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워마드에서 밀전병에다 낙서를 하고 태운 글이 올라왔고, 수많은 언론에서는 이때다 하고 기사를 내놨다. 천주교 쪽에서는 이를 신성모독으로 규정, 워마드 사이트 폐쇄 청원을 올리고 바티칸에서 파면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 모든 일이 탈좆교한 내게는 그저 우스운 해프닝으로 보인다. 주목해서 볼 웃음 포인트란 정말 많다. '개독'을 욕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으며 일베에 마리아 능욕글은 넘쳐나는데 하필 워마드를 콕 찝어서 욕받이로 쓰는 것, 내부의 성범죄에 분노하지 않으면서 '빵쪼가리 훼손'에 분노하는 것, 당신들의 좆교를 강요하는 폭력성은 돌아보지 않는 것. (이를테면 유아세례나 행인들의 시간을 빼앗는 노방전도 등) 이 모든 포인트들을 따지면 우습기 짝이 없는 것이다.

내부 성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일베의 여성혐오 겸 신성모독 게시물들


   천주교인들이 보여주는 이중성이 아니더라도,  여성주의자들이 좆교를 배격하고 비판하는 건 사실 당연하다. 세상의 모든 좆교는 여성 신도를 자지들보다 낮은 자리에 있게 하며, 여성의 돌봄노동과 감정노동을 당연시해 왔다. 음식을 준비하고 뒷정리를 하고, 신도들을 앞에서 웃으며 맞이하는 역할은 주로 여성의 몫이다. 더 많이 봉사하는 성별은 역할은 여성이지만, 여성의 지위는 제한되었다. 천주교에서는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고, 개신교는 교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개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수천 년 전에 쓰여져 업데이트되지 않는 경전 곳곳에 녹아있는 여성혐오는 얼마나 많은가. 개독경은 이미 창세기부터 여성을 사악한 뱀에게 넘어가 남성을 타락시킨 존재로 묘사하고 여성을 인구 수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내부에서 발생한 성범죄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단으로 찍히고 사탄 혹은 독사의 비유로 묵살당해 왔는지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성애 중심의 결혼제도를 당연시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는데 이는 기존의 결혼제도에 편입되지 않는 성소수자, 비혼 여성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이렇듯 철저히 자지 중심적인 문화가 만연하고, 자지를 머리 위에 두고 섬겨야 하는 것이 좆교다.

교회에서 여성의 자리는 어디에 고정되어 있는가.



   따라서 여성주의자들은 좆교가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의 노동력을 갈취하며 차별하는 또 하나의 억압구조임을 기억하고, 좆교를 전면적으로  거부해야 할 것이다. 워마드가 쏘아올린 작은 빵은 상당한 파장을 불러왔는데, 이를 잠깐 지나가고 말 해프닝으로 기억하지 말라. 이 흐름은 장기적으로 개개인의 좆교 거부선언, 끊임없이 부딪히는 의제인 임신중단 합법화, 레즈비언 가시화 운동 등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블로그 이미지

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


1. 이성애자 여성에게 결혼은 족쇄임.

역사적으로, 결혼제도는 여성을 한 남성의 소유물로 종속시키는 억압으로서 존재해 왔음. 남성이 원할 때 마음대로 섹스할 수 있고, 남자 집안에 종속되어 아이,특히 남자아이를 낳아 남성의 대를 이어주어야 하는 씨받이 취급을 받았단 말임. 여성은 가사노동과 양육을 책임지며, 내조를 해주는 사람이었고, 남성은 아내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자신에 대한 취급이 달라지지 않지만 여성은 남편 혹은 아들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취급이 달라짐. 극소수의 모계 사회를 제외하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성씨는 아버지의 것.

자, 현재의 한국 사회로 돌아와서. 지금도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는 존재임. 우리가 잘 아는 3D(독박가사/독박육아/대리효도) 세트가 여성에게 부과된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음. 우리 집은 공평하게 분담한다고? 그게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잖아. 아침에 아내 안깨우고 혼자 밥먹고 출근하는 남편의 모습을 미디어에서 보고 찬양하는 것부터 일반적이지 않다는 방증임. 호주제는 폐지되었지만, 성씨 물려주는 것도 아버지 성이 디폴트고 엄마 성 물려주려면 양가의 합의가 필요함. 거기다 대개 여성은 결혼 이후 출산하도록 압박을 받는데, 임신과 출산 자체가 여성의 몸에는 심각하게 부담되고, 직장에서는 휴가쓰는 것도 눈치보게 만들고 육아를 전담해야 하니 경력단절 문제까지 생길 수밖에. 그리고 여성에게는 회사에선 일도 잘하고 육아도 잘하는 완벽한 어머니가 되길 요구해. 모성 숭배 프레임은 출산한 기혼 여성들을 '맘충'으로 만들어.

남자랑 결혼 잘해서 팔자 핀 여성도 있다고? 있겠지, 물론 소수. 그런데 그건 여성이 자신의 능력으로 사회적 지위가 올라간 게 아니라 배우자 남성에 의해 계층이 상승한 것처럼 보이는 거잖아. '트로피 와이프' 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성과 결혼해도 여성은 남성의 신분에 딸려오는 전리품(=트로피) 같은 거임. 그래서 남성에게 종속되는 거라고.

자, 그러면 여기서 너희는 의문이 들거야. 결국 여자한테 좋을 게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많은 여성들이 이 족쇄를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2. 결혼제도에서 벗어나는 여성에겐 낙인이 찍힌다.

우리 사회에선 여성에게 남성과 결혼하라고, 이 족쇄를 스스로 차라고 강요해. 그건 이성애자든 아니든 가해지는 억압이지. 그리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여성들- 즉, 비혼주의 여성과 이혼한 여성에게는 '비정상'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비혼 선언을 하게되면 우리 사회가 비혼인구가 늘어났다고 해도 여전히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내 경우에는, "니가 어려서 그래. 그래봤자 너도 나중에 결혼해서 애낳겠지" 혹은 "남자 싫어해? 너 레즈야?" 같은 말을 주변 사람들한테서 들었어. 그러니까 비혼주의라는 정체성 자체를 '부정당한다'고. 혹은 "그래도 여자로 태어났으면 결혼해서 애낳는게 최고의 행복이지" , "결혼 안한다고 하는데, 그거 사실 그럴 능력이 없거나 문제가 있는거야" 처럼 정상성 규범을 계속 부여하고 '하자가 있는 것처럼' 취급당한다. 특히 남성과는 다르게, 여성의 경우에는 단순히 비혼이란 정체성으로 화를 내도 '노처녀 히스테리'로 후려쳐지고 "뭐? 결혼 안하고 애를 안낳아? 존나 이기적이네!" 라는 말까지 듣지. 어때, 성소수자들이 듣는 혐오발언과 비슷한 맥락이 있지 않아?

이혼한 여성의 경우에는 어때. 정확히 이혼녀라는 낙인이 찍히고 결혼시장에서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취급당한다. 반면 남자의 경우에는 이혼남이란 딱지가 붙나? 재혼한다는 게 결혼시장에서 여자만큼 불이익을 받나? 그렇지 않다고. 남성이 엄청난 잘못을 하지 않는 한 이혼해도 결국 손가락질당하는 건 여자라고. "그러니까 남자를 잘 만났어야지" 같은 2차 가해성 발언까지도 덤으로 듣고.

그러니까 일단 이성애자 여성한테 있어, 일단 결혼이 특권이라는 건 말이 안되는 거지. 결혼제도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으로 낙인찍어서 결혼을 하게끔 몰아넣는데 그게 또 족쇄임. 그건 이성애자 특권이 아니지. 특권이 되는 건 헤테로 남성에 한해서임. 여자들은 결혼 안해도 되는 사회를 원한다.

