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네이트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각주:1] 사회 초년생인데 정식으로 입사하고 나서 몰카 피해를 입고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호소글이었다.  그 피해를 알리자 회사측에서 돌아온 반응은 오히려 감봉과 풍기문란이라는 징계였다.네이트판에 올라간 글은 확산되고, 회사 측에서는 인사팀장을 해고했다. (참고로 몰카범은 이미 올해 초에 구속되었다.) 그러나 교육담당자의 경우에는  그러지 않았다.[각주:2]  

언론은 늘 그랬지만, 피해자의 편을 들지 않았다. 얼핏 단순 사실만 전달하고자 뽑은 듯한 "한샘 여직원 피해 주장 논란"이라는 헤드라인. 그러나 이는 철저히 피해자를 소외시키는 표현이다. 피해자의 성별은 그대로 드러냈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처럼 "논란"을 붙였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트위터 공식계정의 경우엔 아예 피해자에게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사진을 올렸다. 글과 함께 첨부된 사진을 보면 한 장은 핸드폰을 든 손, 한 장은 탈의중인 여성의 뒷모습. 그렇게 관음하는 시선을 연출해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데도, 회사 측에서 이에 대처하는 태도는 지극히 가관이었다.  그 와중에 매출이 걱정되었는지 각종 언론을 통해 세일하겠다는 기사를 내놓았다.  더욱이 웃기는 건, 이런 사건이 일어나고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회사가 무려 여성친화적 기업으로 선정되었다는 점이다. 기술,생산직과 임원에 여성은 몇 명이었나. [각주:3]그리고 그 여성친화적 기업에서는 왜 이미 전과가 있던 몰카범을 직원으로 쓰고 있었나?[각주:4]



가해자 남성으로 지목된 교육담당자는 피해자와의 친밀한 관계였음을 주장했고 카톡 내용을 올렸다. [각주:5]피해자가 상처 부위 등을 찍어 증거로 제출한 마당에 반박할 증거자료로 제시하는 게 "피해자가 내게 호감이 있는 줄 알았다"라니. 뻔한 가해자들의 변명이었다. 아주 사소한 친절조차도 나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라 머리로 망상하고 일단 갖다붙이기.


그러나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돌을 던졌다. 특히 각종 남초커뮤니티와 기사 댓글에서 남성들은 돌을 던지며 피해자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고소취하한 거 보니 꽃뱀이네"
"어떻게 다음날 저렇게 태연하게 말해"
"카톡 연애소설도 아니고" 

기껏해야 "양쪽 다 입장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양비론적인 입장이 있을 뿐, 아예 관심없는 "그래서 피해자 예쁘냐"는 반응마저도 보였다.


 고소취하하고 무혐의를 판정받은 그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과연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관련 링크: 네이트판에 올라온 글) 법무팀에서도 피해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식으로 2차 가해를 했고, 지속적으로 고소를 취하하라고 말하며 '살해협박'까지 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감당할 수 있었을까?

다음날 어떻게 저리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느냐는 말에 답해 보겠다.  강간, 성폭행 피해자의 경우에는 그 당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며, 이는 흔히 피해자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전형적인 2차가해 발언이다. (어떤 말들이 2차가해에 해당하는지는 이 기사를 참조하자.) 우리는 아무도 성폭행을 당했을 때 실질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학교 성교육 시간 때 배우는 것은 고작 여성이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뿐이었으니까. 또한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이후에 그 일을 부정하려고 하는 것은 흔한 방어기제 중 하나이다. 더욱이 취업이 쉬운 것도 아닌데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과 굳이 마찰을 일으키고 싶었을까?

또한, 가해자와 얼마나 친밀한지와 가해여부는 관련이 없다. 연인 사이, 부부 사이에도 강간과 폭행은 발생한다. 오히려 모르는 남보다 아는 사람에게 아이가 유괴당하는 일이 많이 발생하는 것처럼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에 그런 폭력은 더 일어나기 쉽고 입막음당하기도 쉽다.


