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두기: 코르셋이란?
여성을 억압하는 모든 사회적 규범을 뜻합니다. 보통은 외모에 한정해 쓰는 경우가 가장 많지만 실제로는 애국, 효도, 종교에도 코르셋을 붙여서 사용합니다. 좁게 외모에만 한정할 때는 꾸밈노동으로, 보다 넓은 의미에서 사용될 때는 프레임frame으로 치환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특별히 외모와 관련된 의미로 한정하여 다루겠습니다.
1. 꾸밈욕구 자체가 나쁜 건가요?
[기울어진 운동장의 은유]
A. 역코르셋은 역차별과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성차별이 디폴트인 세상에서 남성도 역차별당한다고 주장하는 게 말이 안 되듯이, 코르셋이 디폴트가 된 사회에서 이를 거부하자는 게 다른 억압이 될 수는 없습니다. 탈코르셋을 지향하는 여성들은 코르셋을 입는 여성들의 삶 하나하나를 검열하지 않습니다. 앞서 질문에서도 답했지만 우리는 코르셋을 입는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페미대법관 행세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코르셋을 입지 않는 여성의 경우에는 분명히 개인의 삶 가운데서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역코르셋 혹은 검열이라고까지 주장하는 데는,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심리적 기저에 깔려 있지 않은가요?
4. 코르셋을 입는 사람은 페미니스트가 아닌가요?
허수아비 패기는 그만합시다. 우리는 코르셋 자체는 페미니즘 실천이 될 수 없다고 말했지, 코르셋을 입는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한 적 없습니다. 페미니스트 개인과 페미니즘 실천은 명백히 다르고요. 페미니스트도 여성혐오를 할 수 있다는 말은 무엇을 시사할까요. 우리 페미니스트 개인이 하는 모든 행동이 페미니즘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페미니스트 개개인은 가부장제로부터 비롯된 사고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여성억압적인 규범을 실천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코르셋을 입는게 여성억압에 순응하는 거라고 하니, 자신의 신념(페미니스트)와 행동(코르셋을 입음)이 불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 말을 하신 거겠죠? 축하합니다, 인지부조화 단계까지 잘 오셨습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 신념과 행동을 일치시키도록 합시다.
5. 결과적으로 코르셋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는 뜻 아닌가요? 무슨 자격으로 코르셋을 벗으라고 하는지?
A. 맞아요. 사실 아직 내가 벗지 못한 코르셋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코르셋을 벗을 수 없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했을 때, 누구나 살면서 거짓말을 한 번쯤 하고, 따라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없으니 아무도 도덕을 가르칠 수 없다는 말도 성립하거든요. 그러나 우리는 왜 도덕을 가르치냐고 묻지는 않아요. 평소 행실이 심각하게 부도덕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굳이 교사의 자질 운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덕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규범이기 때문입니다.
코르셋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코르셋을 다 벗지 못했습니다. 알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벗지 못하는 코르셋이 있고, 몰라서 그냥 받아들이고 있는 코르셋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건 페미니스트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목표는 여성해방입니다. 가부장제 하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여성에게만 주어지던 역할과 관습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당신은 아마도 변화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 질문을 했겠지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습관을 바꾸는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가 내면화한 취향과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코르셋이 본질적으로 여성억압적이며,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이해한다면 이게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점에 동의하시겠지요. 처음부터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실천해 나가는 게 어떨까요?
6. 자기만족으로 꾸밈노동을 할 수도 있잖아요.
7. 코르셋을 저항적 의미로 전복할 수 있지 않나요?
7-1. 남자들이 싫어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꾸미는 경우
전복한다는 말을 들어보면, 전복의 근거로 남자들이 싫어하고 피한다는 점을 항상 내세운다. 이를테면 쎈 화장은 남자들이 싫어하므로 전복이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의 한계는 여전히 남성을 평가의 주체로, 여성을 평가의 객체로 둔다는 점입니다. '남자가 싫어하니까' 혹은 '사회적 시선이 안 좋으니까'라는 말은 여전히 남성 혹은 가부장적인 사회의 시선에 신경쓴다는 말 아닌가요? 기존의 꾸밈노동에서 여성은 평가의 객체이며 남성은(그리고 때로는 다른 여성들도) 평가의 주체가 된다. 기존의 권력관계를 뒤집지 못하면서 코르셋을 전복했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정말로 전복을 하고 싶거든, 여성이 남성의 시선을 신경쓰는 게 아니라 남성이 여성의 눈치를 보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그동안 여성은 얼굴형, 눈썹, 눈매, 쌍꺼풀 여부, 콧대, 치열, 입술 두께, 턱 모양, 피부, 가슴의 모양, 손/발톱, 뱃살, 허리굵기, 다리굵기, 체모, 엉덩이, 심지어 성기 모양까지 나노단위로 쪼개져 품평을 당해 왔습니다. 그 기준은 곧 여성들을 옭아매는 코르셋이 되었고요. 따라서 코르셋을 전복한다는 건, 남성이 평가의 객체가 되고 여성이 평가의 주체가 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성은 특정한 미적 기준을 만들어 자르셋을 씌우고, 남성은 그 자르셋을 써야 한다고요.
