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는 트위터에 한번 정치적 레즈비어니즘 개념에 대한 정리 트윗을 타래로 엮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동시대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인 아드리안 리치의 개념과 함께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아래는 아드리안 리치의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연속체 개념을 중심으로 정리한 카드뉴스로 개인 인스타그램에 우선 정리한 것들입니다. 내가 카드뉴스 다시 만드나 봐라

1부: 강제적 이성애 개념

2부:레즈비언 연속체 개념

3부에선 정치적 레즈비언으로 산다는 실제적 의미가 무엇인지, 레즈비언 집단과 이성애가부장제 사회와 함께 엮어서 다뤄 보았습니다.

 4부...까지 나오지 않길 바라나 만약 쓴다면 앞서 언급된 것들 외에 질문으로 구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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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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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남성은 언제나 여성을 혐오했었다

좌파 남성들의 여성혐오 역사는 유구하다. 그남들은 여성을 수족으로 부릴 뿐 결코 리더의 자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빠는 필요없다> 라는 책에서 운동권 좌파들의 여성혐오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여성운동은 좌파남이랑 같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남들은 본인이 부를 가지지 못했기에 운동을 할 뿐, 기득권인 부분에서는 모르는 체 하거나 좀더 교묘하게는 여성주의적 발언을 하는 듯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 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그래서 독자적인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좌파남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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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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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8월 4일 토요일 4시-7시

장 소: 광화문역 9번 출구

주 최: 불편한 용기

드레스코드: 레드

주의사항: 본 시위는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 가능합니다.

공식계정

- 카페: http://cafe.daum.net/Hongdaenam

- 트위터: @hiddendutch

- 페이스북: 불법촬영 성편파수사 규탄시위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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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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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사용되던 감정노동보다는 공감노동이 적확한 표현이라 생각하여 감정노동을 공감노동으로 대체하였다.

 

타인은 내게 완전히 공감할 수 있는가


없다. 내가 직면한 문제를 가장 잘 아는 건 내 자신이고, 어떤 감정이 드는지 가장 잘 아는 것도 내 자신이다. 타인의 공감이란, 나의 문제를 타인의 사고로 해석하고 사회화한 공감노동을 수행하며 내 감정을 흉내내는 일이다. 자기의 시각에서 내 문제를 이해하고, 내 감정을 추측해서 그 상태를 흉내내기 때문에 완전한 공감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예시를 하나 들어 보겠다. 내가 칼에 손가락을 베였다고 하자.  고통의 강도는 나만 알 수 있다. 이 때 타인이 "괜찮아?어떡해 아프겠다" 라고 하는 건 자기가 겪은 비슷한 경험을 토대로 나오는 반응이다. 사실 내가 얼마나 아픈지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다. 다만 타인은 자신의 비슷한 경험에 비추어 그 당시의 감각을 떠올리고  '아프겠다'고 반응하는 것뿐이다. 또 하나의 예시를 들어보겠다. 친구들에게 남충과의 관계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혐애1상담을 한다고 치자. 이 때 둘이 잘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헤어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똑같은 문제에 다른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나의 문제를 나의 시각이 아니라 타인의 시각에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인의 시각은 나의 시각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렇듯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감정의 이해에 대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한 공감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내 문제에 가장 잘 공감할 수 있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다. 완전한 공감이란 불가능하고, 타인에게 공감을 요구하는 건 도리어 상처만 안고 돌아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직관적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타인이 진정으로 자신의 상황을 이해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타인이 자기 말에 동조해주면서 공감노동을 하길 바란다. 어째서일까?

 

 타인에게 공감노동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 인정욕구와 관련이 있다.  내가 직면한 문제가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맞는지 타인으로부터 확인받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정투쟁은 공감노동을 요구하는 사람과 수행하는 사람의 계급에 따라서 양상이 달라지며, 같은 성별계급sex caste이더라도 여/남 집단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권력과 공감노동


  우선, 권력차가 존재하는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보자. 실제로 권력관계에서 공감노동을 요구하는 쪽은 대개 지배계급이다. 남성은 여성에게, 상사는 부하직원에게, 모부는 그 아이들에게[특히 딸에게], 부자는 빈자에게 공감노동을 요구한다. 물론 반대로 약자가 강자에게 공감노동을 요구할 수도 있으나, 양측이 공감노동을 수행하는 방식은 분명히 평등하지 않다. 사회적 약자가 강자에게 공감노동을 요구하는 경우는 숨 좀 쉬게 해달라, 먹고 살게 해달라는 아우성에 가까우며 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눈치를 봐야' 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차이가 있다.


