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시스젠더란 표현 자체를 거부합니다. '시스'라는 말은 정확히 정신적 성별과 신체적 성별이 같은 경우를 의미합니다. 실질적으로 '시스젠더'라는 말은 자신을 트랜스젠더 혹은 젠더퀴어로 정체화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붙여집니다. 그렇다면 정신적 성별이란 무엇인가요? 왜 스스로를 여성으로 느낍니까?
자신이 원해서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없겠지요. 차별이 존재하는 줄 알았더라면 아무도 여성으로 태어나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바는 여성 취급이 아니라, '인간' 취급입니다. 그런데 이 시스젠더라는 표현은 우리가 스스로를 여성으로 느낀다고 말합니다. 대체 그 여성은 누구입니까? 주민등록번호 2로 시작하는 사람들이고, 취업과 승진에서 차별을 받고요, 여성이기 때문에 화장실 몰카를 두려워하고,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핑크색을 좋아하고 리본과 레이스를 좋아하고 꾸미는 걸 당연시하게끔 요구되는 사회의 2등 시민입니다.
누가 2등 시민을 하고 싶습니까? 1등 시민이 되기를 원하지요. 그러나 사회에서 나를 그렇게 취급하기 때문에, 그 억압이 존재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인식합니다. 내가 여성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당하는 각종 차별, 강요되는 여성성은 다른 젠더로 나를 표현한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시스젠더란 표현은 너무 간단히 이런 맥락을 지워버립니다. 그 사람들은 과연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불만이 없을까요? 아니란 겁니다. 우리는 좆같은 성역할에 거부감을 느끼는 여성들이고, 우리 중 자신의 몸에 혐오감을 느끼는 여성들은 의외로 많아요. 매달 생리할 때마다 불쾌함과 생리통 때문에 포궁을 들어내고 싶은 기분을 느끼고, 내 가슴을 쳐다보는 한남들의 시선폭력이 싫어서 유방이 없어졌으면 하고 바라는(혹은 바랐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요, 나는 성기를 기준으로 여성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가 2로 시작하고 여성으로 보이기 때문에 여성혐오범죄에 노출되고 차별을 당합니다. 나는 그래서 이 여성이란 이름을 혐오합니다. 그 이름은 차별, 억압, 2등 시민, 인형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 또한 나에게 강요된 '여자는 어쩌고저쩌고~' 와 같은 성 역할을 혐오합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트랜스젠더/젠더퀴어라 부르지 않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정체화하는 것으로 내가 겪어왔던 차별을 없앨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내 신체를 굳이 부정할 게 아니라 생각을 전환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요. 가슴이 있다는 걸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시선폭력하는 한남들한테 따지면 되고, 생리가 너무나 좆같지만 그건 생리에 대한 연구가 미비했기 때문에 해결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내가 억압적인 신체를 절단한다면, 개인적으로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결국 시선폭력과 같은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이 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여성성/남성성 규범, 고착화된 성역할은 모두를 억압해요. 그러나, 그 억압에 대해서 급진주의자들은 성역할을 타파하고 젠더 분류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입장이며, 트랜스젠더/퀴어들은 새로운 젠더의 명칭을 쓰고 의료서비스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결국 트랜스젠더/퀴어들과 급진주의페미는 동일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한 엇갈린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저는 스스로를 '시스젠더'라 부르지 않을 것이며, 또한 시스젠더 여성이 강자, 트랜스젠더/퀴어는 약자라는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원문은 2017년 8월 2일 페이스북에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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