3. 배우자가 '게이'였을때 왜 분노하는가

1,2를 읽었다면 이성애자 여성도 결혼제도에서 억압당하는 존재임을 알겠지. 그래, 어찌되었든 결혼을 했는데 상대방이 게이였다고 쳐. 그게 왜 공분을 샀냐고?

- 사랑하지 않는데 목적을 가지고 결혼했다는 점
- 그 유부게이들이 게이커뮤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파트너를 구한다는 점
- 이성애자 남성과 동일하게 가부장제의 남성권력으로 결혼제도에서 여성을 착취한다는 점

이게 다 혼합된 결과임.

- 사랑하지 않는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결혼했다
그 목적이란 대개 지 유전자 남기는 거. 성적 지향을 숨기기 위해서란 말도 있는데 그럼 그냥 비혼하면 되잖아. 결혼을 안하면 성적 지향이 들킨다고? 비혼 여성도 남자싫어하냐 너 레즈냐 소리듣고 결혼 안한다고 했을때 그 프레임 때문에 사회적으로 더 억압받는 쪽은 여성임.

자꾸 이성애자 남성도 다른목적으로 결혼할수 있다 이런 물타기하는데 애초에 비율 자체가 다르잖아. 게이가 무슨 뜻인데, 남성한테만 성적으로 끌리는 동성애자 남성을 뜻하잖아. 여자한테 성적 끌림이 1도 없는 결혼한 유부게이는 100% 다른 목적으로 결혼한거지. 여성의 입장에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유전자를 남기고 싶을텐데 그게 아니었다면 빡치는 게 당연하지 않겠냐.

- 유부게이들의 태도

게이커뮤에서 유부게이들이 비교적 당당하게 기혼인 거 밝히고 파트너 구한다는게 쇼킹하지. 레즈커뮤요? 양심있냐며 욕처먹고 쫓겨나요. 결혼한 배우자 놔두고 몰래 다른 상대방을 만나는 건 바람피우는 거고 정당한 이혼사유거든. 근데 고발글 보니까 존나 당당하더라 이거야. 그리고 다른 파트너 만나서 섹스하고(물론 안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상대를 만났다는 것부터 바람이고) 배우자하곤 안함? 그거 아니잖아. 본인 유전자 남기려면 해야하거든. 밖에서 성매매하고 다니는 한남도 성병 옮긴다고 욕하는데 유부게이는 성병 안 옮긴단 보장 있냐?

- 이성애자 남성과 동일하게 결혼제도에서 여성을 착취

오독하는 일 없길 바람. 이건 '이성애자 남성만' 여성을 착취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님. 이성애자 남성만 여성들을 결혼제도에서 착취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동성애자 남성들도 똑같이, 심지어 다른 파트너랑 외도하면서 여성을 착취하고 있었다는 점에 분노한 것. 더구나 그들을 연대할 대상으로 보거나, 적어도 다른 성적지향을 가진 사람으로 존중하려고 해왔던 여성들 입장에서는 배신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임.

4. 정리

요약하자면, 여성에게 있어 결혼제도란 억압인데 이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결혼제도 안으로 들어감. 이미 이것부터 억울한 상태인데 상대가 나랑 애초에 결혼할 이유가 없었던 동성애자 남성이었고, 다른 파트너랑 외도하면서 이성애자 한남과 똑같은 수준으로 나를 착취함. 운 더럽게 안좋으면 성병도 옮을 수 있음. 그래서 분노한다고.

p.s. 당연히 모든 동성애자 남성들이 다 여성과 결혼할거란 이야기 아님. 여기서 그거 모르는 사람 없는데 호모포빅으로 무조건 몰고가는게 결국 피해당사자의 목소리를 지우고 레즈비언을 지운다는 거 생각 좀 했으면.




*본 글은 2017년 6월 14일 1차로 개인 페이스북에 작성되었습니다.  




블로그 이미지

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

기사 전문은 https://www.dispatch.co.kr/1030973



한국에서 흔히 여성들이 경험하는 삶을 재현하는 보드게임이 나왔다. SNS상에서는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차이나는 클라스> 프로그램에서도 이 게임을 다루었다. 아이디어가 기발한데, 나는 차마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여성의 삶을 재현한다는 것은 나의 삶, 그리고 우리의 삶을 사실적으로 옮겨놓았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삶 속에서 듣는 성차별적인 말은 '재미있지'않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면 아마도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뭐가 문제인지 모르거나,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겠지. 이 게임은 여성의 삶 따위는 경험할 일 없는 남자들, 페미니즘을 모르는 여성들, 혹은 학생들과 함께 플레이할 때 확실한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블로그 이미지

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





1. 일시 : 2018년 1월 13일 토요일 오후 2시


2. 장소 : 홍대 걷고싶은 거리 '여행무대'


3. 참가대상 : 여성만 참석 가능


4. 주최, 주관 : 여초 연합(운동권, 다른 단체와 연대하지 않습니다)


5. 후원 : 농협 302-1244-3607-31 ㄱㅇㅈ
철저하고 투명하게 모금지출현황 공개할 것 입니다.


6. 유의사항 : 날씨가 추우니 따듯한 의상 착용, 신상을 보호할 마스크 착용 부탁드립니다.


7. 참가서 구글폼
참가하실 마음이 있으신 분들은 1분만 시간 내서 폼 작성 해주세요~
https://goo.gl/forms/mSr3vZE8SBhqTpq12


<제천여성학살 공론화 시위의 목적>


처음 이 사건에 대해 들었을 때만 해도 일반 화재사건 중 하나인듯 보였다. 그러나 29명의 사망자 중 20명이 여자였고, 여자인 누구라도 그 날 그 시간에 그 목욕탕에 갔다면 죽었을 것이 분명한 사건이었다. 그 스포츠센터의 2층은 화재가 난다면 여성이 모두 학살되게끔 '여성혐오(여성안전 경시)'에 찌들은 시설로 설계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천 참사 기사에 댓글을 달던 한남들의 2차 가해(악플)마저 여성혐오로 찌들어 있었다. 이후 제천참사에 대한 카드뉴스를 만들면서, 특히 한국남성들이 한 말을 손으로 직접 입력할 때 특히 분노가 치밀었다. 어떻게 희생된 고인들에게 저런 말을 하나 싶었다.


