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직접 제작한 피켓을 들고서 혜화역 시위를 다녀왔다. 1만2천명이라는 많은 인원이 모인 시위였지만, 규모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나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시위가 일회성이 아니라 2,3차 시위로 이어질 것을 감안하여 비판 위주로 글을 써보려 한다.


수많은 인파가 모였음에도 시위는 온건함을 넘어 무해한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재기해"라는 말이 모욕죄가 아니라 고인 모독이라고 사용하지 말라는 권고가 내려왔다. 메갈리아-워마드를 거쳐 성립된 반격의 목소리는 모욕죄 요건에도 걸리지 않는데, 고작 6고인 모독9이라며 입막음당한 것이다. 그 PC함이 누구를 보호하고 지켰나. 아무것도 지키지 않았다. 시위의 본질을 왜곡하고 호도하니 쓰지 말라고? 언론은 어차피 알탕연대고 여성문제에 호의적인 건 기자들밖에 없다, 남기자가 아니라. 재기해도 쓰지 마, 뻐큐도 하지 마는 혜화역에 모인 "웜련"들의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일이었고, 자지카르텔이 허락하는 시위를 만들 뿐이다.


또한 끊임없이 "찍지마", "구속해"가 절반을 넘긴 것. "구속해"는 남경의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나았지만, "찍지 마" 는 피해자의 반격조차 되지 않는다. "찍지 마"는 여성을 피해자로 남성을 가해자로 전제하고, 여성의 피해만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15년 이전부터 학습해 왔듯이' 그건 한남들에게 통하는 언어가 아니다. 가해자들은 가해-피해 위치가 뒤집어질 때만, 자기가 조롱당하는 위치가 될 수 있을 때만 알아듣고서 발악한다. 그게 이번 시위의 발단이기도 하지 않았나.


그리고 앞에서 하는 퍼포먼스가 뒤쪽까지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상당히 유감이었다. 1) 메가폰을 써도 뒤쪽까지 구호가 전달되기까지는 한계가 있었는데, 이 점이 구호를 묻히게 하는 데 한몫 했다. 뒤에서 누군가 몰카충을 발견하고 찍지 말라고 소리치면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시위 구호보다 더 잘 들리니 관심은 분산되고 흐름이 계속 끊겼다. 그러나 몰카충을 처리하는 건 스텝과 경찰의 몫이고, 그래야만 한다. 2) 포돌이 캐릭터를 뿅망치로 때리고 발로 차는 퍼포먼스가 있었다는데 나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무해한 시위에서 그나마 직설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이었는데, 참여자들의 호응과 사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스크린이라도 설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적 시위가 아닌, 정적인 시위. 다 마무리할 때쯤에 와서야 인파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그마저도 혜화역 1번 출구까지 가는 게 아니라 시위 본부까지 걸어가는 데 그쳤다. 이 수많은 인파는 늦참한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나 겨우 움직였을 뿐, 지극히 정적이었다. 못해도 일반 행인들이 많이 출입하는 1,4번 출구까지는 움직이거나 제자리에서 파도타기 정도의 퍼포먼스로 세를 과시했어야 했다. 안전라인 바깥에서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눈에 시위대는 그 라인 안에 '갇힌' 존재로 보이지 않았을까.


다음 시위는 더 색채가 뚜렷하고 한남 눈치 안 보는 페미니즘 집회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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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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