한 폭력적인 사건에 뒤이어, 나는 온라인에서 남성들에게 수백 통의 살해협박을 받았다.(가해자들 중 한 명이 “terf들 몇명 강간해”라고 그 속내를 공공연하게 내비쳤던 건 일도 아니었다) 나뿐만이 아니다. 자유발언대에서 벌어진 폭력을 축하하고 옹호하는 남자들에게 문제제기한 여성은 누구나 타겟이 되었다. 이 모든 위협은 “TERF”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식으로 낙인찍혀 왔다. 구체적으로는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그 정치학에 대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퍼뜨리고(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사람들을 죽이려고 한다거나 제노사이드를 옹호한다면서), 젠더 비순응자로 정체화한 남성에 대한 억압자로 재구조화하며, 대개는 사악한 마녀로 먹칠해서 폭력을 당해도 싸다고.

 

 

학대를 정당화하고자 억압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거짓말을 퍼뜨리고 이들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행위는 인종차별주의자와 외국인혐오자들이 예로부터 사용한 전략이다.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을 저지르기 위해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 실제로, 나치가 반유대주의를 퍼뜨리고, 반대파들을 진압하며, 사람들이 또다른 집단을 적대하게 만드는 데 선동은 핵심적인 장치였다. 독일 신문에서는 반유대주의적인 이미지와 메시지를 담은 만화와 광고를 찍어냈다.


“당신이 충분히 큰 거짓말을 하고 이를 반복하면 사람들은 결국 믿는다.” 히틀러가 통치에 대해 남긴 말이다. 그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며 단순히 공포 혹은 지적 게으름에 따라 행동하고, 철저히 목적과 근간을 따지지 않고 시류에 편승할 뿐이라고 믿었다. 유대인 학살은 대중이 동조했으므로 성공적이었다 —왜냐하면 개개인은 나치가 퍼뜨린 미신과 거짓말을 믿었고, 그들이 비판적으로 생각하거나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혐오발언방지법은 그때그때 다르게 적용되며, 애매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증오하거나 폭력을 저지르는 것 혹은 제노사이드를 옹호하는 일이 혐오발언에 해당된다는 걸 알게끔 하려는 의도임을 서술하고 있다.


젠더정체성 이데올로기에 문제제기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종종 제노사이드를 옹호한다며 (전략적으로)비난의 대상이 되므로, 확실히 해두자. “제노사이드”는 생물학적 성별이 실재라는 주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타고난 것이라는 사상에 문제제기하는 것도 아니며, 여성들만을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제노사이드는 다음을 뜻한다

:식별가능한 집단의 구성원들을 살해하거나, 그런 집단을 물적으로 파괴하려고 고의적으로 삶의 조건을 제약하는 일

 

달리 말해서, 페미니스트들은 전부 살해당하고,해고되고, 집을 잃고, 괴롭힘당하며, 침묵당하고,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학대당하고, 강제 노동 수용소에 보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https://twitter.com/laurelaiissexy/status/90995557719916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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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제노사이드를 옹호하거나 장려하는 일은 기소해야 할 위법행위다. 마찬가지로, 식별가능한 집단에 대해 혐오를 조장하거나, 평화를 깨뜨릴 것처럼 보이는 식별가능한 집단에 대해 공적으로 혐오/폭력을 선동하는 말을 하는 것(i.e. 예:자유발언대에서 일어난 사건)도 기소가능한 위법행위다.


그러나 이런 법률은 강제하기 어렵다. 이것이 필연적으로 나쁘단 건 아니다.우리는 좋든 싫든 트위터에서 말하는 걸로 사람들에게 빚져서는 안 된다. 확실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남성들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미디어나 다른 기관이 혐오발언을 일상화하는 것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는 일이다.


따라서 법을 넘어서서 의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미디어가 혐오 발언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만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출판물은 흑인을 설명하기 위해 n-word(흑인비하표현)을 사용해선 안 되고 유대인을 설명하기 위해 “kike”란 단어를 쓸 수 없다. 이런 표현이 인종차별주의를 강화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며 그리고/또한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억압당해 온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욕하는 일임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기관, 그리고 정부당국이 특정한 용어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조장하는 데 사용된다는 걸 알게 되면, 이런 단어의 사용을 장려하지 못하게 비난하거나, 단어 사용을 삼가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미디어 창구에서 아직도 그 단어를 무비판적으로 쓰고 있는 걸 목격한다.