어쩌면 일상적으로 여성안전을 지우는 여성혐오 한국사회의 순간순간 모두가 끔찍한 참사들이지 않을까 절감했다. 모든 역사 속에서 여성은 쉽게 지워졌듯이, 명백히 여성만 쉽게 목숨을 빼앗긴 이번 제천참사에 대해 이전처럼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이 여성피해는 또 쉽게 지워질 것이다. 이번 제천여성학살사건은 여성혐오가 여성들을 사망케 한 명백한 인재이다. 사고 3주전 소방안전점검에선 안점점검을 할 여성직원이 없다는 핑계로 ‘2층 여탕’만 안전점검에서 제외하고, 한달동안 2층에만 관리인이 없었다. 이번 참사의 키워드 중 하나는 여성의 '재물(財物)화'이다. 건물의 단열재마저 가성비를 따져 싼 걸로 써서 불이 심하게 번졌고, 2층 여탕 관리인에게 월 90만원보다 급여를 더 올려주느니 채용하지 않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한국남성은 여성의 안전보다 '재물(가성비)'을 추구한다. 또한 여성을 인간이 아닌 성적인 '재물'로 봤기 때문에 구조하지 않고 방치하였다. 화재 당시 빨리 구조해달라는 2층 여성들의 다급한 목소리에 남성건물주는 2층만 제치고 모든 층에 직접 발로 뛰며 대피알림을 했다. 소방당국은 안으로 들어갔다는 소리만 반복하면서, 결국 현장 소방관들의 늑장 대응, 구조작전 부재, 유리창을 깨지 않는 등 ‘명백한 사망방조’로 답하였다. 여성을 구해야 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어이없는 책임방기, 무능, 별안간의 내외로 2층 여성 전원이 사망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가 이렇게 또 여성의 안전을 지우고, 구조의 가능성을 차단하여 ‘여성학살’을 자행했다. 여혐민국에선 늘 사소하고 부차적(2등시민)으로 경시되는 것이 여성의 '목숨'임이 또 다시 입증되었다. 한국사회는 ‘여성학살’이란 표현이 단지 강하단 이유로 불편한 것이 아니라, 여혐민국의 현실을 직시한 여성들의 분노어린 목소리를 진정 두려워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문재인 정부는 사고 이전부터 ‘여성학살’을 가능케 했던 남성 건물주와 소방당국의 여성대상 안전 불감증, 살인방조에 대한 진상규명 및 처벌, ‘조개탕’이라며 고인 성희롱을 자행한 한국 남성들에 대한 처벌까지 낱낱이 책임져야 한다. 또, 2층 희생자들이 소방당국에 신고전화를 했던 녹취록을 전혀 공개하고 있지 않는 등으로 더 이상 이 참사를 은폐하지 말고 명명백백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책임자를 문책하고, 사회 전반의 경각심, 여성안전권 확보를 위한 제도 도입을 해야만 한다.


여성들은 더 이상 이러한 한국사회의 ‘여성학살’을 외면하거나 부정, 수용하지 않고 분노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살인과 다르지 않은, 아니 살인보다 더 참혹한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에 여성들은 계속 분노할 것이다. 나는, 우리는 제천에 불이났던 그 날에 그 목욕탕에 가지 않아서, 운이 좋아서 살아 남은 것이다. 앞으로 운이 좋아서 살아남는 여성이, 운이 없어서 죽는 여성들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이 시위에 참가할 것이다. 여혐민국에서 살아가는 여성, 바로 당신도 이러한 이유에 통감한다면 이날 시위에 함께하기를 바란다.

블로그 이미지

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

- 일러두기: 코르셋이란?
여성을 억압하는 모든 사회적 규범을 뜻합니다. 보통은 외모에 한정해 쓰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실제로는 애국, 효도, 종교에도 코르셋을 붙여서 사용합니다. 좁게 외모에만 한정할 때는 꾸밈노동으로, 보다 넓은 의미에서 사용될 때는 프레임frame으로 치환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특별히 외모와 관련된 의미로 한정하여 다루겠습니다. 

1. 꾸밈욕구 자체가 나쁜 건가요?


A. 아니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꾸미고 싶어하는 심리는 인정합니다. 이 부분 역시 많은 분들이 '래디컬 페미들은 욕망을 억압한다'고 오해하는 지점입니다. 꾸미고 싶은 욕구를 무조건 부정하고 누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신에 '운동의 차원에서' 다른 여성들의 코르셋을 조이지 않는 방식으로 욕구를 채우거나 혹은 다른 욕구로 대체할 수도 있겠지요. 꾸미는 걸 좋아한다면, 그 대상을 바꿔보는 거 어떨까요. 지금까지 꾸미는 대상이 '나'라는 여성의 몸이었다면 그걸 다른 걸로 바꿔보자는 이야기예요. 한 예로, 집에 소품을 놓고 가구를 바꿔 보는 건 '집'을 꾸미는 게 되겠지요.  페미스티커를 모아 노트북에 붙이는 것도 욕구를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이겠고요. 제 경우에는 블로그 스킨을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욕구를 해소하고 있습니다. 여담인데 나중에 웹디자인을 좀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네요 (웃음) 이런 방식의 꾸미기는 내 욕구를 채우면서도 억압을 재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탈코르셋을 지향하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문제가 되는 건 욕망이 아니라 그걸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각자 자신의 운동방향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내 필요를 채워줄 방법을 고민해 보면 좋겠어요. 

2. 우리가 바라는 건 꾸미든 안 꾸미든 상관없는 세상이 아닌가요? 왜 코르셋을 벗어야 하죠?

A. 맞아요. 결과적으로 내가 꾸밈노동을 하든 안 하든 그로 인해 내가 어떤 사회적 불이익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겠지요. 그런데, 이미 우리는 코르셋을 학습했잖아요. 이미 꾸미지 않는 것보다 꾸미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사람들도 사회의 미적 기준을 따르는 여성에게 관심을 주고 이를 바람직한 것으로 여긴다고요. 기울어진 운동장의 은유 아시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이며, 그렇기 때문에  "여혐 남혐 모두 나빠요"로 대표되는 기계적 중립이 사실 중립이 아닌 거. 코르셋-탈코르셋도 마찬가지예요. 수평을 맞추기 위해서는 '코르셋도 억압인데 탈코르셋도 억압이에요' 가 아니라 코르셋을 벗는 걸 더 강조해야 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은유]



3. 특정한 스타일을 강요함으로써 역코르셋을 입히고/검열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A. 역코르셋은 역차별과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성차별이 디폴트인 세상에서 남성도 역차별당한다고 주장하는 게 말이 안 되듯이, 코르셋이 디폴트가 된 사회에서 이를 거부하자는 게 다른 억압이 될 수는 없습니다. 탈코르셋을 지향하는 여성들은 코르셋을 입는 여성들의 삶 하나하나를 검열하지 않습니다. 앞서 질문에서도 답했지만 우리는 코르셋을 입는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페미대법관 행세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코르셋을 입지 않는 여성의 경우에는 분명히 개인의 삶 가운데서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역코르셋 혹은 검열이라고까지 주장하는 데는,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심리적 기저에 깔려 있지 않은가요?

  또한 특정한 스타일을 강요한다고 하는데, 뒤집어서 말하면, 꾸밈노동을 할 필요가 없는 남자들은 죄다 획일화된 패션이라는 거네요? 물론 와꾸와 성기 사이즈는 획일화   머리도 삭발을 할 수도 있는데 투블럭이나 숏컷으로도 다양하게 스타일링이 가능하고, 굳이 절바지가 아니어도 트레이닝 팬츠, 통바지 등 편한 바지를 고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는 꼴빼미 페이지에 사진으로 잘 나와 있으니 첨부합니다. 

사진 출처: 페이스북 꼴빼미 페이지

4. 코르셋을 입는 사람은 페미니스트가 아닌가요?


허수아비 패기는 그만합시다. 우리는 코르셋 자체는 페미니즘 실천이 될 수 없다고 말했지, 코르셋을 입는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한 적 없습니다. 페미니스트 개인과 페미니즘 실천은 명백히 다르고요. 페미니스트도 여성혐오를 할 수 있다는 말은 무엇을 시사할까요. 우리 페미니스트 개인이 하는 모든 행동이 페미니즘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페미니스트 개개인은 가부장제로부터 비롯된 사고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여성억압적인 규범을 실천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코르셋을 입는게 여성억압에 순응하는 거라고 하니, 자신의 신념(페미니스트)와 행동(코르셋을 입음)이 불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 말을 하신 거겠죠? 축하합니다, 인지부조화 단계까지 잘 오셨습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 신념과 행동을 일치시키도록 합시다.  


5. 결과적으로 코르셋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는 뜻 아닌가요? 무슨 자격으로 코르셋을 벗으라고 하는지?


 A.  맞아요. 사실 아직 내가 벗지 못한 코르셋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코르셋을 벗을 수 없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했을 때, 누구나 살면서 거짓말을 한 번쯤 하고, 따라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없으니 아무도 도덕을 가르칠 수 없다는 말도 성립하거든요. 그러나 우리는 왜 도덕을  가르치냐고 묻지는 않아요. 평소 행실이 심각하게 부도덕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굳이 교사의 자질 운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덕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규범이기 때문입니다. 