7-2. 특정한 연령대의 여성은 꾸밈노동을 하지 못하게 억압당합니다. 학생이거나 나이가 중년 이상인 경우요.
A. 좋은 지적입니다. 맞아요. 특정 연령대의 여성은 꾸미면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거나(학생) 주책이라는(중년)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동일하게 코르셋은 여성억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화장품은 연령과 상관없이 피부에 유해합니다. 연령과 상관없이 성형은 항상 부작용의 위험이 있고 돈을 들여 자신의 뼈와 살을 깎아내는 일입니다. 치마를 입으면 바지를 입을 때보다 분명히 '더' 행동에 신경쓰게 되고요. 나이가 어리거나 혹은 많으면 하이힐과 브래지어가 불편하지 않게 되나요?
만약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미 몸이 거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매일같이 하이힐을 신고 출근하면 불편한 감각은 점점 무뎌지겠지만, 그러다 어느 날 단화를 신으면 감각이 다르다는 걸 느끼잖아요. 한동안 단화를 신다가 다시 힐을 신으면 발을 꼭 조이는 그 느낌이 낯설게 와닿잖아요. 그런 겁니다. 그 불편함 자체가 이미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규범이며, 이미 강요당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걸 생각해 주세요. 예쁘게 꾸며진 상품으로, 인형으로 취급당하는 여성들을 생각해 주세요. 꾸밈노동은 어떠한 권력이 아닙니다.
8. 현실적으로 코르셋을 벗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A. 알고 있습니다. 뷰티, 패션, 연예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본인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니까요. 그러나 동시에 이 산업은 분명히 사회적 미의 기준을 재생산하고 다른 여성들에게 이를 권장합니다. 기획사에선 연예인들에게 특정한 옷을 입히고 성형을 요구하며 '대중적으로 잘 팔릴 법한' 상품으로 만들고, 연예인 역시 다이어트 비법이나 화장법 등을 공유하며 사람들이 잘 소비할 법한 외모로 성형함으로써 여성들이 이를 모방하도록 합니다. 화장품 회사에서는 광고비를 지불하고 연예인에게 특정 상품을 광고하도록 하고, 여성들을 후려쳐 가며 '자존감을 높이고 완벽해지기 위해' 자기 회사의 제품을 쓰라고 합니다. 성형 산업도 마찬가지고요. 패션몰에서는 대개 날씬하고 예쁜 모델을 내세워 옷을 입히고 다른 여성들이 이 옷을 입으면 모델처럼 섹시한/청순한/귀여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것처럼 광고합니다. 따라서 이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코르셋을 강요받기도 하지만 다른 여성들의 코르셋을 조이는 일에 동참하는 셈이지요.
그 분들께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과감하게 코르셋을 조장하는 이 일을 버리고 다른 직종으로 갈아타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생계를 위해 타협하되 내부자이기 때문에 참여할 수 있는 선에서 연대하는 것입니다. 그 일에 종사하면서 여성이 어떻게 상품으로 다뤄지고 착취당하는지 익명으로 고발하고 공론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SNS상에선 페미니스트 계정과 업무용 계정을 분리하여 적어도 페미판 안에서는 코르셋을 조장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 아닌 남성만을 대상으로 자르셋을 씌우는 일도 고민해 볼 수 있겠습니다. 세번째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이 페미니즘 실천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래디컬 페미니스트인 제 입장에서는 첫번째를 가장 바람직하게 생각하지만, 이는 상당한 결단을 필요로 하며 우리가 생계마저 책임질 수 없으므로 두번째 선까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앞에서 누누이 여성억압적이라고 말했잖아요. 여성인 내가 좋아서 하면 다 페미니즘 실천입니까? 내가 주체적으로 하면 다 페미니즘이에요? 그건 아니잖아요. 자신의 행동을 페미니즘에 끼워맞추지만 마시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선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답을 찾으시길.
9. 화장품 회사나 성형외과 앞에서 시위나 하지, 개인을 왜 공격하는가?