  또한 권력관계에서 약자가 공감노동을 하지 않으면 비난과 불이익이 따라온다. 왜냐하면 공감노동을 수행하지 않는 것은 지배자의 서열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성이 남성을 인정하지 않을 때 남자들은 서열이 떨어지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래서 남자들 중에서도 서열 최하위의 남자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여성, 대개 가장 만만한 아내와 딸에게 위협과 폭력을 가해서라도 인정받고자 한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폭력앱충의 흔한 멘트가 6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9인 것 역시 이런 맥락에 있다. 중간~상위 서열의 남자들은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는 대신, 공감노동을 수행하지 않는 여자나 아랫사람에게 사회성이 떨어지고 (특히 여성의 경우)귀여운 맛이 없다고 하거나, 인생의 값비싼 조언을 해주는 양 비위를 맞춰달라고 요구한다. 그래야 자신의 서열이 다른 남자들 앞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은 공감노동을 하지 않는 남자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프레임을 씌울 수 없는데, 사회에서 여성의 공감능력이 남성보다 우수하며, 이를 돌봄노동과 연결해 남성의 공감능력이 낮은 것도 6이해하라고9 강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표면적으로 공감노동을 수행하지만 공감을 요구하는 쪽에 동일시하지 않는 건 강자만 가능하다. 연장자는 연소자의 입장을 듣고 공감하는 척 가스라이팅을 할 수 있는 반면(예:  힘들지? 그래도 노오오오력하면 다 돼!) 연소자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남성폭력male violence을 당했을 때 “진짜 안됐다...근데 그 날 무슨 옷 입고 있었어?” 따위의 말로 위로하는 척 2차 가해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자지거나 흉자다. 그러나 여성이 가해자가 될 때 피해자남에게 공감하지 않는 여자를 이들은 맹렬히 비난한다.


성별에 따른 공감노동의 양상


  그렇다면 동일한 성별계급에서 공감노동을 요구하는 건 어떤 방식일까. 우선 여성 집단을 먼저 생각해 보자. 여초 커뮤니티에 가면 이런 글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남친이 ~했는데 나 화내도 되는 거겠지?", "~ 내가 소심한 걸까?"라고 감정을 확인받는 글들. 사실 나의 감정은 온전히 내가 통제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은 내가 느끼는 감정들조차도 '이게 과연 이 상황에서 적절한 감정인지' 확인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분노와 질투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타인에게 확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여성은 감정적이라 쉽게 화낸다는 여성혐오적 편견 때문이다. 우리는 그남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분노와 질투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조차도 빼앗겼던 것이다. 여성은 판단능력이 떨어지고 감정적이라는 세뇌는 우리의 감정조차 검열 대상으로 만들었으며, 자신의 판단능력과 감정을 신뢰하지 못하는 여성은 가족, 친구, 익명의 커뮤니티 등에 이야기함으로써 공감노동을 요구하게 되었다. 사실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임에도 '네 생각, 감정이 틀린게 아니야' 라는 반응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반면 남성의 경우 자신의 생각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는 하지만, 감정을 확인받고자 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그남들은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편이며,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도 생각의 타당성보다는 자기가 처한 문제의 중요성, 문제를 해결한 자신의 유능함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일부러 과장된 이야기를 하면서 유능하다, 훌륭하다는 반응을 기대하는 것이 그남들의 인정욕구다. 즉, 인정투쟁이 유능함을 자랑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므로 그남들은 이를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사람을 지배하는 데에도 효과적으로 사용해 왔다. 6나는 유능하므로 네가 나를 떠받드는 것은 당연하고, 이렇게 능력있는 주인님을 모시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9라고 여성을 세뇌시켰고 위에서 설명했듯이 공감노동을 수행하지 않는 여성에게는 불이익을 주었다. 그러나 여성에게 공감노동을 요구하는 것은 서열 상승이 아니라, 여성을 지배하는 현상 유지에 가깝다. 실제로 그남들이 서열을 올리기 위해 인정투쟁의 준거집단으로 삼는 것은 같은 남자들이다. 그남들끼리 부랄탕[각주:1]을 끓일 때 허세가 심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기 여친에게 쓰는 돈은 아까워하고 여성을 김치녀네 된장녀네 후려치면서, 남자들끼리 있을 때 한턱 쏜다고 보여주는 이중성 역시 인정투쟁의 준거집단이 남성이라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공감노동에 관해 취해야 할 태도


  첫째. 자신의 감정과 판단능력을 신뢰하고 스스로 사고해라. 특히 나의 감정에 대해 옳은지 틀린지 묻지 말 것. 나의 생각과 감정은 온전히 나의 것이고, 그렇게 느낀 데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느낌, 예상 해결책 등을 적고 사고과정을 기록하자.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믿음을 가져라. 나를 가장 잘 달랠 수 있는 것도 나 자신이라는 믿음을 가져라. 그리고 정보를 구하되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말에 휩쓸리기가 쉽고, 공감을 빙자한 가스라이팅에 넘어가기도 쉽다.


  둘째. 아무에게나 공감노동을 수행해 주지 않는다. 공감노동을 요구하는 쪽이 원하는 반응을 해주지 않았을 때 관계에 리스크가 생길 수 있으므로 친밀한 관계에서 잘 모르겠거든 적당히 회피하는 쪽이 나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서열질서를 재생산하므로 자지를 위해서 공감노동을 수행하지 말 것.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볼 경우 공감하는 척하며 은근슬쩍 자지의 능력을 폄하하거다 기억력, 판단능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을 시도하자. 어차피 그남들은 당신이 여성이라서 겪는 차별과 억압에 공감하지 않으니, 그남들을 위한 6진심어린 공감9은 정말이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누누이 말하지만 정신적 자원에도 한계가 있다. 상담사들은 직업적으로 공감노동을 수행하지만 그 사람들도 스트레스를 받고 자원이 고갈되기 때문에 상담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무에게나 공감노동을 수행해 주지 말라는 것. 같은 여성이라도 당신에게 일방적인 공감을 요구한다면 그건 착취다.


