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7.9.21일경 feminist current에 실린 Meghan Murphy의 칼럼을 번역한 것입니다.
http://www.feministcurrent.com/2017/09/21/terf-isnt-slur-hate-speech/

지난주에, 60세의 여성이 자유발언대에서 여러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녀는 "젠더란 무엇인가"라는 연설을 하기 전, 하이드 공원의 역사적 코너를 집회 장소로 정한 무리의 여성들과 함께 있었다. 마리아 맥라클란(Maria MacLachlan)을 때리고 걷어찬 남성들은 이 여성들에 반대하기 위해서, 그리고 "젠더 정체성"을 둘러싼 법제화와 새로운 방식의 대화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자들은 그들의 분노와 선동적인 레토릭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구조화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여성들을 "TERF(트랜스배제적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하였다. TERF는 닥치게 만들고, 희롱하고, 때리고, 그렇지, 죽이기 위한 현대판 마녀사냥이다.


"젠더 정체성"개념에 의문을 갖는 페미니스트들이 폭행당하고 살해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칭 좌파들이 굉장히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트위터 알계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더 큰 플랫폼을 가진 남성들, 그러니까 공적으로 안티파(Antifa)와 미국민주사회주의자(DSA) 같은 집단에 소속된 남성들은 동지들의 지지를 받으며 "터프를 때리자", "TERF를 단두대로 보내"같은 메시지를 자랑스럽게 증폭시킨다.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의 표현을 빌리자면, 많은 사람들이 "TERF를 벽에 매달아"라고 말하기 위해 이용된다.

<시녀 이야기>에서 반역죄로 처형당해 매달린 시체들


그 비유는 놀랍게도(그리고 무섭게도) 이런 남성들의 의도에 대해선 진실된 입장이다. <시녀 이야기>의 "벽"에는 처형당한 사체들이 매달리는데, 종종 그 목에는 "젠더 반역"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린다.* 시체들은 다른 이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이용된다. 반역을 꿈꾸지 말고, 대항하지 말고, 가부장제의 질서를 거부하지 말라고. 그리고 이는 정확히 "TERF"라는 말을 사용하는 남성들이 여성에게 말하는 것들이다. "우리의 규율에 따르지 않으면 처벌하겠어"

자유발언대에서 일어난 폭력을 비난하기는커녕, 많은 트랜스활동가들과 자칭 좌파남성들은 이를 축하하고 장려했다.

 

TERF가 중립적인 단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용어는 정반대로 사용된다. 그건 여성들이 스스로를 위해 만들
어 달라고 한 용어가 아니다. "slut(창녀)" "cunt(보지년)" 내지는 "bitch(썅년)"처럼, "TERF"는 여성을 닥치게 하려고,
괴롭히려고, 비난하려고, 모욕하려고, 수치심을 주려고, 그리고 쫓아내려고 낙인찍는 말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 말은
위협이다. 내가 살면서 cunt, bitch, slut이란 말을 남자한테 들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나는 거의 항상 그들에게서 폭력을
당할 위협을 느꼈다. 이 말들 뒤에 있는 경멸하는 분노- 뒤따라가서 한대 갈기고 싶은 욕망-은 너무 자주 현실이 된다. 나는
항상 이 말이 나한테 "너는 피지배계급이란 걸" 대놓고 일깨워주기 위해 사용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여성이 얼마나 자신
감있고, 거칠며, 자기확신에 차 있고, 강하고, 용감한지랑은 상관없이, 이런 말들은 그녀를 종속적인 그 자리에 머물게 한
다.

"TERF"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의도적인 조작으로, 여성해방운동의 기반이 되기는커녕 페미니스트들의 사상과 운동을 배제적이라 재구조화한다. 달리 말해, 이는 여성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적 조직화와 가부장제에 대한 여성주의 분석의 토대가 되는 기초이론에 대한 공격이다.


예를 들어, “TERF”라 불리는 우리들은 아래 항목을 포함해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다고 낙인찍힌다.


•여성이 피억압자 계급의 사람들이라고 이해 (여기서 피억압자 계급이란, 케이트 밀렛이나 쉴라 제프리스가 말한 성별
계급/카스트)
•선천적인/내재된 젠더 개념에 문제제기
•"젠더 정체성"에 대해 대화하기* (역주: 주로 비판하는)
•아이들은 트랜지션 과정을 정말 겪어야 하는가 질문하기
•이미 “TERF”라고 낙인찍힌 여성과 어울리거나 그런 여성을 옹호
•여성억압과 남성우월주의의 근원은 생물학적 성별에 기반한다고 이해
•젠더는 강요당한 것이며, 억압적이고 여성과 남성 간의 위계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이해
•“트랜스여성은 여성이다” 같은 도그마나 주문에 문제제기
•여성전용공간을 지지
• “남성” 과 “여성”이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는 이데올로기에 논박하기

이런 점들은 범죄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페미니즘의 근본이다. 달리 말해 어떻게 가부장제가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선, 당신은 우선 누가 지배계급의 구성원이고 누가 피지배계급의 구성원인지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당신은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 구조적이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당신은 여성이 선천적으로 "여성적"이지 않으며 남성도 선천적으로 "남성적"이지 않다는 걸 이해해야만 한다. 당신은 기꺼이 비판적인 대화를 하고 주류 이데올로기와 주류 정치적 담론 양쪽 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당신은 가부장제가 여성의 재생산능력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되었으며, 그러므로 그들의 입장에서 여성의 생물학을 “하등한” 것으로 취급하는 일이 매우 핵심적이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당신은 페미니즘이 여성이 중심이 되는 운동이며 따라서 여성은 그들 자신의 해방을 위해 지배계급의 구성원(남성) 없이 그들끼리 모이고 조직화할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TERF”라고 할 때 지칭하는 건 “페미니스트”다. “건방진 여성”이다. 그들이 종종 “배제적”이라고 말할 때 그 말이 의미하는 건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을 배제한다” 가 아니라 “남성을 배제한다”는 뜻이다. 젠더 비순응성은 페미니즘이 환영한다 — 페미니즘은 젠더규범에 순응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순응하는 데 관심있다면, 우리는 요구받은 대로 앉아서 닥치겠지.


“TERF”가 항상 비속어이긴 했지만, 이 단어가 더 이상 단순한 욕설이 아니란 건 결국 분명해진다. 그 단어는 혐오발언이다.


페미니스트 언어학자이자 옥스포드 대학의 언어 및 커뮤니케이션 교수인 데보라 카메론은 어떤 단어가 비속어인지 판단할 때 우리가 반드시 체크해야 할 주요 질문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 단어는 부과되었나 혹은 단어가 가리키는 집단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그 단어가 증오나 경멸을 드러낸다고 흔히 받아들여지는가?
•그 단어에 대응하는 중립적인 말, 그러니까 증오나 경멸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동일한 집단을 의미하는 표현이 있는가?
•그 단어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이를 욕이라고 여기는가?


그래, 위 질문들의 답을 생각하면, 그 단어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부과되고, 항상 경멸적이라 인식되며, 대응하는 중립적인 말이 있다.(즉, 개인은 단순히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쓸 수 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은 지속적으로 그 단어가 욕이라고 말해 왔다 — “TERF” 는 두말할 나위 없이 욕이라고. 여성이 이 욕설의 주요 타겟이 된다는 점과 흔히 폭력의 위협(최근엔 현실로까지)이 따라온다는 걸 고려하면, 우리가 지금 씨름해야 할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자유발언대에서 발생한 폭력적인 사건에 뒤이어, 나는 온라인에서 남성들에게 수백 통의 살해협박을 받았다.(가해자들 중 한 명이 “terf들 몇명 강간해”라고 그 속내를 공공연하게 내비쳤던 건 일도 아니었다) 나뿐만이 아니다. 자유발언대에서 벌어진 폭력을 축하하고 옹호하는 남자들에게 문제제기한 여성은 누구나 타겟이 되었다. 이 모든 위협은 “TERF”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식으로 낙인찍혀 왔다. 구체적으로는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그 정치학에 대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퍼뜨리고(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사람들을 죽이려고 한다거나 제노사이드를 옹호한다면서), 젠더 비순응자로 정체화한 남성에 대한 억압자로 재구조화하며, 대개는 사악한 마녀로 먹칠해서 폭력을 당해도 싸다고.

 

 

학대를 정당화하고자 억압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거짓말을 퍼뜨리고 이들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행위는 인종차별주의자와 외국인혐오자들이 예로부터 사용한 전략이다.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을 저지르기 위해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 실제로, 나치가 반유대주의를 퍼뜨리고, 반대파들을 진압하며, 사람들이 또다른 집단을 적대하게 만드는 데 선동은 핵심적인 장치였다. 독일 신문에서는 반유대주의적인 이미지와 메시지를 담은 만화와 광고를 찍어냈다.


“당신이 충분히 큰 거짓말을 하고 이를 반복하면 사람들은 결국 믿는다.” 히틀러가 통치에 대해 남긴 말이다. 그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며 단순히 공포 혹은 지적 게으름에 따라 행동하고, 철저히 목적과 근간을 따지지 않고 시류에 편승할 뿐이라고 믿었다. 유대인 학살은 대중이 동조했으므로 성공적이었다 —왜냐하면 개개인은 나치가 퍼뜨린 미신과 거짓말을 믿었고, 그들이 비판적으로 생각하거나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혐오발언방지법은 그때그때 다르게 적용되며, 애매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증오하거나 폭력을 저지르는 것 혹은 제노사이드를 옹호하는 일이 혐오발언에 해당된다는 걸 알게끔 하려는 의도임을 서술하고 있다.


