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여성에게 감정노동을 당연시하고 더 높은 공감능력을 가지도록 요구해 왔다. 실제로 친절하게 (웃으면서)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업무에는 주로 여성이 배치되며, 우리는 "철든 네가 참으렴" "네가 XX를 이해해야지"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어 왔던지. 그리고 가정에서도 여성은 감정노동을 요구받는다. 남편은 아내가 직장생활의 어려움에 공감해 주길 요구한다. 그러나 정확히 반대의 경우는 꽤나 드물다.
여기까지는 다들 잘 아는 이야기. 그런데 가정에서 딸의 감정노동은 사실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다. 딸은 여성이기 때문에, 그리고 (종종 부모의 소유물 취급당하는) 자식이기 때문에 더 많은 감정노동을 수행한다. 요즘엔 아들보다는 딸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 이면에는 첨부된 트윗처럼 "다정하고 친구같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효도도 더 잘해줄 것 같은" 기대감이 있지 않은가? 오빠나 남동생이 있는 집은 요구하는 감정노동의 온도차를 한번 비교해 보길. 딸이라서 더 잘해주고 더 가족을 위해 희생하길 바라는 분위기,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건 편견입니다.
딸들은 그런 기대를 채워줄 필요가 없습니다. 딸이라서 속이 깊은 게 아니고, 우선 속이 깊고 더 공감해줄 거라는 선입견이 작동한 후에 나중에 정말 그렇다고 갖다붙이는 겁니다. 애초에 타인에게 일단 공감하라고 그렇게 양육한 상태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아래는 직접 번역한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대 보수주의자 비교/대조표이다. 짤 출처는 아마도.. 페이스북 Radfem forever 페이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보수주의자나 주류 기독교 측의 주장과 겹친다며 함께 싸잡아 매도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칭 성해방론자들이며, 이미 서구에선 Sex War성 전쟁이라고 페미니스트들과 격하게 싸웠다. (그리고 이 성 전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다 죽지 않는 한 끝나지 않겠지.) 우리나라의 성해방론자로는 <이기적 섹스>의 저자인 은하선 씨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측이 대표적인 sex-positive 노선이다.
흉자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이중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여자로 태어난 이상 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어렸을 때부터 핑크색과 리본,레이스 따위를 좋아하게끔 사회화되고, 예쁘게 꾸미고 다이어트하라는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초경을 시작하게 되면 월경을 하는 당사자가 되고, 임신과 출산을 강요당하겠지요.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경우에 따라 통금 때문에 아쉬워한 적도 있겠지요. 취업에서, 임금에서, 그리고 승진에서 차별을 경험합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여성혐오적 프레임에 그대로 노출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들 역시 가부장제 사회의 피해자라는 점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여성 집단을 쪼개 페미니스트- 차별주의자라는 틀에서 보면, 그 사람들은 가해자이며 기득권자로 위치하게 됩니다. 아직 페미니즘이 상식이 되지 않은 사회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밝히는 여성은 뒤에서 꼴페미다, 페미나치다 혹은 메갈/워마드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흉자는 그 뒷담에 얼마든지 동참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남자들과 함께 그 페미니스트들을 욕하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들 수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나도 여자지만 난 안 불편한데?" 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흉자의 아무말은 종종 한남의 그것 못지않게 해롭습니다. 한남의 아무말은 맨스플레인으로 취급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같은 논리라도 여성의 입에서 나오면 페미니스트들은 예민하고 비정상적인 여자들이 되니까요. 남성들은 정확히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줄 흉자들의 발언에만 주목하며, 정상적인 여성(흉자)와 비정상적인 여성(페미니스트)을 분할하여 페미니스트들을 매도합니다. 따라서 흉자는 남성권력을 지탱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을 가스라이팅하는 가해자입니다.
연대와 비판 사이에서
이중적인 위치이기 때문에 우리는 세심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페미니즘이 보편적 여성을 위한 운동인 이상 그들도 페미니스트들이 싸워 쟁취한 권리를 함께 누려야 할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각종 성범죄, 데이트 폭력, 여성대상범죄의 피해자가 된다면 분노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흉자든 아니든 뭐가 중요한가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문제인데. 그러나 그들은 페미니스트들의 발목을 잡는 존재이므로 한남과 마찬가지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페미니스트인 이상 여성혐오적인 언어로 패는 건 지양해야겠지요.