“TERF”라 불리는 사람들을 폭력, 죽음, 그리고 제노사이드의 위협에 빠뜨리는 대다수는 남성이다. 이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어떤 면에서, 이 단어는 여성혐오적인 법안을 공적으로 만들지 못하게 막거나 그게 아니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옹호하면서 스스로를 좌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바쳐졌다. 그들이 "진보적일" 자격은 정치적 올바름(PC)의 허울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TERF”로 낙인찍힌 여성이 나치와 차별주의자랑 비교당하며, 트랜스젠더 운동이 소외된
사람들의 관심사에 연대하라고(명시적인 반페미니즘적, 개인주의적 이데올로기에도 불구하고) 요구하기 때문에 이 좌파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법한 구실을 획득한다. 사실, 그들은 즐기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마치 동지들한테 환영받으며 “썅년”*이라 고래고래 소리질러도 아무도 제동을 걸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다루기 힘든 특정한 여성을 겨냥해서“때리거나”불태우고 싶어한다면 아마 “마녀”가 더 정확할지도?)


 


https://twitter.com/petercoffin/status/909608113224978433
만약 “TERF” 가 단순히 비방하고, 침묵시키고, 모욕을 주고, 차별하며, 폭력을 조장하는 걸 넘어서 목적이 분명하고, 정확
하며, 유용한 무언가를 전달하는 단어라면 이는 아마도 중립적이거나 해롭지 않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 단어 자체
가 정치적으로 부정직하고 사실을 와전하기 때문에,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만큼 그 의도가 비
방, 폄하, 위협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 단어는 위험하고 정말 혐오발언의 자격요건을 충족한다. 예전부터 여성들이 이게
“TERF”의 결과가 될 것이라며 지적해온 반면, 그들은 흔히 무시당했다. 우리에겐 이제 “TERF”라는 붓으로 여성을 먹칠하
는 게 실질적인 신체적 폭력을 불러온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 당신이 우리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이제는 더 이
상 변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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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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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프로필 소개부터 시작하여 한국의 레즈비언 인권운동이 어땠는지(특히 어떤식으로 거부당했고, 남성 게이들과 왜 분리해야 했는지), 레즈비어니즘이란 무엇이고, 레즈비언 내 부치팸 이분법과 위계구조 및 현재 티부/일스 용어의 문제점, 트랜스젠더리즘이 왜 문제인지 잘 들을 수 있는 강의였습니다.

 뒷풀이때는 30명 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래디컬 페미들끼리만 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이야기, 전략논의가 많이 나와서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다음번에도 또 이렇게 속시원한 강의를 들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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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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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동시에 여러 주제에 대한 페미니스트들 간 논쟁도 점차 심화되고 그 빈도도 높아졌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공론장에서 논쟁한(앞으로도 논쟁할) 이슈들을 살펴보면

 게이 집단 내 여성혐오, 코르셋, 로리타 문화, 성매매, 트랜스젠더리즘 등등... 굉장히 많네요. 이러한 논쟁을 거치면서 우리는 페미니즘 노선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리버럴 페미니즘, 그리고 래디컬 페미니즘이죠.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반면, 현재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래디컬 페미니즘 관련 도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그마저도 대개 절판되었고요. 하지만 지금, 논쟁적인 페미니즘 이슈들에 대해 하나의 답을 제시해줄 래디컬 페미니즘 도서가 출간된다고 합니다. 

바로 쉴라 제프리스(Sheila Jeffreys)의 논문들을 엮어낸 선집, <래디컬 페미니즘- 성별 계급제를 꿰뚫는 시선>입니다. 이 책은 어제 텀블벅 펀딩을 시작했습니다. 아래 텀블벅 링크에서 자세한 책 소개를 읽어보세요.

https://www.tumblbug.com/yeolda0517

 

추신) 저는 이 책의 공번역자로 참여한 남혜리입니다. 선집 제목도 제가 제안했는데, 마음에 드셨으면 합니다.

 수개월간 함께 일하신 분들, 책을 출간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신 분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저작권료를 따로 받지 않고 본인의 논문을 한글로 소개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쉴라 제프리스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번역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앞으로도 더 좋은 책을 번역하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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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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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글에서, 퀴어 페미니스트들이 '젠더 폐지론'을 비판하는 네 가지 주요 주장에 대해 급진주의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답하고자 합니다. 그 네 가지 주장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1. 젠더 폐지론에 의해 젠더를 해체하면, 남는 것은 섹스인데 기존의 분류는 지극히 성기 중심적이다. 이는 불완전하다. 