젠더정체성 이데올로기에 문제제기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종종 제노사이드를 옹호한다며 (전략적으로)비난의 대상이 되므로, 확실히 해두자. “제노사이드”는 생물학적 성별이 실재라는 주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타고난 것이라는 사상에 문제제기하는 것도 아니며, 여성들만을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제노사이드는 다음을 뜻한다

:식별가능한 집단의 구성원들을 살해하거나, 그런 집단을 물적으로 파괴하려고 고의적으로 삶의 조건을 제약하는 일

 

달리 말해서, 페미니스트들은 전부 살해당하고,해고되고, 집을 잃고, 괴롭힘당하며, 침묵당하고,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학대당하고, 강제 노동 수용소에 보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https://twitter.com/laurelaiissexy/status/90995557719916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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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제노사이드를 옹호하거나 장려하는 일은 기소해야 할 위법행위다. 마찬가지로, 식별가능한 집단에 대해 혐오를 조장하거나, 평화를 깨뜨릴 것처럼 보이는 식별가능한 집단에 대해 공적으로 혐오/폭력을 선동하는 말을 하는 것(i.e. 예:자유발언대에서 일어난 사건)도 기소가능한 위법행위다.


그러나 이런 법률은 강제하기 어렵다. 이것이 필연적으로 나쁘단 건 아니다.우리는 좋든 싫든 트위터에서 말하는 걸로 사람들에게 빚져서는 안 된다. 확실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남성들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미디어나 다른 기관이 혐오발언을 일상화하는 것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는 일이다.


따라서 법을 넘어서서 의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미디어가 혐오 발언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만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출판물은 흑인을 설명하기 위해 n-word(흑인비하표현)을 사용해선 안 되고 유대인을 설명하기 위해 “kike”란 단어를 쓸 수 없다. 이런 표현이 인종차별주의를 강화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며 그리고/또한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억압당해 온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욕하는 일임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기관, 그리고 정부당국이 특정한 용어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조장하는 데 사용된다는 걸 알게 되면, 이런 단어의 사용을 장려하지 못하게 비난하거나, 단어 사용을 삼가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미디어 창구에서 아직도 그 단어를 무비판적으로 쓰고 있는 걸 목격한다.

“TERF”라 불리는 사람들을 폭력, 죽음, 그리고 제노사이드의 위협에 빠뜨리는 대다수는 남성이다. 이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어떤 면에서, 이 단어는 여성혐오적인 법안을 공적으로 만들지 못하게 막거나 그게 아니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옹호하면서 스스로를 좌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바쳐졌다. 그들이 "진보적일" 자격은 정치적 올바름(PC)의 허울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TERF”로 낙인찍힌 여성이 나치와 차별주의자랑 비교당하며, 트랜스젠더 운동이 소외된
사람들의 관심사에 연대하라고(명시적인 반페미니즘적, 개인주의적 이데올로기에도 불구하고) 요구하기 때문에 이 좌파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법한 구실을 획득한다. 사실, 그들은 즐기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마치 동지들한테 환영받으며 “썅년”*이라 고래고래 소리질러도 아무도 제동을 걸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다루기 힘든 특정한 여성을 겨냥해서“때리거나”불태우고 싶어한다면 아마 “마녀”가 더 정확할지도?)


 


https://twitter.com/petercoffin/status/909608113224978433
만약 “TERF” 가 단순히 비방하고, 침묵시키고, 모욕을 주고, 차별하며, 폭력을 조장하는 걸 넘어서 목적이 분명하고, 정확
하며, 유용한 무언가를 전달하는 단어라면 이는 아마도 중립적이거나 해롭지 않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 단어 자체
가 정치적으로 부정직하고 사실을 와전하기 때문에,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만큼 그 의도가 비
방, 폄하, 위협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 단어는 위험하고 정말 혐오발언의 자격요건을 충족한다. 예전부터 여성들이 이게
“TERF”의 결과가 될 것이라며 지적해온 반면, 그들은 흔히 무시당했다. 우리에겐 이제 “TERF”라는 붓으로 여성을 먹칠하
는 게 실질적인 신체적 폭력을 불러온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 당신이 우리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이제는 더 이
상 변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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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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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자: Charles Rae

역자: Team Hermes 남혜리

원제목: The differences between Mainstream and Radical Feminism[각주:1]

출처: 링크


※초벌번역은 작년 4월 7일경 역자의 페이스북에 게시하였으나 원저자가 글 내용을 수정함에 따라 재번역하였다.


최근, 두 페미니즘 노선 사이에 팽팽한 온라인 논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여성들이 그들의 차이점을 뒤로하고 가부장제 종말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여긴다. 불행히도,두 페미니즘 노선의 이데올로기는 서로에 대한 안티테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차이점이 확실히 정립되었고 차이를 좁힐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의 점 찍힌 항목들은 제 3물결(자유주의 페미니즘)과 제 2/4물결(급진주의 페미니즘) 간 최근의 분명한 차이점들에 대해 개괄한다.


자유주의/주류 페미니즘


  • 페미니즘의 정의: 성 평등
  • 정치적, 사적 영역에서의 평등에 대한 투쟁
  • 기회와 권리 획득에 대한 요구
  • 가부장제는 남성에게도 피해를 준다(=맨 박스)고 말한다
  • 주류

- 유명인사의 지지

- 국가적인 플랫폼

- 잘 알려진 메시지들: 평등한 결혼, 종교적 평등, 동일 임금, 임신중단권


  • 젠더 개량하기

- 정체성의 정치학

- 생물학에 기반을 두지 않음

- 개인은 젠더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

- '여성성'에 대한 비판을 여성혐오로 간주

- 여성성이 역량을 강화한다고 주장


  • 트랜스여성 포용적

-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남성[각주:2]을 페미니즘이 받아들일 것을 추구함 


  • 모든 여성전용 공간을 여성으로 정체화한 남성에게 개방하길 원함

- 탈의실, 화장실, 스포츠팀 등등

- 여성전용 가정폭력 쉼터, 여성전용 안전지대

- 여성의 리더십역할, 여성들을 위한 기회, 펀딩, 장학금

- 컨벤션, 축제, 모임 등


  • 성적자유주의, (aka SM지지자)

- 여성에게 자율권을 주는 수단으로 성노동을 언급

- 성매매를 여성을 위한 실용적인 경제적 기회로 취급

- 건강한 성적 충동이라며 사디즘을 지지함(BDSM)


  • 폭넓은 교차성 

- 3물결에선 페미니즘은 모든 사람을 끌어안아야 하는 운동이라 이론화한다. 즉 남성 앨라이들에게 공간을 마련해 주고, 모든 이들을 위한 범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남성, 게이나 헤테로남, 여성으로 정체화한 남성을 지원해야 한다는 뜻.


  • 슬로건: “트랜스여성은 여성이다”,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 “페미니즘은 쿨하다”, “시스젠더 여성만이 아닌, 자매들을 지지해 주세요”,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 “페미니즘은 욕이 아니다, "페미니스트는 이렇게 생겼어", "TERF를 때려"

  • 전문 용어: 트랜스여성혐오, 시스젠더, TERF(트랜스젠더 배제적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SWERF[각주:3], 논바이너리, 에이젠더[각주:4], 슬럿쉐이밍[각주:5], 창녀혐오, 강간문화, 성에 긍정적인[각주:6], 유리천장, 맨스플레인, 나쁜 페미니스트, 3의 물결, 코튼실링[각주:7], 트랜스레즈비언, 트루스컴[각주:8]


급진주의 페미니즘


  • 페미니즘의 정의: "남성으로부터 여성 해방"
  • 정치적, 사적 영역에서의 해방을 위한 투쟁: 그들은 남성이 "평등" 패러다임을 부정해온 것 같이 폭력과 억압할 자유를 원치 않는다고 주장한다.
  • 공간, 저술작업을 요구
  • 가부장제는 남성을 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남성은 가부장제로부터 이득을 얻는다. 
  • 지하에 파묻힘

- 유명인사의 지지 없음

- 전국적으로 연단에서 쫓겨나는 신세(레프트포럼 사건, 밴쿠버 여성 도서관 사건, 저자 나타샤 차트[각주:9], ACLU(미국시민자유연맹) 회장 마야 딜라드 사임[각주:10], 그 외 수많은 폭력의 위협)

- 논쟁적인 메시지: 결혼제도 폐지, 종교 비판, 노동인구의 재구조화, 임신중절 지지[각주:11], 자궁흡입술 지지, 자연분만 옹호, 분유식 반대, 노르딕모델 지지


  • 젠더의 폐지 추구

-  '성별을 기반으로 한 위계적 사회화(즉 성차별주의)와 억압의 체계'라는 젠더의 본래 정의를 사용

- 여성들이 입는 옷과 소유물 일체를 성적으로 대상화하기 위한 종속적,수동적인 성격 훈련에 저항

- 훈련된 남성 성역할인 남성적 사회화, 마초이즘, 나르시즘을 비판

- 생물학에 기반을 둔 섹스/젠더 분석법

- 페미니스트 이론으로서의 '여성성' 비판


  • 트랜스남성 포용적

- 모든 여성을 남성우월주의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함


  • 어떤 남성/트랜스 여성도 여성전용 공간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함

- 화장실, 탈의실, 스포츠팀 등등

- 여성전용 가정폭력 쉼터, 여성전용 안전지대

- 여성의 리더십역할, 여성을 위한 기회, 펀딩, 장학금

- 컨벤션, 축제, 모임 등


  • 성매매와 포르노(돈 받는 성매매) 폐지론자 

- 포르노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폭력을 일상화한다

- “성노동”은 억압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된 여성억압이자 착취로, 남성의 수요에 맞춰 여성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한다.