또한 흉자였다가 페미니스트가 된 사람은 일단 아묻따 환영해 줘야 합니다. 우리도 한때는 흉자였지 않았나요? 기존의 페미니스트들이 내가 과거에 어떤 개념녀짓을 했는지 일일이 캐묻지 않았던 것처럼, 굳이 그 사람의 과거를 들출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각성하기 전까지는 마땅히 비판/비난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흉자라는 단어의 필요성
흉자라는 단어가 여성을 서열화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부장제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가해자로서 이 여성들을 설명하고 정의할 언어는 필요합니다. 또한 페미니스트들이 이 여성들을 '흉내자지'라는 모욕적인 언어로 부른다 해도, 그게 실제적인 억압이나 위협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들은 기득권인 남성의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에 비해 권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성범죄를 당해도 나는 상관없을 거라며 2차 가해하는 여성들이 흉자이고, 페밍아웃하면 뒤에서 당신을 매장하는 데 동참하는 여성들이 흉자입니다. 흉내자지라는 표현 하나만으로 따지는 것은 도덕적 검열이며, 오히려 미러링과 같이 대항적 발화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는 과도기로서 사용하고 있지만 흉자는 결과적으로 사라질 단어입니다. 과거에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을 비웃으며 개념녀를 자처하는 여성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여성의 선거권이 너무나 당연한 권리가 된 것처럼, 흉자라는 말은 페미니즘이 상식이 되는 때, 여성해방이 이루어지는 때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입니다.
앨라이와 흉자?
젠더 감수성이 높다고 타고난 성별 계급(sex class)이 바뀌진 않습니다. 잘 와닿지 않는다면, 앞서 흉자도 가부장제의 피해자라 설명한 부분을 다시 읽어보시길.우리가 흉자를 비판하고 한남 수거해가라고 조롱하는 것은 가부장제에서 그들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기득권자죠. 페미니스트들이 메갈이라고 쌍욕과 외모조롱을 당할 때 남성이라는 이유로 유니콘,개념남 취급받는 사람이라고요. 넥슨 사태 때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도 위협을 당할까봐 현실에서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를 못 입었지만, 남자인 당신은 티셔츠를 입어도 문제가 없었다고요.
차별적인 발언에 눈감고 귀막으라는 것이 아니고 본인의 사회적인 위치를 자각하라는 겁니다. 근거를 제시하면서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지적할지언정, 당신에겐 그 단어를 쓰면서 여성혐오하는 여성을 조롱할 자격이 없습니다.
※현재는 명예남성, 혹은 명자보다 흉자가 널리 쓰이고 있으므로 '흉자'로 통일하여 표기하였다. 참고로 흉자는 흉내자지의 준말로, 사회의 여성혐오에 대해 무감각하며 여성혐오를 재생산하는 여성을 의미한다. 기존 갓치/코르셋/명자라는 삼분법이 존재하였으나 현재 갓치라는 표현은 잘 쓰이지 않게 되었고, 코르셋 역시 사람을 지칭하기보다 화장과 같은 여성성 규범을 뜻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흉자는 실질적으로 여성혐오를 깨닫지 못한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미러링이라 말하는 것들 대다수는 논리학에서 말하는 '피장파장의 오류'의 일종이다. 그런 것쯤은 나도 알고 다른 페미니스트들도 다 안다. 그러나, 당신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바로 미러링은 논리적인 반박으로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화술로 사용되며, 특히 공정성을 논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법이라는 점이다.
좀더 쉽게 얘기해 볼까. A와 B가 똑같은 잘못을 했다. 정확히는 A가 먼저 잘못을 한 후, B가 잘못을 했다. A의 잘못에 대해 사람들은 무관심하거나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넘어갔다. B는 A의 잘못이 덮어지는 걸 보았고, 나중에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는데 B한테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그리고 B는 이렇게 말한다.
