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은 2016년 12월 9일 이전 블로그에 게시되었습니다.
미러링이라 말하는 것들 대다수는 논리학에서 말하는 '피장파장의 오류'의 일종이다. 그런 것쯤은 나도 알고 다른 페미니스트들도 다 안다. 그러나, 당신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바로 미러링은 논리적인 반박으로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화술로 사용되며, 특히 공정성을 논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법이라는 점이다.
좀더 쉽게 얘기해 볼까. A와 B가 똑같은 잘못을 했다. 정확히는 A가 먼저 잘못을 한 후, B가 잘못을 했다. A의 잘못에 대해 사람들은 무관심하거나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넘어갔다. B는 A의 잘못이 덮어지는 걸 보았고, 나중에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는데 B한테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리고 B는 이렇게 말한다.
"A도 잘못했는데 그냥 넘어갔잖아!!! 왜 나만 패!!"
B가 이와 같이 말한다고 해서 B의 잘못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히 독해해야 한다. B는 '자신의 잘못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A와의 공정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misogyny와 misandry 사이에서는 분명히 misogyny가 선행되었다. 따라서 미러링은 사람들의 '이중잣대'를 보여줌으로써 그 부조리함을 폭로하는 데 일조한다.
앞서 미러링이 공정성을 논하기 위한 화법임을 설명했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가? 바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이다.
흔히들 일베메갈 동급론을 주장한다. 일베의 언어도 혐오스러운데, 이를 미러링한 메갈리아의 언어도 혐오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김치녀, 된장녀, 김여사, 보슬아치 등으로 대표되는 여성혐오적인 표현에 대해 대중이 침묵하고 넘어갔음을 알고 있다, 적어도, 남성혐오적 표현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렇다면 여성혐오적 표현을 수용 또는 방관하던 이들은 남성혐오에 대해서도 동일한 반응을 보여야 '공정하다' , 하지만 실제로 남성혐오적인 표현은 훨씬 빠르게 이슈화되었으며 미러링이 나오고 나서야 '여혐 남혐 모두 나빠요'라는 발언이 뒤를 이었다.
비단 메갈리아 뿐이었나. 여성이 TV에서 한 아무말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나, 남성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키 180cm 이하는 루저'라 말한 이도경 씨는 일반인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남성들의 공격을 받아 사회적으로 매장하다시피 했고, 아직도 그녀의 근황을 조사하는지 자동검색어에 '이도경 2016년 근황' 이 잡힌다. 반면, 옹달샘 삼총사의 막말은 어떠했나? 비판과 비난이 있었으나 여전히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TV에 얼굴을 비춘다.
범죄의 처벌에 있어서도 공정성을 논할 수 있다. 가족살해 가해자의 특성과 양형요인에 대한 연구(2007,손지선, 이수정) 에 의하면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경우 평균적으로 더 오랜 기간 징역형을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
남편이 바람나서 아내 죽일때
평균 120개월
남편이 바람난 아내 죽일때
평균 79.5개월
아내가 바람나서 남편 죽일때
평균 225개월
아내가 바람난 남편 죽일 때
평균 162개월
물론 미러링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도덕적이지 않은 행위를 미러링하면 결국 도덕적이지 않은 행위가 생산되며, 미러링이라는 이유로 기존 도덕 또는 윤리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도덕적인 것으로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미러링은 만능키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를 지지하는 이유는, 과거 조곤조곤 설명하던 온건한 사람들조차 신상이 털리고 목소리가 무시당해 왔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며, 미러링은 신선한 충격요법으로 작용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이중잣대를 폭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미러링의 한계 이전에, 왜 굳이 미러링이라는 방법론을 택했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덧) 참고로, 미러링 표현에는 한남충,자적자,상폐남 등의 남성을 직접적으로 비하하는 용어만 해당되지 않는다. '남여'를 '여남'으로, '부모'를 '모부'로 표기하여 단어의 순서를 역전시키거나, '남'을 직업 앞에 붙이거나 xx남으로 대상화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 역시 여성의 대상화에 대한 미러링 표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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