  • 교차하는

- 어떻게 생물학적 성별에 기반한 억압이 계급, 인종을 기반으로 한 억압과 교차하는지 연구(i.e 구조적 교차성)

- 페미니즘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성별을 기반으로 한 계층적 억압에 저항하는 모든 여성을 위한 것

-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고 오로지 지지자(Ally)로서만 가능하다. (여성으로 정체화한 남성도 포함됨)


  • 슬로건: "문제를 명명해라" (예: 남성 폭력),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여성이 우선이다", "나는 급진 페미니스트지, 괴짜가 아니다", "남성 폭력을 끝장내자" "여성 전용", "트랜스여성은 남성이다",  "포르노는 페이강간[각주:12]", "여성은 느낌이 아니다" 

  • 전문 용어: 형평성, 젠더비판적, 소아성도착 문화(by Alicen Grey), 강간 문화, 성 비판적[각주:13], 유리천장, 맨스플레인, 남성 테러리즘, 4의 물결/2의 물결, 피크 트랜스[각주:14], 젠더교





  



  1. 처음 번역할 당시 저자는 Mainstream이 아니라, Liberal feminism이라 제목을 명시하였다. 이는 처음 글을 게시한 역자의 페이스북에서도 확인 가능. https://www.facebook.com/RFHyeriNam/posts/192426304593898 [본문으로]
  2. 해외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이들을 MtT(Male to Trans, 남성에서 성전환한) 혹은 TIM(Trans-identified Male,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남성)이라 부른다. 구독자가 14000명이 넘는 젠더크리티컬 레딧에서는 MtT를 버리고 TIM을 쓰는 분위기. 이 링크에서 토론을 볼 수 있다. https://www.reddit.com/r/GenderCritical/comments/7eghte/on_language_mtt_vs_timtif_which_acronym_is_the/ [본문으로]
  3. Sex Worker 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즉 성노동자 배제적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본문으로]
  4. 접두사 a-는 '없음'을 의미한다. 즉, 에이젠더(agender)란 젠더가 없는 젠더라는 뜻이다. 참고로 많이들 에이젠더와 혼동해서 쓰는 에이섹슈얼(asexual)은 무성애자를 뜻하며, 70억 젠더 정체성 분류에 해당되지 않는다. [본문으로]
  5. 사람들, 특히 여성이 성 행동에 대한 통념을 깼다고 인식되었을 때 가해지는 사회적 오명의 한 형태. (영문 위키백과 번역) [본문으로]
  6. 소아성도착증, BDSM, 성매매, 다자연애, 포르노 등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성적 실천과 충동을 긍정하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성적 자유주의자로는 게일 루빈이 있다. [본문으로]
  7. 시스젠더들이 트랜스젠더를 섹스 파트너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적 장벽(https://en.m.wiktionary.org/wiki/cotton_ceiling 의 설명 번역) 역주) 한마디로 외않자조? [본문으로]
  8. 트랜스메디칼리스트 혹은 트랜스근본주의자로도 알려져 있다. 다른 트랜스젠더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위신을 깎는 트랜스젠더를 뜻한다. 이들은 개인이 성별 위화감(여기선 본인 신체에 대한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선 진짜 트젠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http://sjwiki.org/wiki/Truscum#cite_note-1의 설명 부분번역 [본문으로]
  9. 해외 래디컬 페미니즘 노선의 언론 feminist current의 저자. [본문으로]
  10. 마야 딜라드(Maya Dillard)는 메일바디 트랜스젠더와 화장실을 함께 쓸 수 없으며,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출입 옹호가 여성과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발언했고, 결국 사퇴하게 되었다. [본문으로]
  11. 리버럴보다 한발 더 나아가, 과잉 인구를 조절하는 데도 효과적이고 의미있는 방법으로 간주함, urban dic 출처 [본문으로]
  12. 원문에서는 'paid rape'라 표현하였는데, 이미 워마드에서는 성매매를 대체하는 용어로 '페이강간'을 사용하고 있기도 해서 굳이 풀어서 번역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13. 성적 자유주의와 반대되는 입장으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일찍이 성 전쟁Sex War에서 이들이 말하는 자유가 남성의 욕망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하였다. 흔히 성자유주의자들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을 보수 기독교와 엮어 성적 보수주의로 매도하나, 이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정치질일 뿐이다. 성에 비판적이라는 말은 남성의 욕망을 반영하는 성매매, 포르노, BDSM, 아동성도착증 따위의 실천을 비판하는 입장이지, 여성의 자위나 생식기마저 저속하게 보는 견해가 아니다. [본문으로]
  14. 어떤 사람이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의 모든 것이 옳지 않다 여기고, 트랜스정치학의 지지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 (http://peaktrans.tumblr.com/about 의 설명 번역) a.k.a 탈젠더교 각성타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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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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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제도에서, 비교적 인도적으로 노비를 대하는 주인이 있을 수 있고, 혹사시키는 주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간에 주인과 노비 사이에 어떤 계급이 존재한다는 점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섬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거기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었을 수는 있겠으나, 노비의 신분으로서는 결코 주인과 동일한 권리를 누릴 수 없다. 


  노비문서를 불태웠음에도 다시 노비로 돌아갔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노비로 살아온 생활에 이미 익숙해졌고, 다른 직업을 가질 교육기회를 갖지 못해 무엇을 해야 할지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다시 노비로 돌아간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노비들이 해방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노예 제도가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성매매 담론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진상 손님이든 그나마 좀 나은 손님이든 간에 성구매자와 판매자라는 위치가 변화하지는 않는다. 돈을 받는 대가로 여성은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여 남성을 만족시켜야 하며, 이 시스템 내에서 외모, 나이 등의 요소로 값어치가 매겨지는 상품이 되며, 주기적으로 성병 검사를 받는 등 상품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관리'가 요구된다. 


   활동가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도 결국 다시 돌아가는 여성들이 있다고 한다. 당장 수입이 적어지는 것도 있고, 그 생활에 익숙해져서 굳이 빠져나올 필요성을 못 느껴서도 있다. 어쩌면 직장을 구해도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진 않을까, 하고 사회적 시선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반성매매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결국 이들을 성매매로부터 구출해내야 한다고 믿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노예제도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상품화시키는 억압이기 때문이다. 젠더와 빈곤이 겹쳐져 있는 억압. 


   현재 반성매매 진영에서도 이러한 성매매 여성들의 문제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교육기회 및 재정적인 지원이 더 확대되어야 하고, 꽃뱀, 걸레, 된장녀, 가정의 파괴자로 낙인찍는 현재의 사회적인 인식은 앞으로도 꾸준히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성매매 여성에게 너 때문에 여성인권이 낮아진다고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건 마치 탄압받은 흑인 노예들에게 인권이 낮아진 책임을 묻는 것과 똑같으니까. 


   나는 성노동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구조적인 억압을 은폐하고 이를 '노동'으로 치환하는 것은 누구의 욕망을 합리화시키나. 성매매가 완전히 비범죄화된다면 결국 누가 웃는가,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다. 성노동론은 남성의 욕망에 부합함으로써 남성들이 여성을 소유하려 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자유롭게 섹스하는 여성을 걸레로, 창녀로 낙인찍는 일은 지속될 것이다. 결국 성노동론은 여성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오랫동안 작동되었던 성녀- 창녀의 이분법을 해체시킬 수 없으며 상품으로 착취당하는 여성들을 기만한다.


*본 글은 2017년 6월 9일 필자의 페이스북에 1차로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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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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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코르셋이란?
여성을 억압하는 모든 사회적 규범을 뜻합니다. 보통은 외모에 한정해 쓰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실제로는 애국, 효도, 종교에도 코르셋을 붙여서 사용합니다. 좁게 외모에만 한정할 때는 꾸밈노동으로, 보다 넓은 의미에서 사용될 때는 프레임frame으로 치환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특별히 외모와 관련된 의미로 한정하여 다루겠습니다. 

1. 꾸밈욕구 자체가 나쁜 건가요?


A. 아니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꾸미고 싶어하는 심리는 인정합니다. 이 부분 역시 많은 분들이 '래디컬 페미들은 욕망을 억압한다'고 오해하는 지점입니다. 꾸미고 싶은 욕구를 무조건 부정하고 누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신에 '운동의 차원에서' 다른 여성들의 코르셋을 조이지 않는 방식으로 욕구를 채우거나 혹은 다른 욕구로 대체할 수도 있겠지요. 꾸미는 걸 좋아한다면, 그 대상을 바꿔보는 거 어떨까요. 지금까지 꾸미는 대상이 '나'라는 여성의 몸이었다면 그걸 다른 걸로 바꿔보자는 이야기예요. 한 예로, 집에 소품을 놓고 가구를 바꿔 보는 건 '집'을 꾸미는 게 되겠지요.  페미스티커를 모아 노트북에 붙이는 것도 욕구를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이겠고요. 제 경우에는 블로그 스킨을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욕구를 해소하고 있습니다. 여담인데 나중에 웹디자인을 좀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네요 (웃음) 이런 방식의 꾸미기는 내 욕구를 채우면서도 억압을 재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탈코르셋을 지향하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문제가 되는 건 욕망이 아니라 그걸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각자 자신의 운동방향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내 필요를 채워줄 방법을 고민해 보면 좋겠어요. 

2. 우리가 바라는 건 꾸미든 안 꾸미든 상관없는 세상이 아닌가요? 왜 코르셋을 벗어야 하죠?