"A도 잘못했는데 그냥 넘어갔잖아!!! 왜 나만 패!!"
B가 이와 같이 말한다고 해서 B의 잘못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히 독해해야 한다. B는 '자신의 잘못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A와의 공정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misogyny와 misandry 사이에서는 분명히 misogyny가 선행되었다. 따라서 미러링은 사람들의 '이중잣대'를 보여줌으로써 그 부조리함을 폭로하는 데 일조한다.
앞서 미러링이 공정성을 논하기 위한 화법임을 설명했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가? 바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이다.
흔히들 일베메갈 동급론을 주장한다. 일베의 언어도 혐오스러운데, 이를 미러링한 메갈리아의 언어도 혐오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김치녀, 된장녀, 김여사, 보슬아치 등으로 대표되는 여성혐오적인 표현에 대해 대중이 침묵하고 넘어갔음을 알고 있다, 적어도, 남성혐오적 표현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렇다면 여성혐오적 표현을 수용 또는 방관하던 이들은 남성혐오에 대해서도 동일한 반응을 보여야 '공정하다' , 하지만 실제로 남성혐오적인 표현은 훨씬 빠르게 이슈화되었으며 미러링이 나오고 나서야 '여혐 남혐 모두 나빠요'라는 발언이 뒤를 이었다.
비단 메갈리아 뿐이었나. 여성이 TV에서 한 아무말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나, 남성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키 180cm 이하는 루저'라 말한 이도경 씨는 일반인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남성들의 공격을 받아 사회적으로 매장하다시피 했고, 아직도 그녀의 근황을 조사하는지 자동검색어에 '이도경 2016년 근황' 이 잡힌다. 반면, 옹달샘 삼총사의 막말은 어떠했나? 비판과 비난이 있었으나 여전히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TV에 얼굴을 비춘다.
범죄의 처벌에 있어서도 공정성을 논할 수 있다. 가족살해 가해자의 특성과 양형요인에 대한 연구(2007,손지선, 이수정) 에 의하면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경우 평균적으로 더 오랜 기간 징역형을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
남편이 바람나서 아내 죽일때
평균 120개월
남편이 바람난 아내 죽일때
평균 79.5개월
아내가 바람나서 남편 죽일때
평균 225개월
아내가 바람난 남편 죽일 때
평균 162개월
물론 미러링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도덕적이지 않은 행위를 미러링하면 결국 도덕적이지 않은 행위가 생산되며, 미러링이라는 이유로 기존 도덕 또는 윤리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도덕적인 것으로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미러링은 만능키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를 지지하는 이유는, 과거 조곤조곤 설명하던 온건한 사람들조차 신상이 털리고 목소리가 무시당해 왔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며, 미러링은 신선한 충격요법으로 작용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이중잣대를 폭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미러링의 한계 이전에, 왜 굳이 미러링이라는 방법론을 택했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덧) 참고로, 미러링 표현에는 한남충,자적자,상폐남 등의 남성을 직접적으로 비하하는 용어만 해당되지 않는다. '남여'를 '여남'으로, '부모'를 '모부'로 표기하여 단어의 순서를 역전시키거나, '남'을 직업 앞에 붙이거나 xx남으로 대상화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 역시 여성의 대상화에 대한 미러링 표현에 해당된다.
"젠더 정체성" 담론에 저항하는 여성들은 지난 10년간 최전방에서 대체로 소외되어 왔습니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과 진보주의자들은 정체성의 정치학을 페미니즘에 여러 차례 채택해 왔고 이것도 예외는 아닙니다. 여성 해방에 자원을 쏟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힘이 독립적인 여성 운동을 지지하는 데서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대부분은 우리가 첫째로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가부장제의 뿌리에 대해 충분히 깊게 생각하도록 신경써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급진주의 페미니즘 원리에 기반한 정치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젠더 정체성 담론의 도그마에 공적으로 질문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우리는 거절당하고 현대판 마녀사냥을 당한 끝에 흔히 받아주는 도피성으로 앵무새처럼 되돌아갈거란 점을 존나 잘 알고 있어요.
