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femidea.com/?p=852
이 글은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 문화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번창하는 시대적 흐름과 성매매, 퀴어이론을 연결시킨다. (정확히는 성매매에 훨씬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글이다. 퀴어이론에 대해서는 중간 정도에서 짧게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해 다뤘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퀴어 이론은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했다. 퀴어 이론은 젠더를 수행(performance)으로 보고 실현 가능한 젠더들이 여럿 있다고 보았으며, 사회적 성과 생물학적 성 사이의 불일치를 낭만화한다. 따라서 부치 레즈비언, 드래그 퀸, 남성적인 게이 탑, 그리고 성매매 여성을 모두 다른 젠더로 간주하고 ‘초월적인’ 것으로 본다. 따라서 젠더는 남성과 여성 간의 생물학적, 신체적 차이와 분리되고 남성의 패권과 여성의 억압은 모호해진다. 지배적이고 종속적인 성 역할과 행동에 도전하는 대신, 퀴어 이론은 궁극적으로 그것을 유지시키고 영속화한다.
이런 방식으로 성매매를 ‘초월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성매매를 낭만화하고 성매매의 현실, 즉 (내가 ‘평등하지 않은 세상에서의 선택’과 ‘성매매는 다른 노동과 다르다’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여성에게 실현 가능한 여러 개의 선택지가 없고 성매매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라는 현실을 보기 어렵게 한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이 성매매의 구조를 비판할 때, 퀴어 이론가들은 예를 들면 다국적 기업들이 방글라데시에 있는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신자유주의자들이 하는 대응을 번복하면서, 이를 성매매 여성의 ‘주체성’에 대한 공격으로 매도한다.
오늘날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는 거대한 성 산업은 남성들의 욕망에 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극적인 포르노물을 만들어내고, 포르노 배우와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그런 포르노를 실천하도록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인격이 말소된 존재로 철저히 상품화되고 등급이 매겨지며, 자신이 겪는 비인간적인 처우에 대해 말하지 못하도록 입막음당하고 견디도록 세뇌당한다. 이 현실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은 오래 전부터 문제제기해 왔으나, 소비하는 남자들과 포주, 자본가들에게 성적 보수주의, 성엄숙주의란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성엄숙주의라는 말은 웃기지도 않은 게, 엄숙주의는 흔히 "여자는 정조를 지켜야 해", "어떻게 섹스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지?" 따위의 말을 내뱉는 보수적인 사람들한테 어울리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도 포르노, 성매매를 싫어하지만 그건 성욕, 섹스 자체를 죄악으로 보기 때문이지, 여자를 착취해서 굴러가는 산업이라서 분노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과거에 페미니스트 대 포주+성매수남의 구도였다면, 지금은 이 전쟁의 구도가 남성들에게 더 유리하도록 변했다. 성적 자유주의자들이 성노동론에 페미니즘의 탈을 씌워놓은 것이다. 그러나 성노동론의 언어는 여성을 착취하는 포주와 성매수남의 논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이들은 성매매 여성이 착취당하고 있으며 구제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을 엄숙주의로 일축하고 '성노동자를 배제하는 급진주의 페미니스트(SWERF)'란 기괴한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 사람들은 성매매 여성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억압당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자들의 사례만 취사선택해 증언으로 나열하며, 성은 판매의 대상이기 때문에 성매수자와 성매매 여성의 관계를 구매자/판매자 정도로 본다. 즉, 여성이 억압당한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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