여기까지, 현재진행형인 한샘 사건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나는 이 사건에서 여혐민국이 피해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지우고 성폭행을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회사, 중립적인 양 보도하거나 피해자를 부각시키는 이미지를 사용하는 언론, 성범죄로 파면된 경찰의 복직 비율과 낮은 성범죄 형량만으로도 알 수 있는 남성 중심적 사법체계, 그리고 이 사건을 지켜보고 피해자의 진정성만을 비난하는 남성들. 이 모든 것들은 가부장제에서 깊게 뿌리내린 강간 문화(rape culture)와 연결되며, 가해자에 이입하는 남성들 간의 결속은 안드로소셜[각주:6], 즉 남성카르텔 더 쉽게 말하자면 남근연대이다. 

남성카르텔 사회에서 남성들은 피해여성에 공감하지 않으며, 공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공감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기 때문에 공감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행위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어떤 발언이 2차 가해가 되는 줄 모른다. 당사자성을 갖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공감할 때는 오로지 그들의 딸/여친/어머니/아내를 언급할 때뿐인데, 그마저도 자신과 친밀한 관계 혹은 자신의 소유이기 때문일 뿐, 여성 일반으로 확장하여 생각하지 않는다.


한샘 사건은 사실 여성들에게는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직장 내에서 여성들은 흔히 권력관계에 의해 성희롱, 성추행을 경험하고, 화장실이나 탈의실 등 공간에 몰카가 있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힘겹게 피해자가 성범죄를 고발하면 집단에서는 자신들의 이미지를 위해 피해자를 입막음하고 퇴출한다. 회사가 되었든, 교회가 되었든, 병원이 되었든, 군대가 되었든 위계가 존재하는 그 어떤 곳에서나 말이다.  어렵게 호소한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며 비난하는 일 역시 항상 일어나 왔다.

그렇게 늘상 경험하는 일이기에, 지겹도록 경험하는 일이기에 우리는 분노한다. 동시에 여전히 남성 카르텔과 강간문화, 전체주의가 굳건하다는 걸 느끼면서 아파한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답답해한다. 이 빌어먹을 여혐민국은 언제야 변하지. 언제쯤 여성이 스스로의 피해를 눈치보지 않고 말할 수 있을까, 언제쯤 피해자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사라질까,  다 떠나서 근본적으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세상은 대체 언제쯤 올까. 내가 죽기 전에는 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함으로, 분노로 우리는 일어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믿으며 해결책을 강구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이 사건에 대해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일. (청원 링크) 나아가 성범죄 자체의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일. (청원 링) 그리고 1,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No means no"와 어떤 발언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지를 의무교육과정에서 가르치는 일.

   우리는 싸울 것이다. 3일에 한 명 꼴로 여성이 죽는 사회에서, 강간을 강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에서, 피해자의 목소리가 지워지고 도리어 비난받는 세상에서 그 여성혐오에 저항할 것이다. 생존 자체가 정치적인 여혐민국에서 여성혐오를  직면하며 살아가는 헬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다. 

  



 


  1. 현재 해당 글은 삭제되었으나, 이를 그대로 복원하고 내부 문건을 추가한 글이 재차 네이트판에 올라왔다. 링크는 http://m.pann.nate.com/talk/339307677 [본문으로]
  2. http://www.kookje.co.kr/mobile/view.asp?gbn=v&code=0300&key=20171104.99099001697#cb [본문으로]
  3. https://notice.gov3.org/notice.php?id=20161114002228&page=98 [본문으로]
  4. http://mnews.joins.com/article/22084222#home [본문으로]
  5. 현 시각 네이트판에 올라갔던 글은 삭제된 상태이므로 다른 사이트에 복사된 글을 첨부한다. http://www.inven.co.kr/mobile/board/powerbbs.php?come_idx=2097&my=chu&l=840759 [본문으로]
  6. 본래 남성 간 유대를 호모소셜이라 하나, 필자는 호모소셜 대신 안드로소셜을 사용하였다. 그 이유는 일전에 쓴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도록 하자.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femi-nyanng&logNo=22100781796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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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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