나는 여성전용공간과 여성 조직이 페미니즘 운동과, 여성을 남성폭력으로부터 회복시키는 데 중요하단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젠더정체성과 트랜스정치학을 둘러싼 담론에서 확실한 입장을 내세우는 걸 무서워했음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실, 수년간 나는 내 입장이 뭔지 확정하지 못했고, 차별적인 성역할을 고착시키는 것에 대항해서 목소리내는 걸 두려워했습니다. 소위 "트랜스 권리"와 손잡은 성역할은 성산업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한 제 투쟁을 분산시켰습니다. 트랜스정치학에 문제제기하는 일에 뒤따르는 처벌로는 직업을 상실하는 것, 검열, 블랙리스트에 낙인찍히는 것, 신체적 또는 다른 방식으로 트랜스활동가들에 의해 위협받고 공격당하는 것, 사회적 왕따 등 여성의 발언권을 빼앗는 모든 행위를 포함합니다. (저는 이미 이런 처벌로 수난을 당했으며, 당연히 집단의 노선과 어긋나는 것, "TERF" 내지는 "트랜스혐오자" 라고 낙인찍힌 여성들과 연대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인 여성주의적 견해들을 말할 수 없게 된 시대에 살고 있는 반면, 성차별주의자들의 비방과 중상모략이 폭넓게 수용되고 심지어는 사회정의를 외치는 활동가들과 진보주의자들이 그들을 찬양하기까지 합니다.
여러 위험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신념에서, 신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젠더 정체성" 개념을 지지할 수 없습니다. 가부장제가 어떻게 발생했고 얼마나 만연한지 이해하는 페미니스트로서뿐만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이해하는 좌파로서. 나는 퇴행적이고 반-페미니즘적인 담론에 직면하여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침묵이 다른 여성이 목소리 내는 데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미 발언권을 제한당해 존나게 고통받았던 내 자매들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7월에, 줄리아 롱이 조직한 컨퍼런스가 영국 런던의 콘웨이 홀에서 열렸습니다. 목적은 "질문할 수 없는 그것"에 대해 문제제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르게 생각하기: 젠더 정치학에 문제제기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요 페미니스트 연설자는 쉴라 제프리스, 리어 키스, 줄리 빈델, 스테파니 데이비스-어레이, 메리 루 싱글턴, 잭키 먼스, 맥달렌 번즈, 그리고 롱 자신이었습니다. 그들은 여성인권과 가부장제로부터의 여성 해방을 위한 지속적인 투쟁에 대한 트랜스 담론의 영향뿐만 아니라, 영국 전역과 영국을 넘어서 일어나는 페미니스트 발언을 침묵시키는 일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그 담화의 영상 녹화본이 지난주에 공개되었습니다. 1)
쉴라 제프리스는 연설 중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트랜스젠더리즘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구성된 하나의 발명입니다. 그리고, 타고나기보단 이성애중심주의 사회에서 존재하는 힘의 영향력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맺으며 존재합니다."
제프리스는 "젠더 정체성"개념을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개념이라는 점, 또한 자본주의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트랜스젠더리즘이 젠더 정체성 테라피스트와 병원, 성형외과 의사들이라는 거대 의약품 산업을 위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미국 신자유주의와 연결지었습니다. "정체성"과 "표현"이 현대 사회의 소비지상주의와 긴밀히 연결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젠더 정체성"과 자본주의를 떼어놓고 말하는 건 이상하지요. 여성성은 여성들에게 완전히 성차별적인 방식으로 광고되었고, 갑자기 우리는 성형수술이 "자율권을 주는"것으로 수용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왜냐하면 남성들이 성형수술을 그들의 여성적인 "젠더 표현"의 일부로 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프리스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젠더"라는 용어를 완전히 갖다버리라고 제안합니다. 대신에 그녀는 "우리는 젠더가 무의미해지고 생물학적 성별과 결합한 것처럼, 성별 분류 내지는 성 계급을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실제로 젠더의 종말을 향해 일하고 있습니다. 젠더는 성별 분류의 위계를 당연시하게끔 고안되었고 부과됩니다. 성의 위계는 남성을 지배자로, 여성을 피지배자로 위치시킵니다. 개개인은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젠더가 실재하며 타고난다는 개념을 수용하기 위해 그게 얼마나 진보적인지 물어야 합니다. 젠더는 개인이 가지고 태어날 수 있으며, 알다시피 이는 정확히 남성이 여성은 투표할 수 없고, 밖에서 일해서도 안 되며, 사회적 지위를 가져서도 안 된다는 사상을 방어하고자 역사적으로 사용되던 전략입니다. 여성은 자연적으로 "여성적"으로 구성되며, 이는 우리가 너무 감정적이며, 비이성적이고, 남성만큼 공적 영역에 종사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조적으로, 남성은 그들이 타고나길 적극적이며, 이성적이고, 감정적이지 않으며 터프하기 때문에 더 관공서 업무와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기 적합하다고 이야기됩니다. 우리가, 페미니스트로서(그리고 사회로서) 성차별주의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고 강요하기 위해 존재하는 성 역할을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기보다 타고났다고 받아들임으로써 이렇게 퇴행하는 것이 정말로 편안합니까?
