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16.3월 경 다음카페 레디즘(http://cafe.daum.net/ladism/dK4L/983)에 최초로 작성된 것이다. 현재는 해당 글을 삭제한 상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서 쓴 글이다.
페미니즘에 관해서 이전에 장문의 글은 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글이 어떻게 받여들여질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이 글을 읽는 어느 한 사람이라도 목소리를 내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실어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부족한 필력이건만 써내려가 본다.
일단 현재 머한민국의 여성인권은 아주 시궁창이라는 현실은 갓치들도 충분히 잘 알고 있을 터이다. 모부님 세대 때부터 결혼후 시월드가 펼쳐지며 3D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는 것부터 시작해 한창 여아낙태의 시기를 잘 넘기고 태어났더니 현재 우리 세대 때 유리천장과 취업에서 성별 자체가 스펙인 것이며 데이트 폭력, 각종 성범죄는 흔하디 흔한 뉴스거리가 되었고, 성매매 안 하는 놈을 보기 힘들다. 더구나 다음 세대라고 하는 청소년들도 야동으로 성지식을 배우며 상당한 여혐 사상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3대illbe(레드/블루/그린) 의 댓망진창 글에서는 메갈리아의 등장 이후 만물메갈설을 내세워 투명메갈을 패고 있고....
...그 외에도 구구절절 많지만, 요약하자면 여성으로 살기 참 힘들고, 더욱이 목소리를 내는 것도 '두려운' 현실이다. 서양은 그나마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서양에서도 여전히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칭하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라는 해시태그 열풍이 불었다고 해도, 여전히 명자와 씹치들은 존재하며, SNS 상으로 페미니스트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일들이 만연하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페미니즘의 역사가 짧고 가부장적인 인식이 강하게 박힌 우리나라는...? 길게 말해 무엇하겠나. 갈 길이 한참 멀었다. 그러면 이런 참 뭐같은 현실에서 왜 우리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1. (가장 이상적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여성혐오가 없어지는 것이며 성 평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 볼 때 아주 이상적인 이야기겠지. 아마 나도 내가 죽을 때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히 변화는 있었다. 굳이 1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서프러제트 운동까지 가지 않아도, [메갈리아]가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 알지 않는가. 여성 혐오의 경험들을, 개인의 소서사를, 그 동안 우리가 입을 다물고 참고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의 담론으로 터뜨리고 이슈화했다. 기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던 여성혐오의 코드들을 각종 광고와 미디어에서 찾아내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페미니즘에 관한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 빌리거나, 서점에서 사기 시작했다. 이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메갈리아 이전에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들이 활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메갈리아> 이전에 '여성혐오', '젠더 권력' 등이 주로 여성학자들 위주로 공유되는 개념이었다면, <메갈리아> 이후 '여성 혐오', '젠더 권력', '타자화' 등의 개념들이 일반인들에게도 전파되었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지식을 가진 대상이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2. 현실적으로,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여성혐오는 현재 우리 사회에 공기처럼 만연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지겹도록 기사와 각종 여혐발언들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지겨워. 그만 봤으면 좋겠어> 혹은 <결국 남혐하자는 거잖아> 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 현실을 직시하는 것을 그만두고 순응하겠다는 의미이다. 당연히 지겹다. 우리는 지겹도록 여성 혐오를 마주할 것이며, 여성을 혐오하는 주체- 그리고 그 주체가 대체로 남성이므로- 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그만큼 만연해 있었고 여성들도 이것이 여혐인지 아닌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있다. (이를테면 화장하는 것에 대해서 이것이 개인의 취향인지, 사회적 억압에 의한 산물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겹다고, 결국 남성혐오 조장 아니냐고 문제를 밀어두는 것은 공기같이 퍼진 여혐 속에서 젠더 감수성을 잃어버리는 일이며, 노출된 혐오를 인식하지 못하고 다시 코르셋을 껴입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3. 이것은 '나'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성 전체의 인권 신장을 하기 위해서! 라는 거창한 말은 왠지 위선적이고 뭔가 스스로 부담감을 가질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말을 살짝 바꾸어 보자. 그 여성 집단 안에는 '내가' 포함된다. 일상에서 당신이 여성혐오를 경험했듯이, 여성 인권이 신장된다는 것은 결국 모호한 특정 집단에게 이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혜택이 돌아오는 것이다. 그 혜택은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물질적 혜택이 아닐 수도 있다. (ex: 직장에서 성희롱을 더 이상 당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인권 신장으로 얻은 '혜택'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누린다 정도?) 하지만 여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차별받았던 점이 줄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어떤 차별에 대해 '불편한 목소리를 더 이상 내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참고] '나'는 여성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회적 약자 집단에 들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면 그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페미니즘을 하면 된다. (실제로, 레즈비언 페미니즘과 흑인 페미니즘이라는 갈래가 존재한다.)
'페미니즘을 말하다 > [자필]올빼미의 기억(이전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성혐오는 남성혐오와 결코 같을 수 없다- 그 양상과 원인을 중심으로 (0) | 2017.11.01 |
---|---|
여성에게 '착하다'라는 표현은 어떨 때 사용되는가 (0) | 2017.10.19 |
여성혐오 글에 달리는 소모적인 댓글의 유형/대처법 (0) | 2017.10.19 |
'예민한 사람들', '프로불편러'들을 위한 이야기 (0) | 2017.10.13 |
남성 페미니스트들한테 고맙다고 말하지 맙시다. (0) | 2017.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