2. 젠더가 해체된 이후 남는 것은 섹스이며, 이는 젠더 이분법을 강화시키는 방향이다.

3. 젠더를 폐기하는 것은 트랜스/젠더퀴어의 경험을 비가시화하는 폭력이다.

4. 시스젠더는 트랜스젠더보다 강자이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다.


1. 젠더 분류는 완전한가? 

  기존 분류의 불완전성에 대해서는 동감합니다. 성기중심적인 분류는 간성(intersex)을 배제하며, 생물학 역시 100%완벽한 기준이 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Y염색체의 유무에 의한 분류는 서양에서는 1950년대까지 유효했습니다. 현재는 Y염색체 위에 존재하는 성결정유전자인 SRY유전자가 발현되느냐/아니냐에 따라서 성기 모양이 결정된다는 것까지 대중들에게 알려졌는데, 그 외에 다른 성결정유전자가 발견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현 시점 젠더분류체계는 완벽합니까? 아니요, 저는 젠더분류야말로 훨씬 구멍이 많다고 봅니다. 이는 바로 젠더가 '정신적 성별'이라는 특성에서 비롯됩니다. 


젠더분류체계는 나의 경험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현재도 워낙 비슷해서 혼동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젠더 플루이드와 젠더 플럭스, 에이젠더와 젠더리스, 젠더퀴어와 논바이너리 등은 자주 혼용됩니다. 또한 혼용만으로도 부족하여 사람들은 여러 개의 이름을 동시에 사용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제 경우에는 분류에 따르면 논바이너리이며 젠더퀴어란 말도 혼용해서 쓸 수도 있고, 하위분류의 젠더리스와 성별 비순응자란 개념도 같이 사용해야 그나마 좀 커버가 되는 거 같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이조차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참고로 기준은 제각기 다릅니다만, 현재 NYC에서는 31개의 젠더를 인정했고(https://www.google.co.kr/amp/s/heatst.com/culture-wars/here-are-the-31-gender-identities-new-york-city-recognizes/amp/) 영국 페이스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젠더옵션은 71+개라고 하는군요(http://www.telegraph.co.uk/technology/facebook/10930654/Facebooks-71-gender-options-come-to-UK-users.html) 개개인이 경험하는 성별적인 특성이란 정말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젠더는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이름이 생길 때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줄줄이 외워야 하는 것일까요? n개의 이름표는 결국 혼란을 가중시키고, 이름표를 쓰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합니다. 


또한, 타인의 젠더를 멋대로 잘못 넘겨짚는 것은(=미스젠더링) 대단한 폭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젠더 정체성이란 개인의 자아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내가 바라보는 나와 타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내가 다르듯 젠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타인이 판단해 주는 것이 맞을 때도 있고, 혹은 틀릴 수도 있죠. 간혹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했다가 피크 트랜스*(어떤 사람이 트랜스 커뮤니티에서의 모든 것이 옳지 않다 여기고, 트랜스정치학의 지지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를 겪어 다시 자신을 지정성별로 정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아에 대해 총체적으로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


2. 성별 이분법 고착화에 관해

아니요, 현재의 분류체계 역시 젠더 이분법을 강화시킨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젠더 분류에는 대체로 바이너리 모델에 기반을 둔 이름들이 많습니다. mtf/ftm이라는 정체성은 이분법을 근간으로 하는 이름이며, 중성이라는 이름 역시 여성/남성의 이분법에 기반을 둔 표현입니다. 논-바이너리라는 이름 역시 바이너리 모델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고 사용되는 이름이지요. 


그리고 젠더 이분법을 깨는 것은 젠더를 세밀하게 나누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분법을 깨기 위해 우리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젠더규범을 해체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하여 기존의 젠더규범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여성/남성의 이분법에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용어니까요.

그렇기에 이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게 되는데, 이 사람들이 자신을 여성 또는 남성이라 부르지 말라면서 기존의 여성/남성 분류에 포함되길 거부한다면 과연 성역할 규범은 어떻게 깰 수 있을까요?