셋째로, 타인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지 않고,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일 경우 그 관계를 피하라.

어떤 관계가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관계인가요?
- 폭력앱충의 예: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약자에게 물리적 폭력 행사
- 혐애/망혼 흉자의 예: 자기가 처한 상황의 좆같음을 끊임없이 토로하지만 상황을 근본적으로 벗어날 생각이 없음. 그리고 공감해주지 않으면 뒷담하면서 평판을 떨어뜨림

 

감정 쓰레기통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쏟아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래도 되는 존재'로 대상화하는 일을 감정 쓰레기통 삼는다고 말한다. 즉 공감노동에서 착취하는 사람-착취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착취하는 사람이 착취당하는 사람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사람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용하는 것은 타인의 정신적 자원을 고갈시키며, 인간관계를 망친다. 만약 당신이 감정쓰레기통으로 쓰인다 싶을 경우 그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 6위로도 못해주냐 싸이코패스야9 같이 가스라이팅을 동반하는 경우 결과적으로 자존감도 낮아지고, 피해자임에도 도리어 당신이 사회성 빻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 aka 알탕연대, 남성 호모소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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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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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워마드에서 밀전병에다 낙서를 하고 태운 글이 올라왔고, 수많은 언론에서는 이때다 하고 기사를 내놨다. 천주교 쪽에서는 이를 신성모독으로 규정, 워마드 사이트 폐쇄 청원을 올리고 바티칸에서 파면해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 모든 일이 탈좆교한 내게는 그저 우스운 해프닝으로 보인다. 주목해서 볼 웃음 포인트란 정말 많다. '개독'을 욕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으며 일베에 마리아 능욕글은 넘쳐나는데 하필 워마드를 콕 찝어서 욕받이로 쓰는 것, 내부의 성범죄에 분노하지 않으면서 '빵쪼가리 훼손'에 분노하는 것, 당신들의 좆교를 강요하는 폭력성은 돌아보지 않는 것. (이를테면 유아세례나 행인들의 시간을 빼앗는 노방전도 등) 이 모든 포인트들을 따지면 우습기 짝이 없는 것이다.

내부 성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일베의 여성혐오 겸 신성모독 게시물들


   천주교인들이 보여주는 이중성이 아니더라도,  여성주의자들이 좆교를 배격하고 비판하는 건 사실 당연하다. 세상의 모든 좆교는 여성 신도를 자지들보다 낮은 자리에 있게 하며, 여성의 돌봄노동과 감정노동을 당연시해 왔다. 음식을 준비하고 뒷정리를 하고, 신도들을 앞에서 웃으며 맞이하는 역할은 주로 여성의 몫이다. 더 많이 봉사하는 성별은 역할은 여성이지만, 여성의 지위는 제한되었다. 천주교에서는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고, 개신교는 교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개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수천 년 전에 쓰여져 업데이트되지 않는 경전 곳곳에 녹아있는 여성혐오는 얼마나 많은가. 개독경은 이미 창세기부터 여성을 사악한 뱀에게 넘어가 남성을 타락시킨 존재로 묘사하고 여성을 인구 수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내부에서 발생한 성범죄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단으로 찍히고 사탄 혹은 독사의 비유로 묵살당해 왔는지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성애 중심의 결혼제도를 당연시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는데 이는 기존의 결혼제도에 편입되지 않는 성소수자, 비혼 여성들을 배제하는 것이다. 이렇듯 철저히 자지 중심적인 문화가 만연하고, 자지를 머리 위에 두고 섬겨야 하는 것이 좆교다.

교회에서 여성의 자리는 어디에 고정되어 있는가.



   따라서 여성주의자들은 좆교가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의 노동력을 갈취하며 차별하는 또 하나의 억압구조임을 기억하고, 좆교를 전면적으로  거부해야 할 것이다. 워마드가 쏘아올린 작은 빵은 상당한 파장을 불러왔는데, 이를 잠깐 지나가고 말 해프닝으로 기억하지 말라. 이 흐름은 장기적으로 개개인의 좆교 거부선언, 끊임없이 부딪히는 의제인 임신중단 합법화, 레즈비언 가시화 운동 등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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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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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적 의미의 코르셋은 미용 목적으로 멀쩡한 여성의 신체를 구속/ 변형한다. 우리가 쓰는 '코르셋'은 바로 이 지점에 맞춰 의미를 확장시킨 것이다. 화장,브라,하이힐,치마,교정,성형 등은 미용 목적으로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에 부합하게끔 여성의 신체를 변형하고 구속한다. 무엇이 코르셋이고 무엇이 아닌지는 사실상 거의 명확하다. 뭐가 코르셋인지 정의한 이상 '탈'코르셋도 손쉽게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주체적 화장/성형/다이어트 따위가 탈코르셋이라는 도둑들이 있다. 자기가 하는 게 페미니즘이라 믿겠지만, 당신들은 여성주의자들의 언어를 빼앗는 도둑이고 백래시다. 스스로 언어를 훔친다는 자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 도적들은 뻔뻔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언어의 주인인 여성주의자들의 눈치조차 안 보고 '역코르셋 씌운다'며 주인에게 호통을 치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답답한 옷을 벗는다는데 거꾸로 옷을 입는다고 말하니 얼마나 웃긴 문법인지.