  코르셋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코르셋을 다 벗지 못했습니다. 알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벗지 못하는 코르셋이 있고, 몰라서 그냥 받아들이고 있는 코르셋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건 페미니스트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목표는 여성해방입니다. 가부장제 하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여성에게만 주어지던 역할과 관습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당신은 아마도 변화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 질문을 했겠지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습관을 바꾸는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가 내면화한 취향과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코르셋이 본질적으로 여성억압적이며,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이해한다면 이게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점에 동의하시겠지요. 처음부터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실천해 나가는 게 어떨까요? 


6. 자기만족으로 꾸밈노동을 할 수도 있잖아요.


꾸밈노동이 단순 자기만족이라면, 꾸밈노동을 하는 사람 못지않게 꾸밈노동을 하지 않고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꾸밈노동을 하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지요. 이는 그 자기만족이 단순히 개인의 취향만을 반영한 것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심리적 방어기제입니다. 우리는 사실 꾸밈노동이 대단히 귀찮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화장을 예로 들어 볼까요? 우리는 적어도 출근하기 전 30분은 화장하는 데 시간을 따로 써야 하고, 먹을 때도 조심해야 하며, 자주 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수정해야 하고, 너무 자주 해도 피부가 상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전에 또 클렌징 용품으로 지워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라는 것도. 하지만 동시에 꾸밈노동을 하지 않았을 때 불이익을 받는다는 점도 잘 알고 있어요. 취업할 때에도 (단순 알바일 뿐인데도) 필요하며, 꾸미지 않으면 연애/결혼시장에서 불리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꾸미지 않으면 학생이거나 기혼 여성이라는 이분법에 구겨넣어지고, 왜 꾸미지 않느냐는 오지랖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사회의 기대에 맞춰 자신을 꾸미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스스로 꾸미면서 예쁘다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의 기준은 어디에서 왔나요? 정확히 사회에서 정한 기준이 아니던가요. 우리는 눈썹, 코, 눈 크기, 쌍꺼풀 여부, 입술 색, 피부톤, 얼굴 크기, 턱선, 치아 배열, 팔뚝과 허벅지 굵기, 가슴 모양, 뱃살, 그리고 성기까지 사회의 특정 미적 기준에 맞추도록 강요받고 이것이 아름다운 모양이며 여성으로서 당연히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배웁니다. 얼굴을 작게 만드는 기술인 쉐이딩은 있지만 얼굴을 커 보이게 하는 화장법은 없어요. 특수 분장이 아니고서야 대개는 여드름과 흉터를 가리기 위해 화장을 한다. 피부톤을 고르게 하려고 CC크림을 바릅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모습에 만족할 뿐이라 하지만,아름다움의 기준은 사회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요?

그래서 우리는 자기만족을 위해 꾸밈노동을 하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너 무인도 가서도 화장하고 힐 신고 다닐거냐고. 이 때 무인도는 꾸밈노동에 대한 평가나 미의 기준이 전혀 없는 공간을 상징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없을 때 과연 굳이 뼈를 깎는 성형을 하고 몸에 해로운 화장을 할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움과 함께 짝을 이루는 개념은 추함이에요. 아름다움은 추함이 있을 때 비로소 상대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사람 두 명만 있어도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누가 더 낫다며 외모를 품평하고,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아름답고' 그렇지 않으면 '못생긴' 게 됩니다. 그런데 무인도에 자신과 비교할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꾸미기 전의 자신과 꾸며놓은 자신의 모습을 놓고 비교할 뿐이거든요. 아름답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주체는 오직 자기 자신이고 꾸미지 않는다고 아무도 고나리질하지 않아요. 이 때, 꾸밈노동을 과연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요?

꾸밈노동은 자기만족이 될 수 없습니다. 이는 어찌되었든 여성에게만 일종의 '예의'로서 요구되는 억압이며 불편하고 귀찮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직장에서 요구하기 때문에, 연애/결혼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은 단순히 인정받고 싶어서 이를 수행하며 사회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서 자기만족이란 이름을 붙였을 뿐입니다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꾸준히 화장품과 머리와 옷에 돈을 써가면서 예뻐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당연히 치르는 비용이라고 안도하는 것이겠지요.

7. 코르셋을 저항적 의미로 전복할 수 있지 않나요?


7-1. 남자들이 싫어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꾸미는 경우
   전복한다는 말을 들어보면, 전복의 근거로 남자들이 싫어하고 피한다는 점을 항상 내세운다. 이를테면 쎈 화장은 남자들이 싫어하므로 전복이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의 한계는 여전히 남성을 평가의 주체로, 여성을 평가의 객체로 둔다는 점입니다. '남자가 싫어하니까' 혹은 '사회적 시선이 안 좋으니까'라는 말은 여전히 남성 혹은 가부장적인 사회의 시선에 신경쓴다는 말 아닌가요? 기존의 꾸밈노동에서 여성은 평가의 객체이며 남성은(그리고 때로는 다른 여성들도) 평가의 주체가 된다. 기존의 권력관계를 뒤집지 못하면서 코르셋을 전복했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정말로 전복을 하고 싶거든, 여성이 남성의 시선을 신경쓰는 게 아니라 남성이 여성의 눈치를 보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그동안 여성은 얼굴형, 눈썹, 눈매, 쌍꺼풀 여부, 콧대, 치열, 입술 두께, 턱 모양, 피부, 가슴의 모양, 손/발톱, 뱃살, 허리굵기, 다리굵기, 체모, 엉덩이, 심지어 성기 모양까지 나노단위로 쪼개져 품평을 당해 왔습니다. 그 기준은 곧 여성들을 옭아매는 코르셋이 되었고요. 따라서 코르셋을 전복한다는 건, 남성이 평가의 객체가 되고 여성이 평가의 주체가 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성은 특정한 미적 기준을 만들어 자르셋을 씌우고, 남성은 그 자르셋을 써야 한다고요.

7-2. 특정한 연령대의 여성은 꾸밈노동을 하지 못하게 억압당합니다. 학생이거나 나이가 중년 이상인 경우요. 


A.  좋은 지적입니다. 맞아요. 특정 연령대의 여성은 꾸미면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거나(학생) 주책이라는(중년)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동일하게 코르셋은 여성억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화장품은 연령과 상관없이 피부에 유해합니다. 연령과 상관없이 성형은 항상 부작용의 위험이 있고 돈을 들여 자신의 뼈와 살을 깎아내는 일입니다. 치마를 입으면 바지를 입을 때보다 분명히 '더' 행동에 신경쓰게 되고요. 나이가 어리거나 혹은 많으면 하이힐과 브래지어가 불편하지 않게 되나요?

  만약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미 몸이 거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매일같이 하이힐을 신고 출근하면 불편한 감각은 점점 무뎌지겠지만, 그러다 어느 날 단화를 신으면 감각이 다르다는 걸 느끼잖아요. 한동안 단화를 신다가 다시 힐을 신으면 발을 꼭 조이는 그 느낌이 낯설게 와닿잖아요. 그런 겁니다. 그 불편함 자체가 이미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규범이며, 이미 강요당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걸 생각해 주세요. 예쁘게 꾸며진 상품으로, 인형으로 취급당하는 여성들을 생각해 주세요. 꾸밈노동은 어떠한 권력이 아닙니다.