좀더 쉽게 이야기해 볼게요. 지정성별 여성인 A는 화장을 하지 않고, 원피스나 치마보다는 바지를 입길 좋아하며 짧은 머리를 고수합니다. 이 때 A가 자신을 논바이너리 정체성 중 하나로 소개한다면 A는 논바이너리로서 젠더표현을 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A는 자신을 "내가 여자고, 이것이 여자다운 것이다"라고 소개할 수도 있다. 이 때 A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젠더규범을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 중 성역할 규범을 깰 수 있는 쪽은 후자입니다. 자신을 여성으로 정의하지 않고 젠더퀴어나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사용하게 되면 결국 시스젠더인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역할을 그대로 수용하고 이들에게 여성성/남성성을 고착화시킵니다. 


그렇다면 시스젠더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성역할을 그대로 재생산하는 사람들인가요? 젠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인가요? 아니요. 가부장제 시스템 하에서 지정성별 분류와 젠더규범의 폭력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개중에는 안드로진이나 젠더플루이드/젠더 플럭스, 젠더리스 등 논바이너리에 해당하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류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거나, 지식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죠. 


그러면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질문할 수도 있겠네요. 글쎄, 정체성을 드러낼지 아니면 젠더 분류를 거부하고 살지는 개개인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다시금 말하건대, 가부장제 시스템 하에서 지정성별 분류와 젠더규범의 폭력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또한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이란 가부장제의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남자들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남성성'을 우위에, 그 반대의 특성을 여성성으로 이름붙였어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여성복으로 규정되는 옷(치마, 하이힐, 원피스, 스타킹,코르셋 등)은 실용성보다는 활동하기 불편한 옷이지요. 그리고 양육, 가사 등의 돌봄 노동은 여성의 일로 치부되면서 비하되었어요. 그 외에도 수동적일 것, ^예쁜 말^을 쓸 것, 도전하기보다 안정을 추구할 것, 등등 여성성이란 피지배 계급의 행동양식으로서 여성들을 억압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을 유지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젠더 규범은 깨져야만 하고, 이는 앞서 말했듯이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정성별을 드러내고, 그 성역할에 맞지 않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가능합니다.


3. 젠더폐지론은 그들의 존재를 지우는가?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없애버리자는 것은 당신의 경험을 삭제하고 입을 틀어막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젠더가 무엇인지 이름표를 붙이지 않고서도 경험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앞서 저는 1에서 젠더분류의 불완전성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같이 젠더리스란 이름표를 쓰고 있다고 해도 당신이 느낀 경험과 나의 경험은, 억압의 정도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퀴어 공동체에서, 그리고 커밍아웃할 때 왜 각자 정체화하게 된 계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까요. 사실은 그 이름만으로는 내가 누군지 설명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또한, 젠더 해체가 트랜스/젠더퀴어의 경험을 비가시화한다는 논리 그대로, 나는 여성의 경험을 지운다고 되돌려 줄 수 있습니다. 2에서 말했듯이 나라는 개인을 여성이 아닌 다른 젠더로 라벨링하는 것은 지정성별 여성으로서 당한 경험을 퀴어로서 겪은 경험으로 전환시킵니다. 그러나, 현재 지정성별을 기반으로 한 젠더 이분법이 하나의 장벽처럼 튼튼하므로, 이걸 퀴어로서 겪은 경험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여성으로서 겪은 경험을 지워버리는 일이 됩니다.


예를 들어, 여성혐오범죄가 버젓이 존재하는데 내가 '여성으로 패싱되었기 때문에' 당한 성폭행을 젠더퀴어이기 때문에 겪은 경험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겉보기에 흑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는 나를 백인이라고 생각해요! 쏘지 마세요!" 라고 말하면, 그 사람이 백인에게 총 맞아 죽었을 때 인종차별범죄가 아니게 될까요? 성감별 임신중절로 수많은 여자아이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젠더'로 죽지 않았습니다. 여성 할례의 경우 역시 '젠더' 로 인한 차별이 아닙니다. 


우리 개개인이 느끼는 성별 정체성, 경험들은 젠더라는 이름표 '이전에' 실존합니다. 본질은 우리의 경험이지, 이름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개인이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시스템 하에서 어떤 방식의 폭력을 경험했는지 말할 수 있는 분위기이며, 서로의 경험에 공감하는 가운데 이분법과 젠더 규범을 해체하는 것입니다.