A. 맞아요. 결과적으로 내가 꾸밈노동을 하든 안 하든 그로 인해 내가 어떤 사회적 불이익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겠지요. 그런데, 이미 우리는 코르셋을 학습했잖아요. 이미 꾸미지 않는 것보다 꾸미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사람들도 사회의 미적 기준을 따르는 여성에게 관심을 주고 이를 바람직한 것으로 여긴다고요. 기울어진 운동장의 은유 아시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이며, 그렇기 때문에  "여혐 남혐 모두 나빠요"로 대표되는 기계적 중립이 사실 중립이 아닌 거. 코르셋-탈코르셋도 마찬가지예요. 수평을 맞추기 위해서는 '코르셋도 억압인데 탈코르셋도 억압이에요' 가 아니라 코르셋을 벗는 걸 더 강조해야 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은유]



3. 특정한 스타일을 강요함으로써 역코르셋을 입히고/검열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A. 역코르셋은 역차별과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성차별이 디폴트인 세상에서 남성도 역차별당한다고 주장하는 게 말이 안 되듯이, 코르셋이 디폴트가 된 사회에서 이를 거부하자는 게 다른 억압이 될 수는 없습니다. 탈코르셋을 지향하는 여성들은 코르셋을 입는 여성들의 삶 하나하나를 검열하지 않습니다. 앞서 질문에서도 답했지만 우리는 코르셋을 입는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페미대법관 행세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코르셋을 입지 않는 여성의 경우에는 분명히 개인의 삶 가운데서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역코르셋 혹은 검열이라고까지 주장하는 데는,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심리적 기저에 깔려 있지 않은가요?

  또한 특정한 스타일을 강요한다고 하는데, 뒤집어서 말하면, 꾸밈노동을 할 필요가 없는 남자들은 죄다 획일화된 패션이라는 거네요? 물론 와꾸와 성기 사이즈는 획일화   머리도 삭발을 할 수도 있는데 투블럭이나 숏컷으로도 다양하게 스타일링이 가능하고, 굳이 절바지가 아니어도 트레이닝 팬츠, 통바지 등 편한 바지를 고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는 꼴빼미 페이지에 사진으로 잘 나와 있으니 첨부합니다. 

사진 출처: 페이스북 꼴빼미 페이지

4. 코르셋을 입는 사람은 페미니스트가 아닌가요?


허수아비 패기는 그만합시다. 우리는 코르셋 자체는 페미니즘 실천이 될 수 없다고 말했지, 코르셋을 입는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한 적 없습니다. 페미니스트 개인과 페미니즘 실천은 명백히 다르고요. 페미니스트도 여성혐오를 할 수 있다는 말은 무엇을 시사할까요. 우리 페미니스트 개인이 하는 모든 행동이 페미니즘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페미니스트 개개인은 가부장제로부터 비롯된 사고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여성억압적인 규범을 실천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코르셋을 입는게 여성억압에 순응하는 거라고 하니, 자신의 신념(페미니스트)와 행동(코르셋을 입음)이 불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 말을 하신 거겠죠? 축하합니다, 인지부조화 단계까지 잘 오셨습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 신념과 행동을 일치시키도록 합시다.  


5. 결과적으로 코르셋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는 뜻 아닌가요? 무슨 자격으로 코르셋을 벗으라고 하는지?


 A.  맞아요. 사실 아직 내가 벗지 못한 코르셋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코르셋을 벗을 수 없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했을 때, 누구나 살면서 거짓말을 한 번쯤 하고, 따라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없으니 아무도 도덕을 가르칠 수 없다는 말도 성립하거든요. 그러나 우리는 왜 도덕을  가르치냐고 묻지는 않아요. 평소 행실이 심각하게 부도덕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굳이 교사의 자질 운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덕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규범이기 때문입니다. 

  코르셋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코르셋을 다 벗지 못했습니다. 알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벗지 못하는 코르셋이 있고, 몰라서 그냥 받아들이고 있는 코르셋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건 페미니스트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목표는 여성해방입니다. 가부장제 하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여성에게만 주어지던 역할과 관습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당신은 아마도 변화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 질문을 했겠지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습관을 바꾸는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가 내면화한 취향과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코르셋이 본질적으로 여성억압적이며,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이해한다면 이게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점에 동의하시겠지요. 처음부터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실천해 나가는 게 어떨까요? 


6. 자기만족으로 꾸밈노동을 할 수도 있잖아요.


꾸밈노동이 단순 자기만족이라면, 꾸밈노동을 하는 사람 못지않게 꾸밈노동을 하지 않고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꾸밈노동을 하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지요. 이는 그 자기만족이 단순히 개인의 취향만을 반영한 것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심리적 방어기제입니다. 우리는 사실 꾸밈노동이 대단히 귀찮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화장을 예로 들어 볼까요? 우리는 적어도 출근하기 전 30분은 화장하는 데 시간을 따로 써야 하고, 먹을 때도 조심해야 하며, 자주 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수정해야 하고, 너무 자주 해도 피부가 상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전에 또 클렌징 용품으로 지워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라는 것도. 하지만 동시에 꾸밈노동을 하지 않았을 때 불이익을 받는다는 점도 잘 알고 있어요. 취업할 때에도 (단순 알바일 뿐인데도) 필요하며, 꾸미지 않으면 연애/결혼시장에서 불리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꾸미지 않으면 학생이거나 기혼 여성이라는 이분법에 구겨넣어지고, 왜 꾸미지 않느냐는 오지랖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사회의 기대에 맞춰 자신을 꾸미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스스로 꾸미면서 예쁘다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의 기준은 어디에서 왔나요? 정확히 사회에서 정한 기준이 아니던가요. 우리는 눈썹, 코, 눈 크기, 쌍꺼풀 여부, 입술 색, 피부톤, 얼굴 크기, 턱선, 치아 배열, 팔뚝과 허벅지 굵기, 가슴 모양, 뱃살, 그리고 성기까지 사회의 특정 미적 기준에 맞추도록 강요받고 이것이 아름다운 모양이며 여성으로서 당연히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배웁니다. 얼굴을 작게 만드는 기술인 쉐이딩은 있지만 얼굴을 커 보이게 하는 화장법은 없어요. 특수 분장이 아니고서야 대개는 여드름과 흉터를 가리기 위해 화장을 한다. 피부톤을 고르게 하려고 CC크림을 바릅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모습에 만족할 뿐이라 하지만,아름다움의 기준은 사회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요?

그래서 우리는 자기만족을 위해 꾸밈노동을 하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너 무인도 가서도 화장하고 힐 신고 다닐거냐고. 이 때 무인도는 꾸밈노동에 대한 평가나 미의 기준이 전혀 없는 공간을 상징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없을 때 과연 굳이 뼈를 깎는 성형을 하고 몸에 해로운 화장을 할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움과 함께 짝을 이루는 개념은 추함이에요. 아름다움은 추함이 있을 때 비로소 상대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사람 두 명만 있어도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누가 더 낫다며 외모를 품평하고,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아름답고' 그렇지 않으면 '못생긴' 게 됩니다. 그런데 무인도에 자신과 비교할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꾸미기 전의 자신과 꾸며놓은 자신의 모습을 놓고 비교할 뿐이거든요. 아름답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주체는 오직 자기 자신이고 꾸미지 않는다고 아무도 고나리질하지 않아요. 이 때, 꾸밈노동을 과연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요?

꾸밈노동은 자기만족이 될 수 없습니다. 이는 어찌되었든 여성에게만 일종의 '예의'로서 요구되는 억압이며 불편하고 귀찮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직장에서 요구하기 때문에, 연애/결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은 단순히 인정받고 싶어서 이를 수행하며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서 자기만족이란 이름을 붙였을 뿐입니다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꾸준히 화장품과 머리와 옷에 돈을 써가면서 예뻐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당연히 치르는 비용이라고 안도하는 것이겠지요.

7. 코르셋을 저항적 의미로 전복할 수 있지 않나요?


7-1. 남자들이 싫어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꾸미는 경우
   전복한다는 말을 들어보면, 전복의 근거로 남자들이 싫어하고 피한다는 점을 항상 내세운다. 이를테면 쎈 화장은 남자들이 싫어하므로 전복이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의 한계는 여전히 남성을 평가의 주체로, 여성을 평가의 객체로 둔다는 점입니다. '남자가 싫어하니까' 혹은 '사회적 시선이 안 좋으니까'라는 말은 여전히 남성 혹은 가부장적인 사회의 시선에 신경쓴다는 말 아닌가요? 기존의 꾸밈노동에서 여성은 평가의 객체이며 남성은(그리고 때로는 다른 여성들도) 평가의 주체가 된다. 기존의 권력관계를 뒤집지 못하면서 코르셋을 전복했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정말로 전복을 하고 싶거든, 여성이 남성의 시선을 신경쓰는 게 아니라 남성이 여성의 눈치를 보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그동안 여성은 얼굴형, 눈썹, 눈매, 쌍꺼풀 여부, 콧대, 치열, 입술 두께, 턱 모양, 피부, 가슴의 모양, 손/발톱, 뱃살, 허리굵기, 다리굵기, 체모, 엉덩이, 심지어 성기 모양까지 나노단위로 쪼개져 품평을 당해 왔습니다. 그 기준은 곧 여성들을 옭아매는 코르셋이 되었고요. 따라서 코르셋을 전복한다는 건, 남성이 평가의 객체가 되고 여성이 평가의 주체가 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성은 특정한 미적 기준을 만들어 자르셋을 씌우고, 남성은 그 자르셋을 써야 한다고요.