    지금은 다 억압인 줄 알지만, 전족이 발을 기형으로 만들고 코르셋이 장기의 위치를 바꿔놓아도 그 당시에 많은 여자들이 순응하고 스스로 신고 입었다. 그리고 당신들도 똑같아. 오히려 여성주의자들 언어를 빼앗아서 쓰니 더 해로워. 정신 좀 차리고 족쇄 안 벗을거면 최소한 도둑질이나 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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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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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7.9.21일경 feminist current에 실린 Meghan Murphy의 칼럼을 번역한 것입니다.
http://www.feministcurrent.com/2017/09/21/terf-isnt-slur-hate-speech/

지난주에, 60세의 여성이 자유발언대에서 여러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녀는 "젠더란 무엇인가"라는 연설을 하기 전, 하이드 공원의 역사적 코너를 집회 장소로 정한 무리의 여성들과 함께 있었다. 마리아 맥라클란(Maria MacLachlan)을 때리고 걷어찬 남성들은 이 여성들에 반대하기 위해서, 그리고 "젠더 정체성"을 둘러싼 법제화와 새로운 방식의 대화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자들은 그들의 분노와 선동적인 레토릭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구조화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여성들을 "TERF(트랜스배제적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하였다. TERF는 닥치게 만들고, 희롱하고, 때리고, 그렇지, 죽이기 위한 현대판 마녀사냥이다.


"젠더 정체성"개념에 의문을 갖는 페미니스트들이 폭행당하고 살해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칭 좌파들이 굉장히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트위터 알계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더 큰 플랫폼을 가진 남성들, 그러니까 공적으로 안티파(Antifa)와 미국민주사회주의자(DSA) 같은 집단에 소속된 남성들은 동지들의 지지를 받으며 "터프를 때리자", "TERF를 단두대로 보내"같은 메시지를 자랑스럽게 증폭시킨다.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의 표현을 빌리자면, 많은 사람들이 "TERF를 벽에 매달아"라고 말하기 위해 이용된다.

<시녀 이야기>에서 반역죄로 처형당해 매달린 시체들


그 비유는 놀랍게도(그리고 무섭게도) 이런 남성들의 의도에 대해선 진실된 입장이다. <시녀 이야기>의 "벽"에는 처형당한 사체들이 매달리는데, 종종 그 목에는 "젠더 반역"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린다.* 시체들은 다른 이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이용된다. 반역을 꿈꾸지 말고, 대항하지 말고, 가부장제의 질서를 거부하지 말라고. 그리고 이는 정확히 "TERF"라는 말을 사용하는 남성들이 여성에게 말하는 것들이다. "우리의 규율에 따르지 않으면 처벌하겠어"

자유발언대에서 일어난 폭력을 비난하기는커녕, 많은 트랜스활동가들과 자칭 좌파남성들은 이를 축하하고 장려했다.

 

TERF가 중립적인 단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용어는 정반대로 사용된다. 그건 여성들이 스스로를 위해 만들
어 달라고 한 용어가 아니다. "slut(창녀)" "cunt(보지년)" 내지는 "bitch(썅년)"처럼, "TERF"는 여성을 닥치게 하려고,
괴롭히려고, 비난하려고, 모욕하려고, 수치심을 주려고, 그리고 쫓아내려고 낙인찍는 말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 말은
위협이다. 내가 살면서 cunt, bitch, slut이란 말을 남자한테 들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나는 거의 항상 그들에게서 폭력을
당할 위협을 느꼈다. 이 말들 뒤에 있는 경멸하는 분노- 뒤따라가서 한대 갈기고 싶은 욕망-은 너무 자주 현실이 된다. 나는
항상 이 말이 나한테 "너는 피지배계급이란 걸" 대놓고 일깨워주기 위해 사용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여성이 얼마나 자신
감있고, 거칠며, 자기확신에 차 있고, 강하고, 용감한지랑은 상관없이, 이런 말들은 그녀를 종속적인 그 자리에 머물게 한
다.

"TERF"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의도적인 조작으로, 여성해방운동의 기반이 되기는커녕 페미니스트들의 사상과 운동을 배제적이라 재구조화한다. 달리 말해, 이는 여성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적 조직화와 가부장제에 대한 여성주의 분석의 토대가 되는 기초이론에 대한 공격이다.


예를 들어, “TERF”라 불리는 우리들은 아래 항목을 포함해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다고 낙인찍힌다.