8. 현실적으로 코르셋을 벗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A. 알고 있습니다. 뷰티, 패션, 연예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본인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니까요. 그러나 동시에 이 산업은 분명히 사회적 미의 기준을 재생산하고 다른 여성들에게 이를 권장합니다. 기획사에선 연예인들에게 특정한 옷을 입히고 성형을 요구하며 '대중적으로 잘 팔릴 법한' 상품으로 만들고, 연예인 역시 다이어트 비법이나 화장법 등을 공유하며 사람들이 잘 소비할 법한 외모로 성형함으로써 여성들이 이를 모방하도록 합니다. 화장품 회사에서는 광고비를 지불하고 연예인에게 특정 상품을 광고하도록 하고, 여성들을 후려쳐 가며 '자존감을 높이고 완벽해지기 위해' 자기 회사의 제품을 쓰라고 합니다. 성형 산업도 마찬가지고요. 패션몰에서는 대개 날씬하고 예쁜 모델을 내세워 옷을 입히고 다른 여성들이 이 옷을 입으면 모델처럼 섹시한/청순한/귀여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것처럼 광고합니다. 따라서 이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코르셋을 강요받기도 하지만 다른 여성들의 코르셋을 조이는 일에 동참하는 셈이지요.

  그 분들께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과감하게 코르셋을 조장하는 이 일을 버리고 다른 직종으로 갈아타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생계를 위해 타협하되 내부자이기 때문에 참여할 수 있는 선에서 연대하는 것입니다. 그 일에 종사하면서 여성이 어떻게 상품으로 다뤄지고 착취당하는지 익명으로 고발하고 공론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SNS상에선 페미니스트 계정과 업무용 계정을 분리하여 적어도 페미판 안에서는 코르셋을 조장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 아닌 남성만을 대상으로 자르셋을 씌우는 일도 고민해 볼 수 있겠습니다. 세번째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이 페미니즘 실천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래디컬 페미니스트인 제 입장에서는 첫번째를 가장 바람직하게 생각하지만, 이는 상당한 결단을 필요로 하며 우리가 생계마저 책임질 수 없으므로 두번째 선까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앞에서 누누이 여성억압적이라고 말했잖아요. 여성인 내가 좋아서 하면 다 페미니즘 실천입니까? 내가 주체적으로 하면 다 페미니즘이에요? 그건 아니잖아요. 자신의 행동을 페미니즘에 끼워맞추지만 마시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선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답을 찾으시길. 


9. 화장품 회사나 성형외과 앞에서 시위나 하지, 개인을 왜 공격하는가?



A. 첫째로, 그렇다면 역으로 래디컬 페미니스트에 대한 비판 역시 성립할 수 없습니다. 본인은 비판받아선 안 되지만, 우리는 비판받아도 되는 존재입니까? 또한 개인의 취향 혹은 습관을 비판하는 것이 개인의 인격을 공격하는 건 아닙니다. 애인, 덕질하는 연예인이나 캐릭터,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난하면 당신을 공격하는 게 되나요? 취향이나 습관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마세요. 코르셋이 여성을 억압한다고 말했지 당신이 그 자체로 여성을 억압한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단, 다른 여성에게 6너는 여자가 되어갖구 왜 안 꾸미니9 6성형 좀 해라9라는 식으로 코르셋 씌우면 여성혐오 맞습니다)


 또한 뷰티-성형-연예 산업은 서로 맞물려 있는 거대자본이며 이들이 합법적으로 코르셋을 장려하는 걸 우리 페미니스트들이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항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개인 소비자로서 기업을 상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체로 불매하는 것입니다. 소비하지 않고, 이러한 산업이 결과적으로 여성혐오와 관련되어 있다고 주지시키는 것입니다. 수요를 줄이면 공급은 알아서 줄게 되어 있습니다.


10. 소수의 사람들이 실천한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는다.


A. 페미니스트 왜 하냐고 묻고 싶은데요. 아니, 이건 비단 페미니즘뿐 아니라 모든 사회운동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나 혼자 해서 뭐가 바뀌냐'는 사고방식으로는 어떤 운동도 할 수 없어요. 나'만' 하면 개인적 실천이지만, 여럿이 하면 운동이 됩니다. 더구나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가 발달한 시점이므로 개인이 온라인에서 한 말은 충분히 파급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페미니즘의 부흥은 메갈리아란 온라인 커뮤니티로부터 시작되었고 거기에서 나온 수많은 띵문이 각종 커뮤니티와 SNS로 퍼져나갔습니다. 메갈리아 이전에 개념녀였던 많은 여성들이 지금은 여성혐오에 대항할 언어를 얻었습니다. 트위터에서 시작된 #XX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또 얼마나 많은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했는지. 탈코르셋 실천이 왜 파급력이 적을 것을 두려워합니까? '나 혼자 한다고 뭐가 바뀌겠어'가 아니라, '나부터 하면 됩니다'


11. 왜 코르셋 전시를 반대하나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코르셋을 SNS상에 올리는 것을 반대합니다.


1. 신뢰의 문제
학생들한테 욕하지 말라 가르치면서 혼낼 때 쌍욕하는 선생님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금연을 권장하면서 흡연하는 사람을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꾸밈노동이 여성에게 강요된 것이라 주장하면서, 취업하려고 성형하거나 화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원하면서, 업업한 사진을 남들 다 보는 공간에 올리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게 코르셋 전시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꾸밈노동이 억압이라고 말하고 싶으면,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세요. '어쩔 수 없이' 사회생활을 위해 한다고 해도, 꾸밈노동을 정말로 억압이라 느끼고 때려치고 싶었으면 보란듯이 전시할 수는 없어요. 오히려 '내가 현실과 타협했구나...' 하면서 속으로 어금니를 깨물고 말지.

2. 관찰,모방학습 효과

모든 랟펨들이 그렇진 않습니다만, 빨간약 한번 먹었다고 안심해선 안 되듯이 코르셋을 버려도 종종 돌아가고픈 충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충동 대신 숨막힌다고 느끼기도 하고요. 이미 페미판 밖은 코르셋을 장려하는 풍조가 너무 만연하고,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아?' 하면서 조금씩 타협하다 보면 결국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코르셋을 아예 전시하지 않는 공간을 원합니다.

또한 페미니스트 계정으로 새로운 페미들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들은 당신의 계정을 관찰함으로써 꾸밈노동은 마음대로 해도 괜찮은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 화장을 하는 페미들이 늘어나야 꾸밈노동이 강제되는 세상을 바꿀까요, 아니면 안 하는 페미들이 늘어나야 세상을 바꿀까요? 기존에 페미를 모르는 사람들도 하고 있던 걸 계속해봐야 코르셋이 강제되는 문화를 바꿀 순 없습니다.

앞서 제가 SNS공간의 특징에 대해 말했지요. 개인적으로 올리는 사진이라도, 나 혼자 보는 공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보고 있다는 것. 그래서 당신이 전시하는 코르셋을 보고 압박감을 느끼거나 영향을 받아 따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 그 점을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3. 스스로를 '평가받는 위치로' 대상화

올리시는 분들의 솔~찍헌 심정은 사실 이거 아닌가요?
'남들이 내 사진 보고 칭찬해 줬으면 좋겠다, 좋아요 누르고 반응해 줬으면 좋겠다 ...'
물론 칭찬 들으면 기분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계속 자댕이들이 사람 외모품평하는 글에 뭐라고 반응해 왔었나요? 칭찬도 평가라고 말했습니다. 니가 뭔데 날 '평가하려 드냐'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평가받는 사람은 평가자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는 걸요. 면접관과 지원자가 있을 때 눈치보는 건 지원자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몸매 사진이나 화장한 사진을 올리며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할 때 나는 평가당하는 대상이 됩니다. 어떤 반응을 기대하는 것도, 그리고 그 반응에 따라 실망하는 것도 전시하는 사람이에요. 보는 사람들은 아쉽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평가당하는 위치로 대상화하지 마세요. 그리고 반응하는 사람들도 거기에 예쁘다고 반응하지 마세요. 친하다는 이유로 외모품평이 평가가 아니게 될 수는 없습니다. 사회적 미의 기준에 따라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는 문화는 페미판 밖은 물론  안에서도 용인되어선 안 됩니다.