7-2. 특정한 연령대의 여성은 꾸밈노동을 하지 못하게 억압당합니다. 학생이거나 나이가 중년 이상인 경우요. 


A.  좋은 지적입니다. 맞아요. 특정 연령대의 여성은 꾸미면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거나(학생) 주책이라는(중년)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동일하게 코르셋은 여성억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화장품은 연령과 상관없이 피부에 유해합니다. 연령과 상관없이 성형은 항상 부작용의 위험이 있고 돈을 들여 자신의 뼈와 살을 깎아내는 일입니다. 치마를 입으면 바지를 입을 때보다 분명히 '더' 행동에 신경쓰게 되고요. 나이가 어리거나 혹은 많으면 하이힐과 브래지어가 불편하지 않게 되나요?

  만약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미 몸이 거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매일같이 하이힐을 신고 출근하면 불편한 감각은 점점 무뎌지겠지만, 그러다 어느 날 단화를 신으면 감각이 다르다는 걸 느끼잖아요. 한동안 단화를 신다가 다시 힐을 신으면 발을 꼭 조이는 그 느낌이 낯설게 와닿잖아요. 그런 겁니다. 그 불편함 자체가 이미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규범이며, 이미 강요당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걸 생각해 주세요. 예쁘게 꾸며진 상품으로, 인형으로 취급당하는 여성들을 생각해 주세요. 꾸밈노동은 어떠한 권력이 아닙니다.


8. 현실적으로 코르셋을 벗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A. 알고 있습니다. 뷰티, 패션, 연예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본인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니까요. 그러나 동시에 이 산업은 분명히 사회적 미의 기준을 재생산하고 다른 여성들에게 이를 권장합니다. 기획사에선 연예인들에게 특정한 옷을 입히고 성형을 요구하며 '대중적으로 잘 팔릴 법한' 상품으로 만들고, 연예인 역시 다이어트 비법이나 화장법 등을 공유하며 사람들이 잘 소비할 법한 외모로 성형함으로써 여성들이 이를 모방하도록 합니다. 화장품 회사에서는 광고비를 지불하고 연예인에게 특정 상품을 광고하도록 하고, 여성들을 후려쳐 가며 '자존감을 높이고 완벽해지기 위해' 자기 회사의 제품을 쓰라고 합니다. 성형 산업도 마찬가지고요. 패션몰에서는 대개 날씬하고 예쁜 모델을 내세워 옷을 입히고 다른 여성들이 이 옷을 입으면 모델처럼 섹시한/청순한/귀여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것처럼 광고합니다. 따라서 이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코르셋을 강요받기도 하지만 다른 여성들의 코르셋을 조이는 일에 동참하는 셈이지요.

  그 분들께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과감하게 코르셋을 조장하는 이 일을 버리고 다른 직종으로 갈아타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생계를 위해 타협하되 내부자이기 때문에 참여할 수 있는 선에서 연대하는 것입니다. 그 일에 종사하면서 여성이 어떻게 상품으로 다뤄지고 착취당하는지 익명으로 고발하고 공론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SNS상에선 페미니스트 계정과 업무용 계정을 분리하여 적어도 페미판 안에서는 코르셋을 조장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 아닌 남성만을 대상으로 자르셋을 씌우는 일도 고민해 볼 수 있겠습니다. 세번째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이 페미니즘 실천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래디컬 페미니스트인 제 입장에서는 첫번째를 가장 바람직하게 생각하지만, 이는 상당한 결단을 필요로 하며 우리가 생계마저 책임질 수 없으므로 두번째 선까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앞에서 누누이 여성억압적이라고 말했잖아요. 여성인 내가 좋아서 하면 다 페미니즘 실천입니까? 내가 주체적으로 하면 다 페미니즘이에요? 그건 아니잖아요. 자신의 행동을 페미니즘에 끼워맞추지만 마시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선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답을 찾으시길. 


9. 화장품 회사나 성형외과 앞에서 시위나 하지, 개인을 왜 공격하는가?



A. 첫째로, 그렇다면 역으로 래디컬 페미니스트에 대한 비판 역시 성립할 수 없습니다. 본인은 비판받아선 안 되지만, 우리는 비판받아도 되는 존재입니까? 또한 개인의 취향 혹은 습관을 비판하는 것이 개인의 인격을 공격하는 건 아닙니다. 애인, 덕질하는 연예인이나 캐릭터,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난하면 당신을 공격하는 게 되나요? 취향이나 습관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마세요. 코르셋이 여성을 억압한다고 말했지 당신이 그 자체로 여성을 억압한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단, 다른 여성에게 6너는 여자가 되어갖구 왜 안 꾸미니9 6성형 좀 해라9라는 식으로 코르셋 씌우면 여성혐오 맞습니다)


 또한 뷰티-성형-연예 산업은 서로 맞물려 있는 거대자본이며 이들이 합법적으로 코르셋을 장려하는 걸 우리 페미니스트들이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항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개인 소비자로서 기업을 상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체로 불매하는 것입니다. 소비하지 않고, 이러한 산업이 결과적으로 여성혐오와 관련되어 있다고 주지시키는 것입니다. 수요를 줄이면 공급은 알아서 줄게 되어 있습니다.


10. 소수의 사람들이 실천한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는다.


A. 페미니스트 왜 하냐고 묻고 싶은데요. 아니, 이건 비단 페미니즘뿐 아니라 모든 사회운동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나 혼자 해서 뭐가 바뀌냐'는 사고방식으로는 어떤 운동도 할 수 없어요. 나'만' 하면 개인적 실천이지만, 여럿이 하면 운동이 됩니다. 더구나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가 발달한 시점이므로 개인이 온라인에서 한 말은 충분히 파급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페미니즘의 부흥은 메갈리아란 온라인 커뮤니티로부터 시작되었고 거기에서 나온 수많은 띵문이 각종 커뮤니티와 SNS로 퍼져나갔습니다. 메갈리아 이전에 개념녀였던 많은 여성들이 지금은 여성혐오에 대항할 언어를 얻었습니다. 트위터에서 시작된 #XX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또 얼마나 많은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했는지. 탈코르셋 실천이 왜 파급력이 적을 것을 두려워합니까? '나 혼자 한다고 뭐가 바뀌겠어'가 아니라, '나부터 하면 됩니다'


11. 왜 코르셋 전시를 반대하나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코르셋을 SNS상에 올리는 것을 반대합니다.


1. 신뢰의 문제
학생들한테 욕하지 말라 가르치면서 혼낼 때 쌍욕하는 선생님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금연을 권장하면서 흡연하는 사람을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꾸밈노동이 여성에게 강요된 것이라 주장하면서, 취업하려고 성형하거나 화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원하면서, 업업한 사진을 남들 다 보는 공간에 올리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게 코르셋 전시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꾸밈노동이 억압이라고 말하고 싶으면,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세요. '어쩔 수 없이' 사회생활을 위해 한다고 해도, 꾸밈노동을 정말로 억압이라 느끼고 때려치고 싶었으면 보란듯이 전시할 수는 없어요. 오히려 '내가 현실과 타협했구나...' 하면서 속으로 어금니를 깨물고 말지.

2. 관찰,모방학습 효과

모든 랟펨들이 그렇진 않습니다만, 빨간약 한번 먹었다고 안심해선 안 되듯이 코르셋을 버려도 종종 돌아가고픈 충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충동 대신 숨막힌다고 느끼기도 하고요. 이미 페미판 밖은 코르셋을 장려하는 풍조가 너무 만연하고,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아?' 하면서 조금씩 타협하다 보면 결국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코르셋을 아예 전시하지 않는 공간을 원합니다.

또한 페미니스트 계정으로 새로운 페미들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들은 당신의 계정을 관찰함으로써 꾸밈노동은 마음대로 해도 괜찮은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 화장을 하는 페미들이 늘어나야 꾸밈노동이 강제되는 세상을 바꿀까요, 아니면 안 하는 페미들이 늘어나야 세상을 바꿀까요? 기존에 페미를 모르는 사람들도 하고 있던 걸 계속해봐야 코르셋이 강제되는 문화를 바꿀 순 없습니다.

앞서 제가 SNS공간의 특징에 대해 말했지요. 개인적으로 올리는 사진이라도, 나 혼자 보는 공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보고 있다는 것. 그래서 당신이 전시하는 코르셋을 보고 압박감을 느끼거나 영향을 받아 따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 그 점을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3. 스스로를 '평가받는 위치로' 대상화

올리시는 분들의 솔~찍헌 심정은 사실 이거 아닌가요?
'남들이 내 사진 보고 칭찬해 줬으면 좋겠다, 좋아요 누르고 반응해 줬으면 좋겠다 ...'
물론 칭찬 들으면 기분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계속 자댕이들이 사람 외모품평하는 글에 뭐라고 반응해 왔었나요? 칭찬도 평가라고 말했습니다. 니가 뭔데 날 '평가하려 드냐'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평가받는 사람은 평가자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는 걸요. 면접관과 지원자가 있을 때 눈치보는 건 지원자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몸매 사진이나 화장한 사진을 올리며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할 때 나는 평가당하는 대상이 됩니다. 어떤 반응을 기대하는 것도, 그리고 그 반응에 따라 실망하는 것도 전시하는 사람이에요. 보는 사람들은 아쉽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평가당하는 위치로 대상화하지 마세요. 그리고 반응하는 사람들도 거기에 예쁘다고 반응하지 마세요. 친하다는 이유로 외모품평이 평가가 아니게 될 수는 없습니다. 사회적 미의 기준에 따라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는 문화는 페미판 밖은 물론  안에서도 용인되어선 안 됩니다.