"시스" 는 그들 자신/ 현재의 자신을 진보적이지만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과 적대하는 사람들에게 채택된 또다른 용어입니다. 우리가 말했지만, "시스"는 "자신의 정체성이 그들의 생물학적 성별과 일치하는 젠더에 순응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시스 여성"이란 여성성으로 정체화한 여성입니다. 이 여성성이란 저하곤 확실히 거리가 멀고, 다른 많은 여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여성성 개념을 거부하며 그러므로 여성성이 부과된 여성들이 특권을 누린다거나, 자연적으로 피억압자가 되는 경향이 있다는 개념을 거부합니다. "시스"는 여성이 어떻게든 자신의 억압과 동일시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퇴행적 용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용어를 거부하는 여성은 "트랜스혐오적"이라 딱지가 붙습니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페미니스트들의 발언이 중단되며, 젠더 정치학에 대한 일반적인 문제제기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제프리스처럼, 리어 키스는 연설에서 급진주의자들이 "사회는 사상과 견해가 아닌, 권력의 구체적인 시스템으로 조직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젠더 정체성 개념을 자유주의와 연결시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억압을 해결할 방법은 구조를 해체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인종차별주의가 흑인이 태생적으로 열등하다는 선전에 의해 강화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인종차별과 동일한 방식으로, 여성과 하위계급들은 효과적으로 불평등을 자연스레 내면화하도록 단순히 다른(열등한) 뇌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된다. 계급과 인종처럼 젠더는 이분법이 아니며, 키스에 의하면 위계질서입니다. 키스는 모든 사람들 못지않게 목소리내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커리어는 끝났어요" 그녀는 말합니다. "나는 더 이상 대학에서 강의할 수 없습니다. 초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주 이내로 철회되었어요." 그녀는 이런 추세를 맥카시즘과 비교하며 말하길, "공적인 논쟁에 제재가 가해집니다. 당신은 일정 선을 넘길 수 없습니다."
수많은 작품을 써낸 여성주의자 저널리스트인 줄리 빈델은 NUS(국내대학생연합,영국 소재)에 의해 공식 석상에서의 발언권을 박탈당했습니다. 연설에서 그녀는 설명합니다. 자신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NUS 컨퍼런스에 읽기 전용으로 "줄리 빈델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라고 그대로 잘 남아 있다고요. 줄리 빈델이 저지른 죄에는 <밴쿠버 여성보호소>가 회원 자격을 재규정하는 투쟁을 지지하는 기사를 쓴 일이 포함됩니다. 이 투쟁은 트랜스남성인 킴벌리 닉슨이 강간 피해자를 위한 상담원 실습을 거부당했다는 이유로 오래된 강간위기쉼터를 고소한 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 단체는 트랜스젠더리즘을 규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성차별적인 성역할 전형에 반대합니다. 그녀가 설명하기를, 2007년에 쓴 기사 또한 그녀가 욕먹는 이유라고 합니다. 그 기사는 강요당해 "성별 재지정 수술"을 받은 걸 후회하는 트랜스젠더들에 관한 내용이었거든요.