•여성이 피억압자 계급의 사람들이라고 이해 (여기서 피억압자 계급이란, 케이트 밀렛이나 쉴라 제프리스가 말한 성별
계급/카스트)
•선천적인/내재된 젠더 개념에 문제제기
•"젠더 정체성"에 대해 대화하기* (역주: 주로 비판하는)
•아이들은 트랜지션 과정을 정말 겪어야 하는가 질문하기
•이미 “TERF”라고 낙인찍힌 여성과 어울리거나 그런 여성을 옹호
•여성억압과 남성우월주의의 근원은 생물학적 성별에 기반한다고 이해
•젠더는 강요당한 것이며, 억압적이고 여성과 남성 간의 위계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이해
•“트랜스여성은 여성이다” 같은 도그마나 주문에 문제제기
•여성전용공간을 지지
• “남성” 과 “여성”이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는 이데올로기에 논박하기

이런 점들은 범죄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페미니즘의 근본이다. 달리 말해 어떻게 가부장제가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선, 당신은 우선 누가 지배계급의 구성원이고 누가 피지배계급의 구성원인지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당신은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 구조적이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당신은 여성이 선천적으로 "여성적"이지 않으며 남성도 선천적으로 "남성적"이지 않다는 걸 이해해야만 한다. 당신은 기꺼이 비판적인 대화를 하고 주류 이데올로기와 주류 정치적 담론 양쪽 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당신은 가부장제가 여성의 재생산능력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되었으며, 그러므로 그들의 입장에서 여성의 생물학을 “하등한” 것으로 취급하는 일이 매우 핵심적이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당신은 페미니즘이 여성이 중심이 되는 운동이며 따라서 여성은 그들 자신의 해방을 위해 지배계급의 구성원(남성) 없이 그들끼리 모이고 조직화할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TERF”라고 할 때 지칭하는 건 “페미니스트”다. “건방진 여성”이다. 그들이 종종 “배제적”이라고 말할 때 그 말이 의미하는 건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을 배제한다” 가 아니라 “남성을 배제한다”는 뜻이다. 젠더 비순응성은 페미니즘이 환영한다 — 페미니즘은 젠더규범에 순응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순응하는 데 관심있다면, 우리는 요구받은 대로 앉아서 닥치겠지.


“TERF”가 항상 비속어이긴 했지만, 이 단어가 더 이상 단순한 욕설이 아니란 건 결국 분명해진다. 그 단어는 혐오발언이다.


페미니스트 언어학자이자 옥스포드 대학의 언어 및 커뮤니케이션 교수인 데보라 카메론은 어떤 단어가 비속어인지 판단할 때 우리가 반드시 체크해야 할 주요 질문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 단어는 부과되었나 혹은 단어가 가리키는 집단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것인가?
•그 단어가 증오나 경멸을 드러낸다고 흔히 받아들여지는가?
•그 단어에 대응하는 중립적인 말, 그러니까 증오나 경멸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동일한 집단을 의미하는 표현이 있는가?
•그 단어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이를 욕이라고 여기는가?


그래, 위 질문들의 답을 생각하면, 그 단어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부과되고, 항상 경멸적이라 인식되며, 대응하는 중립적인 말이 있다.(즉, 개인은 단순히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쓸 수 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은 지속적으로 그 단어가 욕이라고 말해 왔다 — “TERF” 는 두말할 나위 없이 욕이라고. 여성이 이 욕설의 주요 타겟이 된다는 점과 흔히 폭력의 위협(최근엔 현실로까지)이 따라온다는 걸 고려하면, 우리가 지금 씨름해야 할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자유발언대에서 발생한 폭력적인 사건에 뒤이어, 나는 온라인에서 남성들에게 수백 통의 살해협박을 받았다.(가해자들 중 한 명이 “terf들 몇명 강간해”라고 그 속내를 공공연하게 내비쳤던 건 일도 아니었다) 나뿐만이 아니다. 자유발언대에서 벌어진 폭력을 축하하고 옹호하는 남자들에게 문제제기한 여성은 누구나 타겟이 되었다. 이 모든 위협은 “TERF”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식으로 낙인찍혀 왔다. 구체적으로는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그 정치학에 대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퍼뜨리고(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사람들을 죽이려고 한다거나 제노사이드를 옹호한다면서), 젠더 비순응자로 정체화한 남성에 대한 억압자로 재구조화하며, 대개는 사악한 마녀로 먹칠해서 폭력을 당해도 싸다고.

 

 

학대를 정당화하고자 억압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거짓말을 퍼뜨리고 이들의 인간성을 말살하는 행위는 인종차별주의자와 외국인혐오자들이 예로부터 사용한 전략이다. 히틀러는 유대인 학살을 저지르기 위해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 실제로, 나치가 반유대주의를 퍼뜨리고, 반대파들을 진압하며, 사람들이 또다른 집단을 적대하게 만드는 데 선동은 핵심적인 장치였다. 독일 신문에서는 반유대주의적인 이미지와 메시지를 담은 만화와 광고를 찍어냈다.


“당신이 충분히 큰 거짓말을 하고 이를 반복하면 사람들은 결국 믿는다.” 히틀러가 통치에 대해 남긴 말이다. 그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며 단순히 공포 혹은 지적 게으름에 따라 행동하고, 철저히 목적과 근간을 따지지 않고 시류에 편승할 뿐이라고 믿었다. 유대인 학살은 대중이 동조했으므로 성공적이었다 —왜냐하면 개개인은 나치가 퍼뜨린 미신과 거짓말을 믿었고, 그들이 비판적으로 생각하거나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혐오발언방지법은 그때그때 다르게 적용되며, 애매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증오하거나 폭력을 저지르는 것 혹은 제노사이드를 옹호하는 일이 혐오발언에 해당된다는 걸 알게끔 하려는 의도임을 서술하고 있다.