12. 저는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낮은 편이에요. 꾸미지 않은 모습에 자신이 없어요.


A.  만약 왕따를 당하거나 이 때문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 전문가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며 회복하는 게 우선입니다. 외모 때문에 자해를 시도하거나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는 페미니스트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면, 한번 꾸밈노동을 하지 않는 한남과 비교를 해 보세요.  남초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심지어 이 정도 외모는 잘생겼다고 정신승리하기까지 합니다. 반면 주위 여자들을 보면 어디 고쳐야겠다고, 어디 살빼야겠다고, 거울을 보면서 한숨쉬는 사람들이 널렸죠. 이는 사회의 성별 이중규범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고기 자르듯 여성의 외모를 부위별로 나눠 등급을 매기고 '완벽하지 않다'며 후려칩니다. 반면 남성의 경우에는 '그래도 이 정도면 훈남이야'라면서 약간의 하자 정도는 넘어가줍니다. 혹시 당신도 그런 이중적인 시선으로 자신과 타인을 보고 있지는 않았나요? 왜 그남들은 저리 당당하게 못생긴 얼굴을 들고 다니는데 당신이 꾸미지 않는다고 위축되어야 하나요?

[여성과 남성이 스스로를 보는 방식의 차이]


13. 탈코르셋, 무엇부터 실천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A. 첫번째, 거울 안 보기부터 시작합시다. 매우 사소한 방법 같지만 의외로 효과가 좋습니다. 우리가 거울을 왜 보나요? 남에게 비춰지는 내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 보잖아요. 거울 앞에서 이에 뭐 끼진 않았나, 얼굴에 뭐가 묻진 않았나, 화장이 잘 되었는지, 오늘 코디가 괜찮은지, 살이 얼마나 쪘네 빠졌네 확인하잖아요. 우리는 거울 앞에 서면 스스로의 외모를 자연스럽게 평가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울을 안 보는 건 외모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첫 번째 걸음입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남에게 비춰지는 내 모습을 확인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덜 신경쓰게 됩니다.

두번째, 탈코르셋 실천 일지를 쓰면서 자기평가를 하도록 합시다. 구체적인 기록 방법 및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목표행동 설정: 자신이 벗고자 하는 코르셋을 적어봅니다. 왜 그 코르셋을 벗고자 하는지 스스로 이유를 찾아 적어봅니다. 

2) 기초선 측정: 우리가 24시간 꾸밈노동을 하지는 않으며 각자 빈도가 다르므로, 얼마나 자주 코르셋을 쓰는가 혹은 어떨 때 그것을 하는가 적습니다. 

3) 계획 수립: 구체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빈도를 줄여나갈 것인지 적습니다. 만약 머리를 자르는 것 같이 빈도로 표현할 수 없는 행동이라면 언제 그 행동을 실행할지 적어봅니다. 이 때, 계획을 실천/실천하지 않을 경우 자신에게 어떤 상/벌을 줄 것인지도 함께 적습니다.

4) 계획 실행: 앞서 세운 계획을 실행합니다. 

5) 피드백: 주기적으로 피드백을 통해 자신이 잘 실천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잘하고 있으면 약속한 보상을 줍니다. 


세번째, 오프라인 시위나 래디컬 페미 강연, 모임 등에 참석하도록 합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무엇보다도 눈으로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확인한다면 큰 자극이 될 것입니다. 저도 오프라인 시위에 종종 참여하는데,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했을 때 이 사람들이 '정말 실재하는구나'를 느끼고 큰 자극을 받았거든요. 만약 지방이나 해외에 거주하여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 SNS 계정을 활용하여 탈코르셋 인증샷이나 혹은 해시태그 운동 등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이 문구는 돈이 곧 권력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페미니즘 컨텐츠를 소비함으로써 페미니즘이 유행이 되게끔 하려는 여초발 구호였다. 그런데 요즘 이 구호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여성을 대상으로 페미팔이하려는 자지들이 보인다. 핸드폰 케이스 텀블벅, 페미코인, 여초카페에 올라온 쇼핑몰 이야기까지. 이들은 공통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며, 페미니스트들을 '멍청하게' 취급한다. 어설프게 페미니즘 문구나 기호를 쓰면 여성들이 사줄 거라 착각하는 바보들이 많다.

  그게 너희가 여성혐오자란 증거다. 한남들은 여성들이 왜 페미니즘 컨텐츠를 소비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 페미니즘은 우리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우리가 그동안 살면서 좆같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표현할 수 있게끔 언어를 주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그러나 빨간약을 먹고 나니 여성혐오는 너무 만연해 있었다. 사람들의 인식과 제도는 물론이고, 광고도, 드라마도, 예능도, 노래 가사도, 애니도, 무엇 하나 불편하지 않은 게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페미니즘 컨텐츠를 소비한다. 여혐에 질식사할 것 같은데 숨쉴 수 있게 해주니까. 그리고 페미니즘적인 관점이 널리 퍼지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이 유행처럼 확산되어야 하니까. 그런데 한남들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장사할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멍청한 소비자로 간주하면서.

  오늘 또 여성혐오로 점철된 텀블벅 프로젝트를 보았다. 아예 변주곡으로 페미를 까고 성희롱을 버젓이 하면서 한남을 대상으로 한 귀귀 작가의 마케팅. 역겨움을 참을 수 없어 이렇게 글을 쓴다. 그 프로젝트는 망할 것이다. 여성의 삶도, 우리의 생존 문제가 뭔지도 모르면서 페미니즘을 유희로 소비하는 장사꾼은 망해야 한다. 사실 페미들이 굳이 말을 얹지 않아도 딱히 잘될 것 같진 않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생존 문제이지만, 성차별주의는 남성들이 그전부터 해왔던 조롱이고 유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남들에겐 절박함 따위는 없다. 역차별? 남성인권? 그렇다면 성재기는 왜 죽었나.

  어디 마음껏 발악해라. 너희가 말하는 역차별은 남성차별을 뜻한다. 그렇다면 성차별은 본래 무엇인가? '여성'차별이다. 여성이 차별받고 억압당한다는 사실을 애써 지우면서 발악해봐라. 젠더감수성 시계를 100년 전에 맞춰 놓고 시간이 가지 않는다고 마음껏 정신승리해라. 여성들을 조롱하고 여혐해봐라. 결과적으로 망하고 도태되는 수순을 밟을 테니까. 앞으론 페미니즘이 돈이 되는 게 아니라 여성혐오가 설 자리를 잃을 테니까.
블로그 이미지

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



네이버 뉴스 댓글에서 자주 보이는 말이 있다

"모든 남자가 다 이렇지는 않습니다"

"여성분들 모든 남자가 다 쓰레기는 아니에요. 괜찮은 남자도 있습니다."

딴에는 한국남자들이 나름의 꼬리자르기를 하고 여자들을 설득하려는 것 같은데, 전혀 통하지 않는다

왤까?

이미 한국여자들은 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모든 한국남자가 다 쓰레기는 아니다.