12. 저는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낮은 편이에요. 꾸미지 않은 모습에 자신이 없어요.


A.  만약 왕따를 당하거나 이 때문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 전문가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며 회복하는 게 우선입니다. 외모 때문에 자해를 시도하거나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는 페미니스트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면, 한번 꾸밈노동을 하지 않는 한남과 비교를 해 보세요.  남초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심지어 이 정도 외모는 잘생겼다고 정신승리하기까지 합니다. 반면 주위 여자들을 보면 어디 고쳐야겠다고, 어디 살빼야겠다고, 거울을 보면서 한숨쉬는 사람들이 널렸죠. 이는 사회의 성별 이중규범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고기 자르듯 여성의 외모를 부위별로 나눠 등급을 매기고 '완벽하지 않다'며 후려칩니다. 반면 남성의 경우에는 '그래도 이 정도면 훈남이야'라면서 약간의 하자 정도는 넘어가줍니다. 혹시 당신도 그런 이중적인 시선으로 자신과 타인을 보고 있지는 않았나요? 왜 그남들은 저리 당당하게 못생긴 얼굴을 들고 다니는데 당신이 꾸미지 않는다고 위축되어야 하나요?

[여성과 남성이 스스로를 보는 방식의 차이]


13. 탈코르셋, 무엇부터 실천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A. 첫번째, 거울 안 보기부터 시작합시다. 매우 사소한 방법 같지만 의외로 효과가 좋습니다. 우리가 거울을 왜 보나요? 남에게 비춰지는 내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 보잖아요. 거울 앞에서 이에 뭐 끼진 않았나, 얼굴에 뭐가 묻진 않았나, 화장이 잘 되었는지, 오늘 코디가 괜찮은지, 살이 얼마나 쪘네 빠졌네 확인하잖아요. 우리는 거울 앞에 서면 스스로의 외모를 자연스럽게 평가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울을 안 보는 건 외모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첫 번째 걸음입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남에게 비춰지는 내 모습을 확인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덜 신경쓰게 됩니다.

두번째, 탈코르셋 실천 일지를 쓰면서 자기평가를 하도록 합시다. 구체적인 기록 방법 및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목표행동 설정: 자신이 벗고자 하는 코르셋을 적어봅니다. 왜 그 코르셋을 벗고자 하는지 스스로 이유를 찾아 적어봅니다. 

2) 기초선 측정: 우리가 24시간 꾸밈노동을 하지는 않으며 각자 빈도가 다르므로, 얼마나 자주 코르셋을 쓰는가 혹은 어떨 때 그것을 하는가 적습니다. 

3) 계획 수립: 구체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빈도를 줄여나갈 것인지 적습니다. 만약 머리를 자르는 것 같이 빈도로 표현할 수 없는 행동이라면 언제 그 행동을 실행할지 적어봅니다. 이 때, 계획을 실천/실천하지 않을 경우 자신에게 어떤 상/벌을 줄 것인지도 함께 적습니다.

4) 계획 실행: 앞서 세운 계획을 실행합니다. 

5) 피드백: 주기적으로 피드백을 통해 자신이 잘 실천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잘하고 있으면 약속한 보상을 줍니다. 


세번째, 오프라인 시위나 래디컬 페미 강연, 모임 등에 참석하도록 합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무엇보다도 눈으로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확인한다면 큰 자극이 될 것입니다. 저도 오프라인 시위에 종종 참여하는데,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했을 때 이 사람들이 '정말 실재하는구나'를 느끼고 큰 자극을 받았거든요. 만약 지방이나 해외에 거주하여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 SNS 계정을 활용하여 탈코르셋 인증샷이나 혹은 해시태그 운동 등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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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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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개개인의 경험은 당연히 전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그 다른 경험으로부터 공통된 억압기제를 찾아냈고, 이 과정에서 여성들의 경험은 더 이상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 서사가 된다. 페미니스트들은 경험을 관통하는 억압에 저항함으로써 경험을 정치화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란 슬로건은 바로 이런 의미다. 단순히 여성 개인으로서 겪는 경험을 서로 공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페미니스트들은 그 억압기제에 저항해 왔다. 외연을 확장하는 방식은 경험의 교차점을 찾고 그로부터 자매애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정리하자면, 서로 다른 경험들로부터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 거기서 억압의 구조를 밝혀내고, 공유하는 공통점으로부터 여성들에게 참여와 연대를 요구하는 방식.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지금 한창 이슈인 코르셋을 예로 들어 보겠다. 코르셋에 대한 여성들의 경험은 전부 다르다. 누군가는 코르셋 때문에 식이장애를 경험했고, 누군가는 페미니즘을 알기 전부터 외모코르셋을 거부해왔다. 누군가는 그 의미를 알지만 생존을 위해 타협한다. 그러나 코르셋이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억압이라는 점은 이 세 경험을 모두 관통해낸다. 식이장애를 경험한 사람은 여자는 날씬해야 한다는 규범에 스스로를 밀어넣은 경우이다. 외모코르셋을 거부해온 사람은 6꾸미지 않는다9고 6여자답지 못하다9고 여성성 규범을 강요당한다. 생존을 위해 타협하는 사람 역시 코르셋이 예의가 아니길 바란다. 여기서 코르셋이 억압임을 도출할 수 있다.

여성들의 서로 다른 경험에서 우리는 코르셋이란 억압을 발견해냈다. 그리고 공통의 경험을 말하면서 코르셋 없는 사회를 만들자고 여성들에게 이야기한다.


화장이 예의가 아니라면 어떨 것 같냐고.
어디 고치라는 말을 안 하게 된다면 어떨 것 같냐고
44사이즈에 맞출 필요가 없는 사회를 생각하라고.

이것이 우리의 운동 방식이다. 여성들이 현실에서 겪는 경험에 집중하고, 그 경험으로부터 억압의 구조를 밝혀 정치화하는 것. 공통된 경험으로부터 참여를, 자매애를 이끌어내는 것. 이게 래디컬의 방식이다. 이 과정은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불편하지만, 불편함 없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자주 평가절하당한다. 경험만 이야기하지 말고 공부 좀 하라고. 그러나 나는 여기서 묻고 싶다. 여성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어떻게 현실을 설명하며, 여성주의가 여성에게 진입장벽이 높아야 하냐고. 우리는 현실에 사는 사람들이다. 현실에서 내 목소리, 다른 여성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현실을 설명해내는 이론을 만들어내자.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이론을 만들어내자. 그게 우리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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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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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동시에 여러 주제에 대한 페미니스트들 간 논쟁도 점차 심화되고 그 빈도도 높아졌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공론장에서 논쟁한(앞으로도 논쟁할) 이슈들을 살펴보면

 게이 집단 내 여성혐오, 코르셋, 로리타 문화, 성매매, 트랜스젠더리즘 등등... 굉장히 많네요. 이러한 논쟁을 거치면서 우리는 페미니즘 노선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리버럴 페미니즘, 그리고 래디컬 페미니즘이죠.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반면, 현재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래디컬 페미니즘 관련 도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그마저도 대개 절판되었고요. 하지만 지금, 논쟁적인 페미니즘 이슈들에 대해 하나의 답을 제시해줄 래디컬 페미니즘 도서가 출간된다고 합니다. 

바로 쉴라 제프리스(Sheila Jeffreys)의 논문들을 엮어낸 선집, <래디컬 페미니즘- 성별 계급제를 꿰뚫는 시선>입니다. 이 책은 어제 텀블벅 펀딩을 시작했습니다. 아래 텀블벅 링크에서 자세한 책 소개를 읽어보세요.

https://www.tumblbug.com/yeolda0517

 

추신) 저는 이 책의 공번역자로 참여한 남혜리입니다. 선집 제목도 제가 제안했는데, 마음에 드셨으면 합니다.

 수개월간 함께 일하신 분들, 책을 출간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신 분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저작권료를 따로 받지 않고 본인의 논문을 한글로 소개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쉴라 제프리스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번역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앞으로도 더 좋은 책을 번역하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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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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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버전은 여기서 확인할 것*

Situations of Korea in relation to sexual liberalism and queer backlash

 

Hyejung Park and Jihye Kuk

Edited by Mary Hickman

 

In 2015, the buzzword in Korea was 'Hell Korea'. The word spread among young people facing government corruption and incompetence during years of economic recession and low growth, and a rise in unemployment among the young. In this way, discourse among youth, who face the harsh situation of giving up on employment, dating, marriage, childbirth, and home ownership, has become an important topic in Korean society over the last 10 years. However, at the same time, young men who were deeply frustrated by economic struggles began to frequently use misogynistic expressions by way of slandering their female peers with derogatory names such as 'kimchi chick′, ′miso chick′, ′international whore′, and women-hating content was overflowing online. Via an infamous male-centered community called "Ilbe", these misogynistic terms increased explosively, and this tone spread throughout society. In 2015, the word ′mom insect′, which disparages mothers with young children, appeared and shocked the society.

While experiencing the global epidemic of 'MERS', fake news reported that Korean women who were staying abroad were infected with MERS and refused to be treated by authorities. Korean men poured out hate-speeches on women and spread the fabrications online. When it became clear that this news was not true, women rebelled against it by creating a website called 'Megalia', which opened a new era of the online women's movement in Korea. These new women, who define themselves as 'megalian', mirrored the misogyny of Ilbe men in an attempt to parody the vulgar language used against women’s bodies in ways which were previously considered to be words only suitable for men to express.