많은 여성들은 공포를 느껴 빈델을 지지하길 거부했으며, 그녀가 말하길,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여전히 이벤트가 해당 장소에서 열리지 못할까봐 컨퍼런스 프로그램에 빈델을 참석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페미니즘을 하는 방식이 아니에요." 그녀는 말합니다. "우리는 밖으로 나오기를 갈망하고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을 자랑스러워하나 그렇지 못한 젊은 여성들을 대학에 남겨두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담론에서 입막음당하는 건 소외된 사람들을 지지하는 문제가 아니라 페미니즘을 망치는 일입니다.
근본적으로, 정치적 비평은 "혐오증"으로 재명명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남성 지배와 체계적 권력에 대한 페미니스트 분석학은 밀려나 검열을 정당화하는 "심각한 편견"범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빈델이 말하기를, 이는 특별히 "자유주의적이거나 '웃긴 페미니즘'인 정체성의 정치학에 순응하길 거부하는"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겪는 일입니다. 한편, 여성혐오자들과 포르노 제작자들은 저항 없이 캠퍼스에 허용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생들이 비난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급진 페미니스트 학생들을 왕따시켜 입막음하고, 자유주의 교리에 반대하는 여성을 캠퍼스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이 부분에 대해선 맥달렌 번즈가 자기 연설에서 말했는데, 그녀는 막학년에 에딘버러 대학의 모든 여성모임과 LGBT 모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단체에서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을 명백히 "트리거 워닝" 정도로 취급했습니다.) 저는 "아이러니하게도"라고 말했는데, 왜냐하면, 다른 어떤 장소보다 대학 캠퍼스에서 이런 대화가 장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고등교육이야말로 사상을 탐구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포를 내던질 때입니다. 이건 제가 페미니즘(자유주의가 아닌, 퀴어 정치학이 아닌, "자율권"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에 중점을 둔 친자본주의의 미사여구가 아닌, 진정한 종류의 페미니즘)으로부터 배운 것들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말하든 간에, 우리는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로서 박해받고, 험담을 듣고, 침묵당합니다. 이는 우리가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남성에게 책임을 묻고, 가차없이 가부장제를 비평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우리는 "SWERF", "TERF", "창녀혐오자","팸혐오자", "트랜스혐오자", "성적보수주의", "성엄숙주의" 등등으로 불리우는데, 우리가 트랜스젠더,성매매 여성, 섹슈얼리티를 위협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정치학이 특정한 개개인을 "배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물론 이 개개인이 성차별주의자가 아니라면, 페미니즘에서 "배제당했다"고 느낄 수 있어요) 그러나 이러한 낙인과 비방은 우리를 닥치게 만들고 배제하게끔 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우리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가입이 거절되며, 어떤 기회이든 간에 불명예를 안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협력하지 않고, 지지하지 않고, 우리의 어떤 작업물도 공유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 말한 작업물의 내용과 관계없이) 말입니다. 자기들이 같이 낙인찍힐까봐 그렇지요. 그건 다른 여성들이 두려워하고 침묵하게 만드는 데 사용되는 전략이며, 실제로 먹힙니다.
번즈 씨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우리 신체에 대해 이야기할 권리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여성은 우리가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억압받아온 조건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권리를 가집니다. 가부장제는 6000년 전쯤에 남성이 여성의 번식능력을 통제할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존재할 뿐입니다. "젠더"는 남성이 여성의 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들의 여성 지배를 자연화하기 위해서 고착되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열등하지 않으며, 개인적인 감정이나 젠더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생물학적 특성과 그로 인한 차별 때문에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기반 위에서 여성인권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당신은 직업이나 친구를 잃을 걱정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당신의 인권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합니다." 라고 번즈는 말합니다. 저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수많은 약칭으로 내지는 "혐오자"의 형태로 낙인찍히는 방식을 두려워하며 사는 건 의미가 없다고요. 그건 '분할하여 지배하기'전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우리가 거짓말을 하거나 침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한 마녀사냥꾼들을 피할 방법은 없으며, 제가 봤을 때 이건 성차별주의자들에 의해 거짓말로 음해당하고, 겨냥되며, 터무니없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보다 훨씬 나쁜 형벌입니다.