젠더정체성 이데올로기에 문제제기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종종 제노사이드를 옹호한다며 (전략적으로)비난의 대상이 되므로, 확실히 해두자. “제노사이드”는 생물학적 성별이 실재라는 주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타고난 것이라는 사상에 문제제기하는 것도 아니며, 여성들만을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제노사이드는 다음을 뜻한다

:식별가능한 집단의 구성원들을 살해하거나, 그런 집단을 물적으로 파괴하려고 고의적으로 삶의 조건을 제약하는 일

 

달리 말해서, 페미니스트들은 전부 살해당하고,해고되고, 집을 잃고, 괴롭힘당하며, 침묵당하고,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학대당하고, 강제 노동 수용소에 보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https://twitter.com/laurelaiissexy/status/90995557719916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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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제노사이드를 옹호하거나 장려하는 일은 기소해야 할 위법행위다. 마찬가지로, 식별가능한 집단에 대해 혐오를 조장하거나, 평화를 깨뜨릴 것처럼 보이는 식별가능한 집단에 대해 공적으로 혐오/폭력을 선동하는 말을 하는 것(i.e. 예:자유발언대에서 일어난 사건)도 기소가능한 위법행위다.


그러나 이런 법률은 강제하기 어렵다. 이것이 필연적으로 나쁘단 건 아니다.우리는 좋든 싫든 트위터에서 말하는 걸로 사람들에게 빚져서는 안 된다. 확실히,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남성들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미디어나 다른 기관이 혐오발언을 일상화하는 것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는 일이다.


따라서 법을 넘어서서 의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미디어가 혐오 발언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만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출판물은 흑인을 설명하기 위해 n-word(흑인비하표현)을 사용해선 안 되고 유대인을 설명하기 위해 “kike”란 단어를 쓸 수 없다. 이런 표현이 인종차별주의를 강화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며 그리고/또한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억압당해 온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욕하는 일임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기관, 그리고 정부당국이 특정한 용어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조장하는 데 사용된다는 걸 알게 되면, 이런 단어의 사용을 장려하지 못하게 비난하거나, 단어 사용을 삼가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미디어 창구에서 아직도 그 단어를 무비판적으로 쓰고 있는 걸 목격한다.

“TERF”라 불리는 사람들을 폭력, 죽음, 그리고 제노사이드의 위협에 빠뜨리는 대다수는 남성이다. 이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어떤 면에서, 이 단어는 여성혐오적인 법안을 공적으로 만들지 못하게 막거나 그게 아니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옹호하면서 스스로를 좌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바쳐졌다. 그들이 "진보적일" 자격은 정치적 올바름(PC)의 허울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TERF”로 낙인찍힌 여성이 나치와 차별주의자랑 비교당하며, 트랜스젠더 운동이 소외된
사람들의 관심사에 연대하라고(명시적인 반페미니즘적, 개인주의적 이데올로기에도 불구하고) 요구하기 때문에 이 좌파 남성들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법한 구실을 획득한다. 사실, 그들은 즐기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마치 동지들한테 환영받으며 “썅년”*이라 고래고래 소리질러도 아무도 제동을 걸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다루기 힘든 특정한 여성을 겨냥해서“때리거나”불태우고 싶어한다면 아마 “마녀”가 더 정확할지도?)


 


https://twitter.com/petercoffin/status/909608113224978433
만약 “TERF” 가 단순히 비방하고, 침묵시키고, 모욕을 주고, 차별하며, 폭력을 조장하는 걸 넘어서 목적이 분명하고, 정확
하며, 유용한 무언가를 전달하는 단어라면 이는 아마도 중립적이거나 해롭지 않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 단어 자체
가 정치적으로 부정직하고 사실을 와전하기 때문에,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만큼 그 의도가 비
방, 폄하, 위협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 단어는 위험하고 정말 혐오발언의 자격요건을 충족한다. 예전부터 여성들이 이게
“TERF”의 결과가 될 것이라며 지적해온 반면, 그들은 흔히 무시당했다. 우리에겐 이제 “TERF”라는 붓으로 여성을 먹칠하
는 게 실질적인 신체적 폭력을 불러온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있다. 당신이 우리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이제는 더 이
상 변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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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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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시위 공식카페측의 공지를 그대로 복사한 것으로 보다 자세한 사항은 BWAVE 공식카페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2016년 10월부터 임신중단 합법화 시위를 꾸준히 돕고있는 BWAVE 팀입니다.

6월 3일과 10일 일요일, 보신각 앞에서
제13, 14차 임신중단 합법화 촉구 시위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연달아 시위를 개최하는 이유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5월 24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이어,
향후 몇 달 안에 최종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드시 위헌 결정이 나오도록,
여성들의 목소리가 드높게 울려퍼져
헌법재판소에 미치기를 바랍니다.



​​일시 : 6월 3일, 10일 일요일 오후 3시~7시

장소 : 종각역 4번 출구 보신각 앞

드레스코드 : Black



( 피켓 자율지참 여부 관련해서는 추후 공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신상보호를 위해 마스크와 썬글라스, 모자 등 얼굴을 가릴 것들을 착용하고 와 주세요. 마실 물도 지참하여 주세요.

- 여성만 참여가능. 개개인의 목소리를 소중히 하고자 운동권 및 단체와 연합하지 않습니다.