A. 첫째로, 그렇다면 역으로 래디컬 페미니스트에 대한 비판 역시 성립할 수 없습니다. 본인은 비판받아선 안 되지만, 우리는 비판받아도 되는 존재입니까? 또한 개인의 취향 혹은 습관을 비판하는 것이 개인의 인격을 공격하는 건 아닙니다. 애인, 덕질하는 연예인이나 캐릭터,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난하면 당신을 공격하는 게 되나요? 취향이나 습관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마세요. 코르셋이 여성을 억압한다고 말했지 당신이 그 자체로 여성을 억압한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단, 다른 여성에게 6너는 여자가 되어갖구 왜 안 꾸미니9 6성형 좀 해라9라는 식으로 코르셋 씌우면 여성혐오 맞습니다)
또한 뷰티-성형-연예 산업은 서로 맞물려 있는 거대자본이며 이들이 합법적으로 코르셋을 장려하는 걸 우리 페미니스트들이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항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개인 소비자로서 기업을 상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체로 불매하는 것입니다. 소비하지 않고, 이러한 산업이 결과적으로 여성혐오와 관련되어 있다고 주지시키는 것입니다. 수요를 줄이면 공급은 알아서 줄게 되어 있습니다.
10. 소수의 사람들이 실천한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는다.
A. 페미니스트 왜 하냐고 묻고 싶은데요. 아니, 이건 비단 페미니즘뿐 아니라 모든 사회운동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나 혼자 해서 뭐가 바뀌냐'는 사고방식으로는 어떤 운동도 할 수 없어요. 나'만' 하면 개인적 실천이지만, 여럿이 하면 운동이 됩니다. 더구나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가 발달한 시점이므로 개인이 온라인에서 한 말은 충분히 파급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페미니즘의 부흥은 메갈리아란 온라인 커뮤니티로부터 시작되었고 거기에서 나온 수많은 띵문이 각종 커뮤니티와 SNS로 퍼져나갔습니다. 메갈리아 이전에 개념녀였던 많은 여성들이 지금은 여성혐오에 대항할 언어를 얻었습니다. 트위터에서 시작된 #XX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또 얼마나 많은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했는지. 탈코르셋 실천이 왜 파급력이 적을 것을 두려워합니까? '나 혼자 한다고 뭐가 바뀌겠어'가 아니라, '나부터 하면 됩니다'
11. 왜 코르셋 전시를 반대하나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코르셋을 SNS상에 올리는 것을 반대합니다.
1. 신뢰의 문제
학생들한테 욕하지 말라 가르치면서 혼낼 때 쌍욕하는 선생님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금연을 권장하면서 흡연하는 사람을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꾸밈노동이 여성에게 강요된 것이라 주장하면서, 취업하려고 성형하거나 화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원하면서, 업업한 사진을 남들 다 보는 공간에 올리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게 코르셋 전시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꾸밈노동이 억압이라고 말하고 싶으면,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세요. '어쩔 수 없이' 사회생활을 위해 한다고 해도, 꾸밈노동을 정말로 억압이라 느끼고 때려치고 싶었으면 보란듯이 전시할 수는 없어요. 오히려 '내가 현실과 타협했구나...' 하면서 속으로 어금니를 깨물고 말지.
2. 관찰,모방학습 효과
모든 랟펨들이 그렇진 않습니다만, 빨간약 한번 먹었다고 안심해선 안 되듯이 코르셋을 버려도 종종 돌아가고픈 충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충동 대신 숨막힌다고 느끼기도 하고요. 이미 페미판 밖은 코르셋을 장려하는 풍조가 너무 만연하고,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아?' 하면서 조금씩 타협하다 보면 결국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코르셋을 아예 전시하지 않는 공간을 원합니다.
또한 페미니스트 계정으로 새로운 페미들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들은 당신의 계정을 관찰함으로써 꾸밈노동은 마음대로 해도 괜찮은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 화장을 하는 페미들이 늘어나야 꾸밈노동이 강제되는 세상을 바꿀까요, 아니면 안 하는 페미들이 늘어나야 세상을 바꿀까요? 기존에 페미를 모르는 사람들도 하고 있던 걸 계속해봐야 코르셋이 강제되는 문화를 바꿀 순 없습니다.
앞서 제가 SNS공간의 특징에 대해 말했지요. 개인적으로 올리는 사진이라도, 나 혼자 보는 공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보고 있다는 것. 그래서 당신이 전시하는 코르셋을 보고 압박감을 느끼거나 영향을 받아 따라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 그 점을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3. 스스로를 '평가받는 위치로' 대상화
올리시는 분들의 솔~찍헌 심정은 사실 이거 아닌가요?
'남들이 내 사진 보고 칭찬해 줬으면 좋겠다, 좋아요 누르고 반응해 줬으면 좋겠다 ...'