During this online movement the "Gangnam Station murder" occurred in May 2016. A woman in her early twenties was killed horribly by a man in a public unisex restroom near Gangnam subway station. In Korea, this type of murder has been labelled as a ′don′t ask why (random) killing′, but the Megalians insisted that such crimes have always been directed at women and thus these murders are hate crimes based on societal misogyny. In truth, the killer hid in a public restroom and let a few men pass, but when a young woman came in, he stabbed her to death. In response to the question of what motivated him to murder a woman whom he did not know, the killer said, "Women ignore me." In response to this incident, online feminist activities expanded more widely and feminism was in its prime. Women gathered at Gangnam Station, near the scene of the crime, to leave messages in memoriam and hold vigils. The active involvement of online feminists has spurred a massive social focus on misogynistic culture, and in early 2017, major presidential candidates defined themselves as "feminists." In 2016, feminist books have also swept the market.

 

  1. Definition of ‘butch’ from the group; 1. Butches sexualize women and act on it, but it does not always work out as intended. 2. Butches resist the myths and norms imposed on women in socio-cultural terms and actively express the resistance. 3. Butches are continuously and repeatedly not passed as women. They feel it is not fair when this happens, but they also feel ignored when they get passed as women. 4. Butches call themselves butches. 5. Butches feel kinship with other butches, but feel the sense of competition with each other at the same time. The 8th LGBTI Human Rights Forum in 201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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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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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글에서, 퀴어 페미니스트들이 '젠더 폐지론'을 비판하는 네 가지 주요 주장에 대해 급진주의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답하고자 합니다. 그 네 가지 주장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1. 젠더 폐지론에 의해 젠더를 해체하면, 남는 것은 섹스인데 기존의 분류는 지극히 성기 중심적이다. 이는 불완전하다. 

2. 젠더가 해체된 이후 남는 것은 섹스이며, 이는 젠더 이분법을 강화시키는 방향이다.

3. 젠더를 폐기하는 것은 트랜스/젠더퀴어의 경험을 비가시화하는 폭력이다.

4. 시스젠더는 트랜스젠더보다 강자이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다.


1. 젠더 분류는 완전한가? 

  기존 분류의 불완전성에 대해서는 동감합니다. 성기중심적인 분류는 간성(intersex)을 배제하며, 생물학 역시 100%완벽한 기준이 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Y염색체의 유무에 의한 분류는 서양에서는 1950년대까지 유효했습니다. 현재는 Y염색체 위에 존재하는 성결정유전자인 SRY유전자가 발현되느냐/아니냐에 따라서 성기 모양이 결정된다는 것까지 대중들에게 알려졌는데, 그 외에 다른 성결정유전자가 발견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현 시점 젠더분류체계는 완벽합니까? 아니요, 저는 젠더분류야말로 훨씬 구멍이 많다고 봅니다. 이는 바로 젠더가 '정신적 성별'이라는 특성에서 비롯됩니다. 


젠더분류체계는 나의 경험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현재도 워낙 비슷해서 혼동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젠더 플루이드와 젠더 플럭스, 에이젠더와 젠더리스, 젠더퀴어와 논바이너리 등은 자주 혼용됩니다. 또한 혼용만으로도 부족하여 사람들은 여러 개의 이름을 동시에 사용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제 경우에는 분류에 따르면 논바이너리이며 젠더퀴어란 말도 혼용해서 쓸 수도 있고, 하위분류의 젠더리스와 성별 비순응자란 개념도 같이 사용해야 그나마 좀 커버가 되는 거 같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이조차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참고로 기준은 제각기 다릅니다만, 현재 NYC에서는 31개의 젠더를 인정했고(https://www.google.co.kr/amp/s/heatst.com/culture-wars/here-are-the-31-gender-identities-new-york-city-recognizes/amp/) 영국 페이스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젠더옵션은 71+개라고 하는군요(http://www.telegraph.co.uk/technology/facebook/10930654/Facebooks-71-gender-options-come-to-UK-users.html) 개개인이 경험하는 성별적인 특성이란 정말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젠더는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이름이 생길 때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줄줄이 외워야 하는 것일까요? n개의 이름표는 결국 혼란을 가중시키고, 이름표를 쓰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합니다. 


또한, 타인의 젠더를 멋대로 잘못 넘겨짚는 것은(=미스젠더링) 대단한 폭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젠더 정체성이란 개인의 자아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내가 바라보는 나와 타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내가 다르듯 젠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타인이 판단해 주는 것이 맞을 때도 있고, 혹은 틀릴 수도 있죠. 간혹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했다가 피크 트랜스*(어떤 사람이 트랜스 커뮤니티에서의 모든 것이 옳지 않다 여기고, 트랜스정치학의 지지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를 겪어 다시 자신을 지정성별로 정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아에 대해 총체적으로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


2. 성별 이분법 고착화에 관해

아니요, 현재의 분류체계 역시 젠더 이분법을 강화시킨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젠더 분류에는 대체로 바이너리 모델에 기반을 둔 이름들이 많습니다. mtf/ftm이라는 정체성은 이분법을 근간으로 하는 이름이며, 중성이라는 이름 역시 여성/남성의 이분법에 기반을 둔 표현입니다. 논-바이너리라는 이름 역시 바이너리 모델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고 사용되는 이름이지요. 


그리고 젠더 이분법을 깨는 것은 젠더를 세밀하게 나누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분법을 깨기 위해 우리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젠더규범을 해체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하여 기존의 젠더규범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여성/남성의 이분법에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용어니까요.

그렇기에 이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게 되는데, 이 사람들이 자신을 여성 또는 남성이라 부르지 말라면서 기존의 여성/남성 분류에 포함되길 거부한다면 과연 성역할 규범은 어떻게 깰 수 있을까요?


좀더 쉽게 이야기해 볼게요. 지정성별 여성인 A는 화장을 하지 않고, 원피스나 치마보다는 바지를 입길 좋아하며 짧은 머리를 고수합니다. 이 때 A가 자신을 논바이너리 정체성 중 하나로 소개한다면 A는 논바이너리로서 젠더표현을 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A는 자신을 "내가 여자고, 이것이 여자다운 것이다"라고 소개할 수도 있다. 이 때 A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젠더규범을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 중 성역할 규범을 깰 수 있는 쪽은 후자입니다. 자신을 여성으로 정의하지 않고 젠더퀴어나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사용하게 되면 결국 시스젠더인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역할을 그대로 수용하고 이들에게 여성성/남성성을 고착화시킵니다. 


그렇다면 시스젠더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성역할을 그대로 재생산하는 사람들인가요? 젠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인가요? 아니요. 가부장제 시스템 하에서 지정성별 분류와 젠더규범의 폭력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개중에는 안드로진이나 젠더플루이드/젠더 플럭스, 젠더리스 등 논바이너리에 해당하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류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거나, 지식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죠. 


그러면 자신의 젠더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질문할 수도 있겠네요. 글쎄, 정체성을 드러낼지 아니면 젠더 분류를 거부하고 살지는 개개인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다시금 말하건대, 가부장제 시스템 하에서 지정성별 분류와 젠더규범의 폭력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또한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이란 가부장제의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남자들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남성성'을 우위에, 그 반대의 특성을 여성성으로 이름붙였어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여성복으로 규정되는 옷(치마, 하이힐, 원피스, 스타킹,코르셋 등)은 실용성보다는 활동하기 불편한 옷이지요. 그리고 양육, 가사 등의 돌봄 노동은 여성의 일로 치부되면서 비하되었어요. 그 외에도 수동적일 것, ^예쁜 말^을 쓸 것, 도전하기보다 안정을 추구할 것, 등등 여성성이란 피지배 계급의 행동양식으로서 여성들을 억압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을 유지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젠더 규범은 깨져야만 하고, 이는 앞서 말했듯이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정성별을 드러내고, 그 성역할에 맞지 않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가능합니다.


3. 젠더폐지론은 그들의 존재를 지우는가?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없애버리자는 것은 당신의 경험을 삭제하고 입을 틀어막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젠더가 무엇인지 이름표를 붙이지 않고서도 경험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앞서 저는 1에서 젠더분류의 불완전성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같이 젠더리스란 이름표를 쓰고 있다고 해도 당신이 느낀 경험과 나의 경험은, 억압의 정도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퀴어 공동체에서, 그리고 커밍아웃할 때 왜 각자 정체화하게 된 계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까요. 사실은 그 이름만으로는 내가 누군지 설명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또한, 젠더 해체가 트랜스/젠더퀴어의 경험을 비가시화한다는 논리 그대로, 나는 여성의 경험을 지운다고 되돌려 줄 수 있습니다. 2에서 말했듯이 나라는 개인을 여성이 아닌 다른 젠더로 라벨링하는 것은 지정성별 여성으로서 당한 경험을 퀴어로서 겪은 경험으로 전환시킵니다. 그러나, 현재 지정성별을 기반으로 한 젠더 이분법이 하나의 장벽처럼 튼튼하므로, 이걸 퀴어로서 겪은 경험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여성으로서 겪은 경험을 지워버리는 일이 됩니다.


예를 들어, 여성혐오범죄가 버젓이 존재하는데 내가 '여성으로 패싱되었기 때문에' 당한 성폭행을 젠더퀴어이기 때문에 겪은 경험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겉보기에 흑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는 나를 백인이라고 생각해요! 쏘지 마세요!" 라고 말하면, 그 사람이 백인에게 총 맞아 죽었을 때 인종차별범죄가 아니게 될까요? 성감별 임신중절로 수많은 여자아이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젠더'로 죽지 않았습니다. 여성 할례의 경우 역시 '젠더' 로 인한 차별이 아닙니다. 