저는 두번 다시 이런 비방으로부터 숨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목적이 달성되니까요. 저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공격받는 현실일지라도, 목소리내며 또한 꾸준히 목소리내는 자매들과 연대할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는 무엇이든 간에 우리에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신이 진짜로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거든요. 당신은 "별종이 아닌, 페미니스트" 잖아요?
우리가 침묵하는 동안 성차별주의자들은 이기고 있으며 계속 이길 것입니다. 그들은 여성운동을 까내리고 비난하는 반면 "페미니스트"정체성을 주장하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좌파 남성들은 이 "퀴어활동가", "성노동권리활동가", 그리고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지지와 침묵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우리를 성차별적인 이름으로 부르며 우리의 작업물을 검열할 것입니다. (이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자기들을 여성에 대한 배신자로 보고, 이들의 정치학은 남성우월주의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위장할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포함합니다. 악영향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내고 자매들과 연대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빈델은 다음의 말로 발언을 마무리했습니다.
"우리는 용감해질 필요가 있어요. 우리같이 더 나이먹고 더 오랜 기간 페미니즘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최근에 뛰어든 페미니스트들,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빚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친밀한 관계로부터, 그들만의 공동체에서 내팽개쳐질 공포를 느끼는데,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그들에게 응집력 있고, 역동적인 운동에 훨씬 더 엮이라고 기대할 수 있나요?
...부디 더 이상 굴복하지 말아요.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나는 이해합니다.
여전히 이렇게 말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어요. "나는 당신을 프로그램에 참여시킬 수 없어요, 나는 당신에게 이걸 말하라고 요구할 수 없어요, 나는 그들이 우릴 뒤쫓을 거기 때문에 당신의 이름을 포함시키지 않을 겁니다."
여성혐오는 학자마다 개념의 정의가 조금씩 다르며, 단순히 정의를 외우는 것만으로는 어떤 현상을 여성혐오라 하는지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여성혐오가 드러나는 구체적인 양상을 통하여 무엇을 여성혐오라 하는지 정리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여성혐오의 피라미드[각주:1]를 통하여 그 종류와 양상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여성에 대한 돌팔매질 처형 -명예살인 - 성감별 여아낙태(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 - 불륜, 반항 등 그 외 온갖 변명을 핑계로 한, 남편/남자친구/애인이 저지르는 여성과 소녀들의 살해지참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루어지는 배우자(여성) 화형공양 -할례로 인한 죽음 - 여성 성 노예, 인신매매 당한 여성들과 매춘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그들의 ‘주인’, 매매범, ‘고객’과 포주들에 의해 당하는 죽음 - 여성을 혐오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 지인들과 연쇄살인마들에 의한 여성 살해 (강남역 살인사건도 가해자가 계획적으로 타겟을 정한 점, 그리고 여성을 혐오했다는 증언이 있으므로 해당된다)
《폭력적인 행위》 몰카를 포함한 디지털성범죄,[각주:3]각종 성범죄, 가정폭력, 남성에 의한 애인 간 폭력(구타/강간/염산테러 등), 스토킹, 가스라이팅[각주:4]등
《구조적 차별》 사회적 배제[각주:5] 고용 및 승진에서의 차별- 유리천장, 유리절벽[각주:6] 의료적 차별- 남성 중심적인 임상실험[각주:7] 교육기회의 불평등- 제3세계에서는 대개 경제적 이유로 여성의 교육을 제한한다.
※참고로, 바티칸 시국을 제외,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를 끝으로 모든 국가에서 여성은 참정권을 갖게 되었다.