물론 칭찬 들으면 기분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계속 자댕이들이 사람 외모품평하는 글에 뭐라고 반응해 왔었나요? 칭찬도 평가라고 말했습니다. 니가 뭔데 날 '평가하려 드냐'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평가받는 사람은 평가자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는 걸요. 면접관과 지원자가 있을 때 눈치보는 건 지원자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몸매 사진이나 화장한 사진을 올리며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할 때 나는 평가당하는 대상이 됩니다. 어떤 반응을 기대하는 것도, 그리고 그 반응에 따라 실망하는 것도 전시하는 사람이에요. 보는 사람들은 아쉽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평가당하는 위치로 대상화하지 마세요. 그리고 반응하는 사람들도 거기에 예쁘다고 반응하지 마세요. 친하다는 이유로 외모품평이 평가가 아니게 될 수는 없습니다. 사회적 미의 기준에 따라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는 문화는 페미판 밖은 물론 안에서도 용인되어선 안 됩니다.
12. 저는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낮은 편이에요. 꾸미지 않은 모습에 자신이 없어요.
A. 만약 왕따를 당하거나 이 때문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 전문가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며 회복하는 게 우선입니다. 외모 때문에 자해를 시도하거나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는 페미니스트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면, 한번 꾸밈노동을 하지 않는 한남과 비교를 해 보세요. 남초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심지어 이 정도 외모는 잘생겼다고 정신승리하기까지 합니다. 반면 주위 여자들을 보면 어디 고쳐야겠다고, 어디 살빼야겠다고, 거울을 보면서 한숨쉬는 사람들이 널렸죠. 이는 사회의 성별 이중규범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고기 자르듯 여성의 외모를 부위별로 나눠 등급을 매기고 '완벽하지 않다'며 후려칩니다. 반면 남성의 경우에는 '그래도 이 정도면 훈남이야'라면서 약간의 하자 정도는 넘어가줍니다. 혹시 당신도 그런 이중적인 시선으로 자신과 타인을 보고 있지는 않았나요? 왜 그남들은 저리 당당하게 못생긴 얼굴을 들고 다니는데 당신이 꾸미지 않는다고 위축되어야 하나요?
[여성과 남성이 스스로를 보는 방식의 차이]
13. 탈코르셋, 무엇부터 실천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A. 첫번째, 거울 안 보기부터 시작합시다. 매우 사소한 방법 같지만 의외로 효과가 좋습니다. 우리가 거울을 왜 보나요? 남에게 비춰지는 내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 보잖아요. 거울 앞에서 이에 뭐 끼진 않았나, 얼굴에 뭐가 묻진 않았나, 화장이 잘 되었는지, 오늘 코디가 괜찮은지, 살이 얼마나 쪘네 빠졌네 확인하잖아요. 우리는 거울 앞에 서면 스스로의 외모를 자연스럽게 평가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울을 안 보는 건 외모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첫 번째 걸음입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남에게 비춰지는 내 모습을 확인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덜 신경쓰게 됩니다.
두번째, 탈코르셋 실천 일지를 쓰면서 자기평가를 하도록 합시다. 구체적인 기록 방법 및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목표행동 설정: 자신이 벗고자 하는 코르셋을 적어봅니다. 왜 그 코르셋을 벗고자 하는지 스스로 이유를 찾아 적어봅니다.
2) 기초선 측정: 우리가 24시간 꾸밈노동을 하지는 않으며 각자 빈도가 다르므로, 얼마나 자주 코르셋을 쓰는가 혹은 어떨 때 그것을 하는가 적습니다.
3) 계획 수립: 구체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빈도를 줄여나갈 것인지 적습니다. 만약 머리를 자르는 것 같이 빈도로 표현할 수 없는 행동이라면 언제 그 행동을 실행할지 적어봅니다. 이 때, 계획을 실천/실천하지 않을 경우 자신에게 어떤 상/벌을 줄 것인지도 함께 적습니다.
4) 계획 실행: 앞서 세운 계획을 실행합니다.
5) 피드백: 주기적으로 피드백을 통해 자신이 잘 실천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잘하고 있으면 약속한 보상을 줍니다.
세번째, 오프라인 시위나 래디컬 페미 강연, 모임 등에 참석하도록 합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무엇보다도 눈으로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확인한다면 큰 자극이 될 것입니다. 저도 오프라인 시위에 종종 참여하는데,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했을 때 이 사람들이 '정말 실재하는구나'를 느끼고 큰 자극을 받았거든요. 만약 지방이나 해외에 거주하여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 SNS 계정을 활용하여 탈코르셋 인증샷이나 혹은 해시태그 운동 등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페미니즘을 말하다 > [자필]올빼미의 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공계 여성차별 OUT (0) | 2018.01.14 |
---|---|
노예제도와의 비교를 통해 본 반성매매담론 (0) | 2018.01.12 |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앞으론 여성혐오가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0) | 2017.12.13 |
우리,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방식 (0) | 2017.12.12 |
페미니스트 멘탈케어 2부, 대화가 안 되는 지인을 바라보는 당신에게 (0) | 2017.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