우리 개개인이 느끼는 성별 정체성, 경험들은 젠더라는 이름표 '이전에' 실존합니다. 본질은 우리의 경험이지, 이름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개인이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시스템 하에서 어떤 방식의 폭력을 경험했는지 말할 수 있는 분위기이며, 서로의 경험에 공감하는 가운데 이분법과 젠더 규범을 해체하는 것입니다.


4. 시스젠더란 말에 관해

  저는 시스젠더란 표현 자체를 거부합니다. '시스'라는 말은 정확히 정신적 성별과 신체적 성별이 같은 경우를 의미합니다. 실질적으로 '시스젠더'라는 말은 자신을 트랜스젠더 혹은 젠더퀴어로 정체화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붙여집니다. 그렇다면 정신적 성별이란 무엇인가요? 왜 스스로를 여성으로 느낍니까? 


자신이 원해서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없겠지요. 차별이 존재하는 줄 알았더라면 아무도 여성으로 태어나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바는 여성 취급이 아니라, '인간' 취급입니다. 그런데 이 시스젠더라는 표현은 우리가 스스로를 여성으로 느낀다고 말합니다. 대체 그 여성은 누구입니까? 주민등록번호 2로 시작하는 사람들이고, 취업과 승진에서 차별을 받고요, 여성이기 때문에 화장실 몰카를 두려워하고,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핑크색을 좋아하고 리본과 레이스를 좋아하고 꾸미는 걸 당연시하게끔 요구되는 사회의 2등 시민입니다.


누가 2등 시민을 하고 싶습니까? 1등 시민이 되기를 원하지요. 그러나 사회에서 나를 그렇게 취급하기 때문에, 그 억압이 존재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인식합니다. 내가 여성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당하는 각종 차별, 강요되는 여성성은 앞서 말했듯이 다른 젠더로 나를 표현한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시스젠더란 표현은 너무 간단히 이런 맥락을 지워버립니다. 그 사람들은 과연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불만이 없을까요? 아니란 겁니다. 제가 하는 말이 여전히 '시스젠더니까' 하는 소리로 들린다면, 첨부된 사진을 보세요.  mtf인 케이트 본스타인이 쓴 <젠더 무법자>에서 저자는 분명히 "모두가 자신의 성별 지위에 불만을 가지며, 그 원인은 성역할, 지정성별, 성별 정체성일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요, 나는 성기를 기준으로 여성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가 2로 시작하고 여성으로 보이기 때문에 여성혐오범죄에 노출되고 차별을 당합니다. 나는 그래서 이 여성이란 이름을 혐오합니다. 그 이름은 차별, 억압, 2등 시민, 인형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 또한 나에게 강요된 '여자는 어쩌고저쩌고~' 와 같은 성 역할을 혐오합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트랜스젠더/젠더퀴어라 부르지 않습니다. 이유는 위에서 충분히 설명했으니 생략. 


여성성/남성성 규범, 고착화된 성역할은 모두를 억압해요. 그러나, 그 억압에 대해서 급진주의자들은 성역할을 타파하고 젠더 분류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입장이며, 트랜스/젠더퀴어들은 새로운 젠더의 명칭을 쓰고 의료서비스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결국 트랜스/젠더퀴어들과 급진주의페미는 동일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한 엇갈린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저는 스스로를 '시스젠더'라 부르지 않을 것이며, 또한 시스젠더 여성이 강자, 트랜스/젠더퀴어는 약자라는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원문은 2017년 4월 11일에 페이스북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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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스젠더란 표현 자체를 거부합니다. '시스'라는 말은 정확히 정신적 성별과 신체적 성별이 같은 경우를 의미합니다. 실질적으로 '시스젠더'라는 말은 자신을 트랜스젠더 혹은 젠더퀴어로 정체화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붙여집니다. 그렇다면 정신적 성별이란 무엇인가요? 왜 스스로를 여성으로 느낍니까? 

  자신이 원해서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없겠지요. 차별이 존재하는 줄 알았더라면 아무도 여성으로 태어나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바는 여성 취급이 아니라, '인간' 취급입니다. 그런데 이 시스젠더라는 표현은 우리가 스스로를 여성으로 느낀다고 말합니다. 대체 그 여성은 누구입니까? 주민등록번호 2로 시작하는 사람들이고, 취업과 승진에서 차별을 받고요, 여성이기 때문에 화장실 몰카를 두려워하고,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핑크색을 좋아하고 리본과 레이스를 좋아하고 꾸미는 걸 당연시하게끔 요구되는 사회의 2등 시민입니다. 

  누가 2등 시민을 하고 싶습니까? 1등 시민이 되기를 원하지요. 그러나 사회에서 나를 그렇게 취급하기 때문에, 그 억압이 존재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인식합니다. 내가 여성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당하는 각종 차별, 강요되는 여성성은 다른 젠더로 나를 표현한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시스젠더란 표현은 너무 간단히 이런 맥락을 지워버립니다. 그 사람들은 과연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불만이 없을까요? 아니란 겁니다. 우리는 좆같은 성역할에 거부감을 느끼는 여성들이고, 우리 중 자신의 몸에 혐오감을 느끼는 여성들은 의외로 많아요. 매달 생리할 때마다 불쾌함과 생리통 때문에 포궁을 들어내고 싶은 기분을 느끼고, 내 가슴을 쳐다보는 한남들의 시선폭력이 싫어서 유방이 없어졌으면 하고 바라는(혹은 바랐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요, 나는 성기를 기준으로 여성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가 2로 시작하고 여성으로 보이기 때문에 여성혐오범죄에 노출되고 차별을 당합니다. 나는 그래서 이 여성이란 이름을 혐오합니다. 그 이름은 차별, 억압, 2등 시민, 인형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 또한 나에게 강요된 '여자는 어쩌고저쩌고~' 와 같은 성 역할을 혐오합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트랜스젠더/젠더퀴어라 부르지 않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정체화하는 것으로 내가 겪어왔던 차별을 없앨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내 신체를 굳이 부정할 게 아니라 생각을 전환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요. 가슴이 있다는 걸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시선폭력하는 한남들한테 따지면 되고, 생리가 너무나 좆같지만 그건 생리에 대한 연구가 미비했기 때문에 해결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내가 억압적인 신체를 절단한다면, 개인적으로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결국 시선폭력과 같은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이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여성성/남성성 규범, 고착화된 성역할은 모두를 억압해요. 그러나, 그 억압에 대해서 급진주의자들은 성역할을 타파하고 젠더 분류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입장이며, 트랜스젠더/퀴어들은 새로운 젠더의 명칭을 쓰고 의료서비스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결국 트랜스젠더/퀴어들과 급진주의페미는 동일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한 엇갈린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저는 스스로를 '시스젠더'라 부르지 않을 것이며, 또한 시스젠더 여성이 강자, 트랜스젠더/퀴어는 약자라는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원문은 2017년 8월 2일 페이스북에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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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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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라인에서는 게이의 여성혐오 및 트랜스젠더리즘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서 퀴어 정치학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형성되고 있으며, 남성들의 저열함과 이성애규범성(heteronormativity)을 인식함에 따라 자신의 성적지향을 고민하거나 남성과 사귀지 않는 삶을 동경/추구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시점이기에, 그동안 여성 안에서도, 성소수자 내에서도 잊혀져 왔던 '레즈비언'이 새롭게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안에서 레즈비언은  동성애자 내에서 항상 게이 남성들에게 가려져 온 존재였고, 여성혐오의 대상이었으나 실제로 발언하지 못했던 사람들, 그리고 현재 트랜스젠더리즘의 영향으로 ftm 혹은 젠더퀴어란 이름을 사용하면서 사라져가는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페미니즘을 접한 이성애자 여성들에게는 남자랑 연애하지도, 섹스하지도 않으므로 모종의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지금까진 당연하다는 듯이 남자랑만 사귀었는데, 나는 여성을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레즈비언들과 접하기도 하지요. 


 따라서 우리는 지금 레즈비언이 누구이며, 어떠한 위치에 있는 존재이고, 페미니스트와 레즈비언이란 어떻게 만나는지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지금까지의 레즈비언 운동이 어땠으며, 현재의 주류 퀴어정치학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도 함께 나누어 보면 참 좋을 것 같죠? 


그런 의미에서 강연 하나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레즈비언은 누구인가


여성 동성애자를 뜻하는 '레즈비언' 그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으며, 여성혐오적인 사회, 그리고 이성애중심주의적인 사회에서 레즈비언들은 정치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가? 또한 이중적인 위치로서 레즈비언들은 어떤 운동을 해왔으며 누구와 함께 연대할 것인가



래디컬 페미니즘, 그리고 레즈비어니즘


페미니즘이 이론이라면 레즈비어니즘은 실천이다 

Ti-Grace Atkinson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이란 무엇이며 왜 '래디컬 페미니즘에서' 나왔는가? 우리 개개인의 성적지향은 정말로 타고난 것이며 '개인적'문제이기만 할까? 


퀴어정치학


현대의 퀴어정치학은 레즈비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퀴어진영 내에서 레즈비언을 읽어내기


일시 / 장소


부산 11.18일(토). 오후3시 / 모퉁이극장

서울 12.16일(토) 낮 12시 / 서울시NPO지원센터 교육장


강연자&사회자


강연자: 랑랑 | 전 한국여성성적소수자 인권모임 <끼리끼리> 대외정책부장, 전 부산여성성적소수자인권센터  운영위원

사회자: 국지혜 |래디컬 페미니스트,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 공저자

 

주관&주최


주최 온라인페미니스트네트워크 뿌리


주관 반성착취 여성행동, 전국대학생페미니스트연합회, 페미니스트플랫폼 페이지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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