4. 시스젠더란 말에 관해

  저는 시스젠더란 표현 자체를 거부합니다. '시스'라는 말은 정확히 정신적 성별과 신체적 성별이 같은 경우를 의미합니다. 실질적으로 '시스젠더'라는 말은 자신을 트랜스젠더 혹은 젠더퀴어로 정체화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붙여집니다. 그렇다면 정신적 성별이란 무엇인가요? 왜 스스로를 여성으로 느낍니까? 


자신이 원해서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없겠지요. 차별이 존재하는 줄 알았더라면 아무도 여성으로 태어나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바는 여성 취급이 아니라, '인간' 취급입니다. 그런데 이 시스젠더라는 표현은 우리가 스스로를 여성으로 느낀다고 말합니다. 대체 그 여성은 누구입니까? 주민등록번호 2로 시작하는 사람들이고, 취업과 승진에서 차별을 받고요, 여성이기 때문에 화장실 몰카를 두려워하고,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핑크색을 좋아하고 리본과 레이스를 좋아하고 꾸미는 걸 당연시하게끔 요구되는 사회의 2등 시민입니다.


누가 2등 시민을 하고 싶습니까? 1등 시민이 되기를 원하지요. 그러나 사회에서 나를 그렇게 취급하기 때문에, 그 억압이 존재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인식합니다. 내가 여성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당하는 각종 차별, 강요되는 여성성은 앞서 말했듯이 다른 젠더로 나를 표현한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시스젠더란 표현은 너무 간단히 이런 맥락을 지워버립니다. 그 사람들은 과연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불만이 없을까요? 아니란 겁니다. 제가 하는 말이 여전히 '시스젠더니까' 하는 소리로 들린다면, 첨부된 사진을 보세요.  mtf인 케이트 본스타인이 쓴 <젠더 무법자>에서 저자는 분명히 "모두가 자신의 성별 지위에 불만을 가지며, 그 원인은 성역할, 지정성별, 성별 정체성일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요, 나는 성기를 기준으로 여성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가 2로 시작하고 여성으로 보이기 때문에 여성혐오범죄에 노출되고 차별을 당합니다. 나는 그래서 이 여성이란 이름을 혐오합니다. 그 이름은 차별, 억압, 2등 시민, 인형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 또한 나에게 강요된 '여자는 어쩌고저쩌고~' 와 같은 성 역할을 혐오합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트랜스젠더/젠더퀴어라 부르지 않습니다. 이유는 위에서 충분히 설명했으니 생략. 


여성성/남성성 규범, 고착화된 성역할은 모두를 억압해요. 그러나, 그 억압에 대해서 급진주의자들은 성역할을 타파하고 젠더 분류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입장이며, 트랜스/젠더퀴어들은 새로운 젠더의 명칭을 쓰고 의료서비스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결국 트랜스/젠더퀴어들과 급진주의페미는 동일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한 엇갈린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저는 스스로를 '시스젠더'라 부르지 않을 것이며, 또한 시스젠더 여성이 강자, 트랜스/젠더퀴어는 약자라는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원문은 2017년 4월 11일에 페이스북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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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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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자:   Terry Macdonal 

역자:  남혜리

원제: Are you now or have you ever been a TERF?

