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는 한껏 치장한 바리데기의 모습과 머리가 하얗게 센 노장 바리데기의 모습을 위-아래 컷으로 대조하여 보여준다. 위 컷에는 바리데기 뒤에 수많은 여성들이 서 있다. 치장한 바리데기는 여성의 대표로서 부각되어 있다. 이는 사회에서 대표되는 전형적 여성성을 상징한다. 반면 아래 컷의 바리데기는 '혼자' 서 있다. 편하게 담배를 한대 피우는 노인의 모습으로. 그 모습은 사회적으로 주입된 '여성성'과는 거리가 멀다.
한편, 위 컷은 전쟁 전 동료들과 함께했던 바리데기의 모습이라면 아래는 동료를 잃은 노장(老將)의 모습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그 모습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보다 당당해 보인다. 고독의 시간을 버티며 자신을 지켜온 대장의 모습이 보인다. 고독의 시간을 보내며 홀로서기를 했다는 건 전후 장면을 통해 추론할 수 있다. 전쟁 가운데 죽는 사람도 있고, '진매'처럼 흔들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동료들을 잃고 변절하는 사람이 생길 때 불리한 전쟁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선 당연히 자신만의 주관을 세우고 버텨야만 한다.
전쟁을 계기로 변한 그의 모습으로부터 읽는다. 첫째, 불편한 치장은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 둘째, 그가 동료를 잃으며 홀로 견디는 시간을 겪었다는 것. 셋째, 치장을 버리고, 동료와 함께 서 있지 않은 모습이건만 오히려 훨씬 편안하고 당당해졌다는 것
2.
용감한 바리데기, 효녀 바리데기, 유리천장을 부순 바리데기라는 설명을 읽어보자. 용감하다, 유리천장을 부쉈다는 말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어울린다. 그러나 효녀라는 수식어는 설화의 속성이지만 이 작품에선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다소 이질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바리데기 설화를 살펴보면, 죽음을 무릅쓰고 저승으로 갔으며, 여성의 몸으로 신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 때문에 크게 이상하지 않다. 작가는 '효녀'라는 수식어를 통해 설화의 이미지를 계승하며 '유리천장을 부쉈다'라는 말에서 바리데기라는 인물을 재해석하고 있다.
3.
이 장면도 눈여겨봐야 한다. 투항해서 남자로 태어나고 싶은 진매. 남성으로 살게 된다는 건 다른 억압당하는 여성을 두고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며 가부장적 권력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이다. 진매는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여성, 즉 TIF(trans-identified Female)으로 읽을 수도 있고, 빨간약을 먹었으나 토한 흉자로 읽을 수도 있다. 그는 여성의 위치를 거부하며, 남성의 권력을 원하지만 사회를 바꿀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개인주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진매에게 신라는 말한다. 그거 다 개소리라고. 아직도 남자들 말을 믿냐고. 그래. 실제로 가부장제 권력에 순응한 흉자가 한남과 동등한 권력을 누리나? TIF가 남성권력을 누릴 수 있나? 아니,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개념녀가 누리는 권력은 철저히 가부장제 질서에, 남성들에게 의존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것. TIF는 신체적 조건 때문에 남성사회에 편입되어도 그 끝자락을 차지하게 된다. 특히 한남게이들은 그를 남성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나는 종종 빨간약을 먹고 나서 너무 괴로워 그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괴롭다. 공포영화 한 편을 보면서도 그 안에 있는 여적여 프레임을 발견하고, 노래 가사는 죄다 남자한테 사랑받아야만 하는 의존적인 존재로 여성을 묘사한다. 시위에 나가선 몰카를 찍혔고 트라우마가 생겼다. 실친들을 설득하다가 걔네 머릿속에 박힌 너무나 견고한 여성혐오를 발견할 때 얼마나 답답한지. 내 실명을 걸고 메밍아웃을 했을 때 얼마나 많은 한남들이 친구를 끊었던지. 종종 나를 어떻게 씹고 있을지, 머리로 상상을 한다. 왜 나만 이렇게 불편해야 하냐고, 머리가 있으면 생각들 좀 하라고 혼잣말로 욕을 골백번도 더 했었다.
그래, 정확히 진매처럼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었을까.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신라가 말을 걸어왔다. 너는 이미 얼마나 한남들이 탐욕스럽고 서열에 목매다는지 충분히 알지 않느냐고. 한남들의 사랑인 개념녀 권력이 허상이라는 거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고. 그렇게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그 전으로는 결코 돌아가지 않아. 돌아갈 수 없어.
이번 화만으로는 진매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저 장면 자체는 빨간약을 먹고 괴로움에 돌아가고 싶다고 느꼈던 사람들의 정곡을 찌른다. 아직도 남자를 믿느냐라는 말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다. 그건 우리가 ^남페미^에게 통수를 맞았던 경험이기도 하고, 우리보다 한 세기를 앞서 살았던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이용당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해일조개론 역시 그 안에 포함되어 있고. 또한 기득권인 남성에겐 차별이 당연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지랄하지 않는 한 결코 파이를 나누지 않으리라는 이해이기도 하다.
덧) 보통 중간 리뷰 잘 안쓰는데, 감상 포인트가 꽤나 많은 회차여서 길게 써봄. 다음 화에서 작가가 바리데기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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