《차별과 편견적 행위》 위대한 모성과 '맘충', 성녀와 창녀, 김치녀- 개념녀의 이분화: 이상적인 여성상을 만들고, 이를 거부하거나 기준에 못 미치는 여성 비난하기 특히, 임산부에 대한 혐오: 임산부 그림에 X표, 임산부 대상의 폭행, '질싸인증석' 등 혐오발언
《교묘한 차별적 행위》
스테레오타입: 1.성역할을 강요하는 행위('여자는 ~해야 해/~하면 안돼) -ex) 모성 숭배, "여자라면 화장하고 꾸밀 줄 알아야지", "애 낳을 몸이니까 담배피면 안 되지" 등등 2. 성별에 대한 일반화( 여자들은 ~를 잘한다/못한다) -ex) 여자들은 운전을 못해, 수학/과학을 못해 혹은 여자니까 요리를 잘하겠지? 글씨체가 예쁘겠지? 등
대상화,성 상품화: XX녀, 가슴이나 골반 등 신체 일부를 강조, 보상으로서 취급하기(ex: 명문대 가면 여친 그냥 생겨~) 등
여성의 업적과 그 존재를 의도적으로 삭제: 여러 분야에서의 학자들, 독립운동가 등을 가르치지 않는 행위 등
몰이해한 발언(소위 맨스플레인): 생리/출산에 대한 몰이해, 여성의 피해 경험에 대한 무시
*참고로 여성혐오/남성혐오의 피라미드는 레디즘 페이지에서 최초로 업로드된 자료로,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 및 2차수정을 금하고 있습니다.
본래 혐오의 피라미드(The pyramid of hate)는 본래 미국의 유대인 차별반대 단체 ADL(Anti-Defamation League)에서 만들어진 자료로, 교육용 목적으로 사용된 바 있다. 이러한 혐오의 피라미드는 영어로 찾아볼 때 그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며 5~7단계로 혐오의 층위를 세분화한 것이 특징이다.
필자는 레디즘 출처(정확히는, 레디즘2 페이스북 페이지 출처)의 혐오의 피라미드를 기존 ADL의 혐오의 피라미드 원본과 구분하기 위하여, 특별히 '여성혐오의 피라미드(The pyramid of misogyny)'라 지칭하였다. [본문으로]
1) '여성살해' 용어는 그냥 생겨나지 않았다, 페미디아
http://femidea.com/?p=498 [본문으로]
리벤지포르노 용어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리벤지포르노는 Revenge(복수)는 피해자의 잘못이 선행된다는 느낌을 주며, Pornography(포르노, 음란물) 역시 "도덕적이지 못한 것,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것"이라는 함의를 갖는다. 즉 리벤지포르노란 용어는 철저히 가해자의 시선을 반영하고 있다.
디지털성범죄 아웃 D.S.O 페이지의 카드뉴스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자.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960510160743521&id=773098039484735 [본문으로]
가스라이팅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블로그의 글을 정독하길 권한다.
<가장 끔찍한 가정폭력, 가스라이팅> 시리즈
http://femik.tistory.com/m/24 [본문으로]
사회적 배제(社會的排除)는 사회나 개인이 특정 그룹 내의 사회적 통합에 필수적이면서도 다른 그룹의 구성원들이 일반적으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권리, 기회, 자원(예: 고용, 민주적 참여, 의료)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상태- 위키백과
‘개인, 가족, 집단 또는 이웃들로부터 이들이 사회․경제․정치적 활동 전반에 걸쳐 참여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빼앗는 일련의 과정’-피어슨
(한국행정학회 용어사전)
http://www.kapa21.or.kr/epadic/epadic_view.php?num=1140&page=51&term_cate=&term_word=&term_key=&term_auth= [본문으로]
2005년 영국 엑스터대의 미셸 라이언 및 앨릭스 해즐럼 교수가 만들어낸 개념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 또는 위험을 안아야 하는 고위직 승진의 경우 남성들이 이 일을 기피하여 여성들이 실패 가능성이 높은 일을 맡게 되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 때, 여성 개인의 실패는 일반화의 오류에 의해 곧장 여성 집단의 무능함으로 귀결된다. 즉, '남자와 똑같이 기회를 주었는데 여자라서 망쳤다'며 여성 차별을 정당화하게 되는 것이다. [본문으로]
해당 영상을 참고하라.
(TED강연) 앨리슨 맥그레거- 왜 약은 종종 여성에게 위험한 부작용이 있는가 https://m.youtube.com/watch?v=EaAREDOAdvQ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