원문 출처: 링크


 TERF(트랜스젠더 배제적인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는  "끔찍한 트랜스혐오자"를 뜻하는 인터넷 약어가 되었다. 이상한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TERF"낙인이 찍힌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주말에 130명이 서명한 편지가 Observer에 출판되었다. 이들은 대학에서 열리는 열린 논쟁에 초청되어 트랜스혐오적이거나 창녀혐오적인 관점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연단을 내주지 않는 행위를 비판했다. 세간의 조명을 받는 두 서명자인 Mary Beard와 Peter Tatchell에게는 즉각 욕설과 협박이 쏟아졌다. 두 사람은 각자가 언론의 자유를 위해 반복적으로 지지를 표현하던 곳(Beard는 블로그, Tatchell은 Pink news)에 진술하면서 마무리지었지만, 스스로 편지에서 비판한 전략의 주요 타겟인 TERF와 거리를 두는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그 메세지는 '나를 그 사람들과 혼동하지 마세요' 였다. '나는 그들의 관점을 표현할 권리를 수호하고자 했으나, 그 관점조차 혐오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당신들이 그러했듯이.'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1984년 조지 오웰이 쓴 소설의 결말- Winston이 그의 고문자들에게 간곡히 부탁했던 것을 그 자신이 아니라 애인인 줄리아에게 했다는 것-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 그러나 당신이 독자로서 이해했다면, 당신은 그의 입장에서 아마도 똑같은 일을 했을 거라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이것은 특정 트랜스활동가들에 의해 고안된 빨갱이 논리를 상징한다. 트위터에는 'blackbot'이라 불리우는 블랙리스트가 있는데, 그 리스트에 오른 이유를 의심하는 사람을 RT한 트위터 유저들의 명단을 포함한다. TERF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누구든 그 리스트를 살펴볼 수 있고 그 정보가 넘겨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Mary Beard와 같이 대학에서 근무하고나 Peter Tatchell과 같이 LGBT활동가라면, 당신은 그 리스트에 오르길 진심으로 원치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협회에 의해 또다른 고전적인 빨갱이 논리에 희생되어 낙인찍혔다. 그리고 그들은 발언권이 없는 TERF들뿐만 아니라 그 편지에 서명했던 숨어 있는 TERF들과 선을 그음으로써 응답했다.

이런 전략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소위 TERF가 믿는 것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지식은 한정되거나 실제하지 않는다. 그들의 입장은 잘못 알려져 있고 도덕적으로 불쾌하다 느끼는 건 지극히 당연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ERF가 사실 무엇인지 묻는다면, TERF들이 했던 서술에 기반하여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중들 가운데 반복되는 이야기는 TERF는 단순히 지독한 차별주의자이며, 비합리적인 공포와 혐오에서 작고 억압된 소수자 집단을 공격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트랜스젠더 사람들의 존재할 권리에 이의를 제기하며, 그들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도록 선동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게 사실이라면 발언권을 주지 않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굉장히 드문 사례를 제외하고는,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치적 스펙트럼을 넘나드는 페미니스트들은 트랜스젠더들이 직장에서 차별받지 않고 괴롭힘당하거나 신체적 폭행/성폭행을 당하지 않을 권리를 지지한다. 끝으로, 페미니스트와 트랜스 관심사 간에는 특히 분명한 교차점이 있다.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오랫동안 남성 폭력에 저항하는 캠페인의 선두에 서서 그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를 요구해 왔다. : 남성이 압도적으로 저지르는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폭행은 남성 폭력의 한 부분으로 보인다. 이런 공격이 비난받아야 한다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반드시 그래야 하고 그러고 있다.

따라서, TERF라 낙인찍힌 사람들은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들이 중요시하는 기본권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정치적 이견이다. : 현재 일부 트랜스활동가들에 의해 지지되는 특이한 이데올로기에 의문시하거나 비평하면 당신은 TERF라 낙인찍힌다. 나는 이 '일부'란 단어에 빡치는데, 왜냐하면 회의적인 활동가들은 근면성실하고 강경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전체 트랜스젠더 공동체를 위해 발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역주: =TERF들)은 그들 자신을 트랜스젠더라 말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는데도 말이다. 만약 당신을 TERF로 만드는 극단적인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까놓고 말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TERF이다.

내가 언급하는 그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트랜스여성은 여성이다"라는 주장이다. (우리는 트랜스남성에게서, 그리고 트랜스남성에 대해서는 훨씬 적게 듣는다.) 정확히 이 서술이 뜻하는 건 발언자가 사회적 분류 혹은 생물학적인 개인을 언급하려고 '여성'이란 단어를 사용하느냐의 여부에 달렸다. 전자의 경우엔 토론하지만(아마 사람들이 각자 결론내리는 데 꽤 차이가 있을지라도) 후자의 경우 주장은 명백히 틀렸다. 트랜스 여성은 (정의에 의하면)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이데올로기의 가장 극단적인 버전은 당신이 TERF라 낙인찍히지 않고 이걸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트랜스여성의 여성됨에 대해 잘 알려진 주장은 그들이 해부학적으로 남성일지라도 그들의 두뇌는 여성이며, 개인의 성 정체성을 결정짓는 건 뇌의 성별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은 몇몇 과학자들 사이에서 지지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한다. 현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합의되지 않았다. 당신을 편견 개쩌는 혐오발언 생산자로 만드는데 논쟁에 참여하고 싶겠는가?