모든 한국남자가 일베를 하는 건 아니고 모든 한국남자가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것도 아니며 모든 한국 남자가 여자를 때리고 강간하거나 패고 죽이지 않는다.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여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모든 한국남자들이 사실은 조금씩 '그렇다'는 걸 지금까지 살면서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엄마만 사랑하고 바람 한번 피지 않아 존경스러웠던 아빠가 카톡으로는 한국 유출 몰카 동영상을 돌려보고 있고

손녀를 너무 좋아하는 다정한 할아버지가 명절에는 허리와 손목에 파스를 붙인 할머니가 차려주는 상을 가만히 앉아서 받는다

여동생을 끔찍이 아끼고 잘해주는 친오빠는 집에서 게임을 할때 니애미창년이란 말을 스스럼 없이 쓰고

오래전 부터 친하던 남사친은 자기 대학교 여자동기들을 오크년이라고 부른다

친하게 지내자며 짠을 하던 회사 남자동기들은 내 성과를 뒤에서 욕하고 여자라서 특혜받았다고 말한다

한번도 나에게 여성혐오적인 면모를 보여준 적 없던 믿음직한 남자친구는 내가 어학연수를 간다니까 화를 내고 친구에게는 여자친구가 외국인한테 박히면 어떡하냐며 고민상담을 한다.

나를 잘챙겨주던 직장 남자 상사는 술에 취하니 무릎에 손을 얹으며 나에게 술을 따르라고 하고

맨날 인사를 잘 받아주시던 인상좋던 이모부는 이모에게 성병을 옮겨 이혼을 한다고 한다

존경스러웠던 대학 남자 교수님은 대학원생 제자 성추행 사건으로 추문이 돌고

내가 좋아했던 스타 오빠는 룸싸롱에서 성폭행을 하다가 9시 뉴스에 나온다

보통 인터넷에서 여성혐오, 여성멸시를 하는 남자들은 늘 고민한다

에이 모든 한국여자가 그렇지는 않을꺼야

김치녀, 된장녀 말고 나를 진심으로 조건없이 사랑해줄 여자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없음)

하지만 한국여자들은 안다

모든 한국 남자가 쓰레기는 아니다

하지만 

모든 한국 남자가 언젠가 어느 부분에서는 쓰레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수도없이 기대하고 실망했기에 이제는 더 기대하지 않는 것 뿐이다. 이제 사실을 알아버린 것 뿐이다.

그래서 남자들이 "저기저기, 모든 남자는 그렇지 않아 "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이걸 두고 남자들은 남성혐오 일반화 오지는 메갈련이라고들 한다.


블로그 이미지

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

*본 글은 페이스북 레디즘 2 페이지에 올렸던 자료를 백업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혐오 현상에 대해 총체적으로 분석하여 보았습니다.
여성혐오의 정의부터 사례, 혐오의 주체, 원인 등부터 남성혐오도 참조로 살짝 다뤄 보았는데요, 사진과 함께 그 내용을 살펴봅시다.



  


블로그 이미지

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

지난달 29일, 네이트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각주:1] 사회 초년생인데 정식으로 입사하고 나서 몰카 피해를 입고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호소글이었다.  그 피해를 알리자 회사측에서 돌아온 반응은 오히려 감봉과 풍기문란이라는 징계였다.네이트판에 올라간 글은 확산되고, 회사 측에서는 인사팀장을 해고했다. (참고로 몰카범은 이미 올해 초에 구속되었다.) 그러나 교육담당자의 경우에는  그러지 않았다.[각주:2]  

언론은 늘 그랬지만, 피해자의 편을 들지 않았다. 얼핏 단순 사실만 전달하고자 뽑은 듯한 "한샘 여직원 피해 주장 논란"이라는 헤드라인. 그러나 이는 철저히 피해자를 소외시키는 표현이다. 피해자의 성별은 그대로 드러냈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처럼 "논란"을 붙였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트위터 공식계정의 경우엔 아예 피해자에게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사진을 올렸다. 글과 함께 첨부된 사진을 보면 한 장은 핸드폰을 든 손, 한 장은 탈의중인 여성의 뒷모습. 그렇게 관음하는 시선을 연출해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데도, 회사 측에서 이에 대처하는 태도는 지극히 가관이었다.  그 와중에 매출이 걱정되었는지 각종 언론을 통해 세일하겠다는 기사를 내놓았다.  더욱이 웃기는 건, 이런 사건이 일어나고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회사가 무려 여성친화적 기업으로 선정되었다는 점이다. 기술,생산직과 임원에 여성은 몇 명이었나. [각주:3]그리고 그 여성친화적 기업에서는 왜 이미 전과가 있던 몰카범을 직원으로 쓰고 있었나?[각주:4]



가해자 남성으로 지목된 교육담당자는 피해자와의 친밀한 관계였음을 주장했고 카톡 내용을 올렸다. [각주:5]피해자가 상처 부위 등을 찍어 증거로 제출한 마당에 반박할 증거자료로 제시하는 게 "피해자가 내게 호감이 있는 줄 알았다"라니. 뻔한 가해자들의 변명이었다. 아주 사소한 친절조차도 나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라 머리로 망상하고 일단 갖다붙이기.


그러나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돌을 던졌다. 특히 각종 남초커뮤니티와 기사 댓글에서 남성들은 돌을 던지며 피해자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고소취하한 거 보니 꽃뱀이네"
"어떻게 다음날 저렇게 태연하게 말해"
"카톡 연애소설도 아니고" 

기껏해야 "양쪽 다 입장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양비론적인 입장이 있을 뿐, 아예 관심없는 "그래서 피해자 예쁘냐"는 반응마저도 보였다.


 고소취하하고 무혐의를 판정받은 그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과연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관련 링크: 네이트판에 올라온 글) 법무팀에서도 피해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식으로 2차 가해를 했고, 지속적으로 고소를 취하하라고 말하며 '살해협박'까지 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감당할 수 있었을까?

다음날 어떻게 저리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느냐는 말에 답해 보겠다.  강간, 성폭행 피해자의 경우에는 그 당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며, 이는 흔히 피해자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전형적인 2차가해 발언이다. (어떤 말들이 2차가해에 해당하는지는 이 기사를 참조하자.) 우리는 아무도 성폭행을 당했을 때 실질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학교 성교육 시간 때 배우는 것은 고작 여성이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뿐이었으니까. 또한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이후에 그 일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흔한 방어기제 중 하나이다. 더욱이 취업이 쉬운 것도 아닌데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과 굳이 마찰을 일으키고 싶었을까?

또한, 가해자와 얼마나 친밀한지와 가해여부는 관련이 없다. 연인 사이, 부부 사이에도 강간과 폭행은 발생한다. 오히려 모르는 남보다 아는 사람에게 아이가 유괴당하는 일이 많이 발생하는 것처럼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그런 폭력은 더 일어나기 쉽고 입막음당하기도 쉽다.


여기까지, 현재진행형인 한샘 사건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나는 이 사건에서 여혐민국이 피해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지우고 성폭행을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회사, 중립적인 양 보도하거나 피해자를 부각시키는 이미지를 사용하는 언론, 성범죄로 파면된 경찰의 복직 비율과 낮은 성범죄 형량만으로도 알 수 있는 남성 중심적 사법체계, 그리고 이 사건을 지켜보고 피해자의 진정성만을 비난하는 남성들. 이 모든 것들은 가부장제에서 깊게 뿌리내린 강간 문화(rape culture)와 연결되며, 가해자에 이입하는 남성들 간의 결속은 안드로소셜[각주:6], 즉 남성카르텔 더 쉽게 말하자면 남근연대이다. 

남성카르텔 사회에서 남성들은 피해여성에 공감하지 않으며, 공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공감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기 때문에 공감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행위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어떤 발언이 2차 가해가 되는 줄 모른다. 당사자성을 갖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공감할 때는 오로지 그들의 딸/여친/어머니/아내를 언급할 때뿐인데, 그마저도 자신과 친밀한 관계 혹은 자신의 소유이기 때문일 뿐, 여성 일반으로 확장하여 생각하지 않는다.