- 친목 및 지나친 사담 금지입니다.



그리고!!

★★★수요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1wlSCzQ-A8aut47-nAVb9BDgeao-76Cm8cJDK6Q_tCTE/


부족함 없이 넉넉히 준비하기 위함이니
참가할 의향이 있으신 분들은 꼭 응답 부탁드립니다!

참여하시는 분들께 아래와 같은 굿즈를 나누어드립니다! 여성의 죽은 인권을 추모하는 의미의 검은 리본과, 낙태가 어려운 상황에서 해외여성들이 자가낙태 기구로 쓰던 옷걸이를 함께 매달았습니다.





스티커와 부채는 더욱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모배
1002 458 285628
우리은행 ㅇㅎㄹ



지난 시위 후기와 정산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정산 후에 지출한 내역은 다음 정산 때 반영하겠습니다)
http://cafe.daum.net/myboddymychoice/FguP/263





※ 일손이 항상 부족합니다.
시위 도우미 지원하고 싶으신 분들은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 카페'에 접속하셔서
시위도우미지원 게시판에 글을 작성한 후 비댓으로 텔레그램 아이디를 남겨주세요!
굿즈 제작(똥손도 가능. 시간과 열정만 있으면 됩니다), 디자인 능력자, sns 관리자, 현장 도우미 등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언제든 지원 부탁드립니다.




●서명링크●
https://goo.gl/VkhVMj

다음카페 http://cafe.daum.net/myboddymychoice
페이스북 @mybodymychoice2
트위터 @mybodymychoice9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U-mcrmv-O0r2VKqKDuEKfQ
(지난 시위 동영상이 올라왔습니다!)


타 커뮤니티 (여초한정) 에 자유롭게 스크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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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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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시위 공식카페측의 공지들을 그대로 복사한 것으로 보다 자세한 사항은 공식카페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시위 주최카페의 공식 명칭은 <불편한 용기>입니다.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
THE COURAGE TO BE UNCOMFORTABLE CHANGES THE WORLD.
MY LIFE IS NOT YOUR PORN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2차

일시 : 2018년 6월 9일 혜화역 2번 출구 앞 오후 3시
드레스코드 : 레드
주최 : 불편한 용기
http://cafe.daum.net/Hongdaenam






​​분노의 편지 퍼포먼스에 참여해주십시오!

●요약●
시위참여자들께서 경찰청장에게 보낼 규탄편지를 편지지에 각자 수기로 적어오신 뒤 시위장소에서 진행자의 구호에 맞춰 다같이 편지봉투를 흔듭니다. 써오신 편지는 시위끝나고 가는길에 우체통에 쏙!

●참여방법●
1. 시위자들은 경찰청창 이철성에게 보낼 규탄편지를 각자 써오시면 됩니다.
2. 쓸 내용이 생각안나시면 맨밑 예시를 참고하셔서 이를 틀로 본인의 분노를 담은 내용을 적어주십시오.
3. 시위자들께서 각자 자필로 써온 규탄편지를 시위장소로 가져오십시오
4. 진행자가 신호하면 다같이 편지봉투를 위로 들어 흔들며 구호합니다
5. 언론은 시위자들의 편지봉투 든 장면을 사진에 담을것입니다
6. 시위참여자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보이는 우체통에 각각 편지를 넣으시거나 주최측 모음박스에 넣어주시면 주최측에서 우체통에 투척할 것입니다

●기대하는 효과●
1. 손수 쓴 글씨의 진실된 호소력
2. 유례없던 단체편지의 큰 규모로 느껴지는 압박
3. 시위에서 단체로 보내니 한결 쉬운 참여
4. 시간적 영향력

하나의 서면에 서명하는 것보다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직접써보내는 것이 훨씬더 호소력있게 보일것이라 생각합니다. 직접 보내진 수많은 규탄편지는 이 자체로 기관장에게 실질적 압박을 느끼게 합니다. 편지는 혼자는 보내기 부담스럽고 번거로운 것이었지만 우리는 이 기회로 다같이 한다면 쉽게할 수 있을것입니다. 우리가 쓴 규탄편지들은 시위가 끝난후 며칠이 지나 경찰청장에게 보내져 시위의 효과시간을 늘릴것입니다. 더불어 언론사로서는 사진을찍은 만큼 탄원서의 행방을 쫓을것이고 언론으로하여금 관련기관의 책임을 한 번 더 묻게할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시1)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안녕하세요, 저는 00구 00동에 살고 있는 (실명) 또는 (한 여성)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들에 대한 처벌이 형평성에 어긋나도록 불평등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여성으로서...(자신의 경험담)
하여, 제가 여성으로서 또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안전하게 살고 또한 여성차별 없는 나라를 원합니다.


예시2)
얼마 전 국민청원에서 답변하신 영상 잘 보았습니다.
"성별에 따른 편파수사"는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아무리 뉴스를 보고, 기사를 봐도 편파수사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연 이게 진정으로 평등한가요?
세상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더 이상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에게는 전진만 있을 것입니다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예시3)
이철성 경찰청장님, 성차별적 수사 행위 인정하고 이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 방안 제시 바랍니다.