일부 트랜스활동가들이 옹호하는 또다른 주장은 그들이 인간 성별이형이 존재한다는 걸 부정하기 때문에 완전히 과학적 기반이 결여되어 있다. 이 관점에서 몇몇 트랜스 수사학은 진화에 관한 창조론자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 이분화된 성차는 이론일 뿐이며,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부과되었다. 온라인에서 떠돌아다니는 한 기사는 현재 간성인 사람들이 존재한다(기본적인 성별이형의 원리를 논박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뿐만 아니라, PCOS(다낭성 난소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간성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게 정말이라면, 논바이너리인 사람의 숫자가 분명히 폭증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여성들 중 적어도 5%(20%가까이 된다고도 한다)가 PCOS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PCOS가 있다는 것이 당신이 여성이 아니라는 걸 뜻하진 않는다.

실제로 다들 트랜스여성은 여성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만약 당신이 TERF 소리를 듣기 싫다면 가능한 한 그 차이점들을 부정해야만 한다. 이는 페미니스트들에게 특별한 문제가 되었다. 트랜스여성이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과 공유되지 않는 어떤 경험의 논의도 '트랜스 배제'라고 맹렬하게 비난받기 쉽다. 이는 미국의 여대가 최근에 연례 행사인 <보지 모놀로그>를 중단하기로 공표한 이유이기도 하다. 보지가 없는 여성들이 있을 때 보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배제적이다. 작년에 트위터의 한 트랜스활동가는 여성할례에 대항하는 페미니스트 캠페인을 '시스차별주의자'라고 맹비난했다. 생리, 임신과 임신중단권에 대한 논의는 죄다 동일한 불평에 의해 자주 중단되었다.

우리는 또한 스스로 정체화한 트랜스여성들 간의 차이점을 부정하도록 강요받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체를 변형시키지 않는 남성*과 평생 여자로 살진 않지만 여성-남성 간에 정체성이 바뀌는 생물학적 남성**을 아우르기 위해 그 분류가 넓어졌다. 그들의 여성으로서의 지위는 여성이라는 수행적인 선언과 겉으로 보이는 "젠더 표현"(사용하는 이름이나 입는 옷 같은 것들)의 조합에 기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트랜스여성은 여성이다"를 주장한다 : 당신이 여성으로 정체화하면 당신은 여성이며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여성으로 대해야 한다. 몇몇 서클에서 여자 탈의실과 같은 곳에서 남성기를 가진 사람의 존재를 의문시하는 여성이나, mtf를 잠재적 섹스파트너로 보지 않는(때때로 이런 저항은 '코튼 실링'으로 불리우는데, 이 용어는 여성혐오적이고 남자가 이름붙였을 것 같다) 레즈비언들은 트랜스혐오자로 여겨진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뿐만이 아니라, 일부 트랜스여성도 그렇다. 이건 정말로 비합리적인 편견일 뿐인가?

역주) *수술 또는 호르몬 투여를 하지 않는 mtf
** 바이젠더 지정성별 남성

Observer 편지에 관해 논쟁하는 동안, 트랜스-TERF 논쟁이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한 한 남성은 다음과 같이 트윗했다.(그의 변호를 다른 말로 바꿔 이야기하겠다) '그래서, 당신들은' 우리가 거짓말을 멋지다고 믿어버리지 않게끔 막아야 한다는 거네요. 그러니까 "나는 고양이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비주류 집단에게 공격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내지는 가장 극단적이고 강경한 멤버들에 의해 박해받지 않게끔- 마치 우리가 특정한 사람들이 현실이 뭐라고 씨부리든 말든 다같이 판타지 세계에 산다고 동의한 것처럼. 내 페니스는 여성이에요.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신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배제적이에요. 고양이는 날 수 있어요. 무지는 지식이지요. TERF는 트랜스젠더들이 존재할 권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요. TERF는 트랜스 극단주의자들의 일부가 모두에게 현실에 대한 그들의 정의와 정치적 의제를 강요할 권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합니다. TERF는 황제에게 옷이 없다고 말할 준비가 된 사람들입니다. 내가 그 사람들(=메리와 피터)의 공포를 이해하지만, Mary Beard와 Peter Tatchell과 같은 사람들이 황제와 법정 앞에 서기보다는 TERF를 늑대에게 던질 의무가 있다고 느낀다는 점이 고민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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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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