한샘 사건은 사실 여성들에게는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직장 내에서 여성들은 흔히 권력관계에 의해 성희롱, 성추행을 경험하고, 화장실이나 탈의실 등 공간에 몰카가 있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힘겹게 피해자가 성범죄를 고발하면 집단에서는 자신들의 이미지를 위해 피해자를 입막음하고 퇴출한다. 회사가 되었든, 교회가 되었든, 병원이 되었든, 군대가 되었든 위계가 존재하는 그 어떤 곳에서나 말이다.  어렵게 호소한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며 비난하는 일 역시 항상 일어나 왔다.

그렇게 늘상 경험하는 일이기에, 지겹도록 경험하는 일이기에 우리는 분노한다. 동시에 여전히 남성 카르텔과 강간문화, 전체주의가 굳건하다는 걸 느끼면서 아파한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답답해한다. 이 빌어먹을 여혐민국은 언제야 변하지. 언제쯤 여성이 스스로의 피해를 눈치보지 않고 말할 수 있을까, 언제쯤 피해자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사라질까,  다 떠나서 근본적으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세상은 대체 언제쯤 올까. 내가 죽기 전에는 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함으로, 분노로 우리는 일어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믿으며 해결책을 강구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이 사건에 대해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일. (청원 링크) 나아가 성범죄 자체의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일. (청원 링) 그리고 1,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No means no"와 어떤 발언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지를 의무교육과정에서 가르치는 일.

   우리는 싸울 것이다. 3일에 한 명 꼴로 여성이 죽는 사회에서, 강간을 강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에서, 피해자의 목소리가 지워지고 도리어 비난받는 세상에서 그 여성혐오에 저항할 것이다. 생존 자체가 정치적인 여혐민국에서 여성혐오를  직면하며 살아가는 헬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다. 

  



 


  1. 현재 해당 글은 삭제되었으나, 이를 그대로 복원하고 내부 문건을 추가한 글이 재차 네이트판에 올라왔다. 링크는 http://m.pann.nate.com/talk/339307677 [본문으로]
  2. http://www.kookje.co.kr/mobile/view.asp?gbn=v&code=0300&key=20171104.99099001697#cb [본문으로]
  3. https://notice.gov3.org/notice.php?id=20161114002228&page=98 [본문으로]
  4. http://mnews.joins.com/article/22084222#home [본문으로]
  5. 현 시각 네이트판에 올라갔던 글은 삭제된 상태이므로 다른 사이트에 복사된 글을 첨부한다. http://www.inven.co.kr/mobile/board/powerbbs.php?come_idx=2097&my=chu&l=840759 [본문으로]
  6. 본래 남성 간 유대를 호모소셜이라 하나, 필자는 호모소셜 대신 안드로소셜을 사용하였다. 그 이유는 일전에 쓴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도록 하자.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femi-nyanng&logNo=221007817961 [본문으로]
블로그 이미지

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

메르스 갤러리- 메갈리아의 탄생 이후로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지 말라는 말이 많이 보인다. 또한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혐오 용어를 규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여혐은 묵인하면서 미러링을 통해 보여주니까 부랴부랴 혐오하지 말라고 기계적 중립의 태도를 취하는데, 필자는 코웃음만 나올 뿐이다. 엄연히 둘은 같을 수 없다. 이제 그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1. 여성혐오(misogyny)의 양상은 남성혐오의 양상과 다르다.

여성혐오란, 남성에게 있어서 '여성 멸시', 여성에게 있어 '자기 혐오'의 대명사이다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

대표적인 저서로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를 지은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위와 같이 정의하였다. 그렇다면, 여성혐오는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는가?


여성혐오의 최악의 형태는 여성 살해(femicide)로 나타난다. 이러한 여성 살해에는 80년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심하게 행해진 여아 낙태 및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 살인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일상에서, 각종 매체에서 여성을 조롱거리로 삼거나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것, 외모를 품평하는 행위 등도 여성혐오의 스펙트럼 안에 포함된다. 즉, 여성혐오란 이렇듯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남성혐오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남성혐오의 맥락은 대체로 여초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한남충, 씹치, 상폐남 등의 용어로 특정될 수 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 명백히 이러한 여성혐오는 온라인 커뮤니티 안의 공간뿐 아니라 각종 언론에서(대표적으로 XX녀로 대상화하기), 광고로 재생산되며 여성들은 취업, 승진 등에서 제약을 당하고 성희롱 발언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 스튜어디스 면접 가이드)
그러나 남성혐오는 어떠한가? 이것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재생산되거나 구조적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다. 메갈리아=여자 일베라는 인식을 언론에서 아주 잘 심어준 덕분에 일상에서 '남혐 용어' 들이 사용될 일 따위는 없다, 적어도 해당 집단의 사람들끼리 모이지 않는 한은.

이렇듯 명백히 그 양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성혐오에 대한 반의어랍시고 남성혐오라는 워딩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사실, 여성혐오라는 번역체 또한 일상적으로 쓰는 '혐오' 의 문맥으로만 읽는 사람들이 존재하여 다른 표현으로 대체되기를 바란다.)


[여성혐오와 남성혐오를 동일선상에 놓고 해석한 대표적인 예시.]



2. 여성혐오와 남성혐오가 나타나게 된 근본적인 배경이 다르다.
여성혐오가 나타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경제적 불안과 여성 사회 진출로 인한 남성의 우위 저하, 여성을 약자로만 인식하는 성 교육 문화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또한 최근 여성신문의 한 기사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1500명에게 ‘여성혐오가 생기게 된 이유’를 두 가지 꼽아달라는 물었더니 ‘여성가족부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남자 청소년의 53.8%, 남자 대학생의 48.4%, 취업준비생·무직의 41.8%가 여성가족부를 여성혐오가 생긴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여성혐오 현상의 이유 중 두 번째로 비율이 높은 것은 ‘남자에게 의존해서 사치를 일삼는 여자’였다. 즉, 일명 된장녀나 김치녀 때문에 여성혐오가 생겼다는 답변이다. 특히 청소년(40.8%)과 직장인(37.9%) 사이에서 많았다. 여성단체나 페미니스트 때문이라는 응답도 비슷한 비율로 나왔다.



그러나 사실 여성가족부에 대해 알려진 속설로는 잘못된 것이 굉장히 많으며
(페이스북 페이지 여혐주작, 어디까지 가봤니? 를 참고할 것)
남성에게 의존적인 여자라는 부분 역시 말이 안되는 것이, 사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치페이를 주장하고 있으며 모르는 여성이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 것에 대해 된장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열등감의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게임이나 각종 커뮤니티에서 여자인 척 하는 사람들 때문에 여성혐오가 생겨날 수 있다. (관련 카드뉴스 참고할 것)

따라서, 기존에 여성혐오를 위해 조작된 자료들, 혹은 소위 넷카마들에 의해 여성혐오가 재생산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남성혐오의 원인에 대해서 살펴보자.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리고 지금은 글리젠이 망해버린) 사이트 메갈리아로부터 소위 남혐용어가 대량으로 생산되었는데, 이러한 남성혐오의 원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1. 경험에 의한 남성혐오 
2. 기존 여성혐오 표현에 대한 미러링으로 생산

정확히는 1과 2가 결합되어 있는 케이스라고 해석하면 된다.
1번, <경험에 의한 남성혐오> 항목에 대해서 공감이 안 가시는 분들을 위하여 통계자료를 아래와 같이 첨부한다. 


즉, 여성혐오를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여성들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남성들에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보여주기 위해 미러링으로 생겨난 것이 남성혐오 표현이다.

본론의 1, 2의 이유로 여성혐오와 남성혐오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이를 동일시하는 것은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 중립이며 필자는 이러한 태도를 비판한다.


블로그 이미지

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