첫째, 성별에 따라 수사 속도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불법 촬영 범죄 범인 검거율이 96%라고 하셨습니다. 경찰에서 제시한 통계자료에서의 검거는 구속과 불구속 기소뿐만 아니라 불기소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검거만 잘 하신다고 저희가 안전을 느낀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또한 검찰의 기소율을 확인해보면 2010년 72.6%에서 2016년 31.5%로 절반 이상 감소했습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남성을 검거해봤자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불법 촬영물은 완전히 삭제되지 않아 결국 피해 여성은 자살까지 택하는 사회에서 성차별 수사 부인하지 마십시오.

둘째, H대 사건이 신속하게 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제한된 공간에 20여 명이 있어서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저희가 믿기에는 지금까지 용의자가 1명으로 특정되어 있었던 리벤지 포르노 조차도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적이 허다했습니다. H대 사건의 특성이 특수했던 것이 아니라, 그 피해자가 남성이었기 때문에 촬영물이 업로드 된 해외 서버에 협조까지 요청하신 게 아니라면, 그 동안 해외에 서버를 둔 소라넷은 왜 완전히 차단되거나 단속되지 않았는지요?

셋째, 몰래 카메라는 안경, 텀블러, 담배갑, 차 키, 생수병 등 평범하고 다양한 일상적인 물건에 숨겨져 판매되고 있습니다.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처벌 수위가 낮은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유포죄로 처벌하신다고요. 이렇듯 자신이 찍히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불법 촬영물은 얼굴보다는 피해자 구분이 어려운 다리, 엉덩이 등의 신체 부위를 촬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피해자를 어떻게 특정하나요? 사법당국의 한계를 변명으로 내세우지 마십시오. 법제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십시오.




* 보내실주소: 182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97 경찰청 이철성 경찰청장
* 반송주소는 자신의 주소를 써주시면 좋지만 익명을 원하신다면 불편한용기라고만 적어주십시오
* 우표는 각자 붙여오는 것을 우선으로 합니다.
* 편지에 지정된 형식은 없으나 우편으로 보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 욕설, 비속어 등의 비방은 자제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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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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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정체화하는 과정을 흔히들 <매트릭스>에 나오는 빨간약을 먹었다고 비유한다. 그 빨간약은 현실을 깨닫게 만드는 약이다. 그 현실은 유토피아가 아니며, 행복함과 동시에 고통, 그 외 여러 감정들을 마주하는 공간이다. 페미니즘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목적으로 페미니스트가 되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건 고통을 의도적으로 삭제하는 자기기만이다. 모두가 성공한 삶을 추구하게끔 만들기 위해 성공한 사람의 행복한 일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를 위해 힘들게 기울인 노력을 삭제하거나 미화하는 일과 똑같다.


기존의 사고체계를 뒤바꿔놓고 얼마나 뿌리깊은 억압이 존재하는지,얼마나 여성혐오가 만연한지 깨닫는 일을 '행복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왜 우리에게 '프로예민러', '프로불편러' 라는 딱지가 붙는데. 나의 욕망과 습관도 가부장제의 체계 하에 구성된 것은 아닌지 자기검열하는 일이 어떻게 쉬운 일일까. 그리고 공론장에 발담근 사람들은 다른 노선과 정치적인 담론 싸움을 지속해나가야 한다. 천성이 토론을 즐기는 사람일지라도, 타협 불가능한 쟁점들을 두고 신명나게 낙인을찍어가면서 싸우는 과정이 행복할 리 없다.


그렇다고 페미니스트들이 항상 불행하냐 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페미니즘을 하는 과정 역시, 1-2년의 단기간이 아니라 생각한다면 결국 우리 삶 가운데 한 부분이다. 우리 삶은 고통의 연속선으로 이루어져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꽃밭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그림에 머물러 있지도 않다. 소소한 행복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주변 사람들의 변화를 목격하며 느끼는 기쁨,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끼리 느끼는 동료의식, 그동안 불편하게 느꼈지만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드디어 말하게 된 해방감, 이런 것들이 곧 소소한 행복이다. 그 소소한 행복은, 앞서 말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계속 걸어가게끔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스트의 삶은 행복과 불행의 혼합물인가? 글쎄,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는 과정,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삶이 행복 또는 불행의 이분법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행복과 불행 외에 다양한 감정들 또한 교차하며, 시시각각 변한다. 예를 들어 실친 중 한 명이 내가 쓰는 필명을 알고, 나를 팔로우한다고 말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기쁨과 동시에 내가 그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할까? 하는 불안함이었다. (그 불안함은 이내 사라졌지만) 함께 열심히 싸우던 사람들이 자쳐서 페이스북을 떠나겠다고 말할 때 나는 아쉬움,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져 있으리란 위안을 받는다. 위 사례들은 단순히 행복/불행이라는 카테고리에 분류될 수 없다. 따라서, 페미니즘을 하면 행복하다, 혹은 불행하다고 단정짓는 건 바보같은 일이다. 물론 개개인의 삶에서 행복을 더 크게 느낄 수도 있고, 불행한 감정을 더 많이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로 단정짓는 일이 내가 경험하는 무수한 감정들 중 지극히 일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임을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페미니즘은 내 시각의 창이 된 인생의 한 부분이며, 그 창으로 들어오는 감정들은 고작 한두 가지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원 글은 17년 6월 2일경 필자의 이전 블로그에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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