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은 왜 폭력을 당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가? 이런 질문을 한다. 여기에는 참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이 트윗은 소름돋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떠나는 것 자체가 곧 생존에 위협이 될 것이라 직감했기 때문에 이들이 무섭고 힘들어도 남성으로부터 결국 떠나지 못하고 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폭력으로부터 결국 살아남아 탈출한 여성들이 있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여성이 있다면, 그를 가해자로부터 보호함으로써 그 억압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끔 이끌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상태에 계속 머무르면서 행복해질 수는 없으며, 오직 폭력을 끊어내는 것만이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만약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한국여성의전화에 직접 전화하거나 근처 가정폭력상담소를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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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6B radical feminist,lesbian,liberal right-winger, atheist,contents 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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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5.31일)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진행된 가정폭력 피해 성인자녀 집담회를 다녀왔습니다. 기대와 흥분, 한편으로는 초조함 등 복잡한 심경으로 그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집담회가 어땠는지 전체적인 진행- 참여한 계기- 집담회에서 내가 발언하고 싶었던 내용 전문(사실 그 중 극히 일부만 발언했다) - 느낀점으로 후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전체적인 진행


피해생존자 4명이 패널로 앞에서 우선적으로 자신의 피해경험을 나누며 이야기의 장을 열었고, 프로젝터로 ppt띄워놓고 미리 준비된 주제들을 넘기면서 사회자가 패널, 그리고 청중들에게 질문하면서 경험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70명이라는 인원이 순수한 피해자만 70명이 모인 것이 아니라, 여성의전화에서 현재 활동중인 사람들까지 수용하는 인원이 아니었나 싶어요. 생각보다 마이크 경쟁이 심하지 않았거든요.


 

집담회에 참석한 계기?


저는 페이스북이 주활동지인 페페미인데, 어느날 타임라인에 여성의전화 포스팅이 보이길래 이런 집담회가 열린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집담회 주제를 보니까 완전 제 이야기거든요? 온전히 저를 위한 자리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우선 다른 사람들의 피해경험을 듣고 내 경험도 나누면서 치유받고 싶었고, 또한 지금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상담을 받는 상황인데 제 존재, 그러니까 가정폭력을 경험한 성인자녀의 목소리가 지워지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정말 이건 나를 위해 준비된 자리라고 생각해서 집담회에 참석했습니다. 


말하고 싶었던 것(1) 폭력을 폭력이라 말하지 못했다


저는 아동/청소년 학대 피해당사자입니다. 저는 제 경험을 말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왜 폭력을 폭력이라 말하지 못했냐고요?

첫번째 이유: 이걸 가정폭력이라 불러도 되나요?


학교에서는 체벌 금지 조항이 생겼지만, 여전히 수많은 가정에서는 체벌이 공공연하게 훈육의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체벌의 수위는 전적으로 양육자에게[각주:1]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수위와 상관없이 모든 체벌은 전부 '사랑의 매'가 되고요. 신체적 폭력은 그렇게 합리화됩니다.
폭언은 어떤가요?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말, 변화의 가능성을 지워버리는 말,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말, 상품화하기, 위협, 쌍욕... 제가 실제로 들었던 말들 쭉 나열해 볼게요. 



이런 말들은 결국 '널 위한 잔소리'로 포장됩니다. 아동, 청소년기의 정서적 폭력은 성격발달,정체감 확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데도 불구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요.

  그리고 경제적인 위협 역시 가정폭력에 해당되는데, 저는 이런 유형도 있는줄 몰랐어요. 집 나가라고 말하는 것, 통장을 빼앗는 것, 재산을 함부로 처분하는 것 역시 가정폭력입니다. 보통 집 나가라고 말하는 양육자는 그 기저에 "그래봤자 나가서 먹고 살 돈이 없으니 들어오겠지"라는 심리가 깔려 있거든요. 정서적으로 독립을 원한다 한들,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저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통장을 뺏고 재산을 처분하는 것 역시 나의 소유물을 인정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려는 행위입니다.

(※성폭력, 방임도 폭력의 유형이나 제가 겪은 것은 아니기에 생략.)

두 번째 이유: 아무도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다 

저는 무언가 잘못되었고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자각했고, 거기에 가정폭력이라 이름붙이기 어려웠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위에서 설명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너 지금 그거 학대당하는 거야" 라고 확실하게 알려줬다면 이게 가정폭력인지 알았을 거예요.
왜 아무도 나한테 그게 가정폭력이라 말해주지 않았나요?
제가 스스로를 가정폭력 피해자로 정체화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입니다. 왜 아무도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을까, 내가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나는 덜 괴로웠을 텐데. 저는 그 이유에 대해 쭉 생각해 봤어요. 약식으로 사고의 흐름을 정리해 보자면,


가정폭력을 당하는 줄 몰라서=> 왜 몰랐을까?=> 가정폭력의 징후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가정폭력을 당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알리지 않는다=> 그건 '그 가정의 일'이니까/ 어떻게 도와줄지 몰라서


가정 바깥에 있는 사람들 중, 그 징후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건 유치원/초, 중등교사 정도가 될 것입니다. 물론 그 외에도 아동과 가까운 관계인 성인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신체적 폭력이 아니라 정서적 폭력이라면, 더욱 파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학교에서 소위 말하는 '범생이'인 경우에는 더더욱 사각지대에 놓입니다. 왜냐하면 선생님들은 규칙을 잘 지키고, 성적을 잘 받는 학생들에게는 가정에 특별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거든요. 저도 그렇게 사각지대에 있는 학생이었습니다.[각주:2]

세 번째 이유: 이탈자는 받아들일 수 없어- 전체주의 문화와 '정상적인' 가정


우리 사회에는 공동체주의의 탈을 쓴 전체주의 문화가 만연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집단을 벗어나면 안 되고, 소수의 의견은 예민하게 취급되며, 밖으로 나가 새로운 시도를 하겠단 사람을 굳이 그 안으로 억지로 밀어넣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디어에서는 화목한 가정 위주로 비추기 때문에 우리 집도 그래야만 할 것 같고, 문제 가정으로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입을 꾹 닫아버리게 됩니다. 설령, 정말 어렵게 말하게 되더라도 반응은 이런 식이죠 


"다른 집도 다 그래" 맞아요. 어제 사회자분이 말하셔서 처음 안 사실인데, 두 집 중에 한 집이 폭력 가정이라 하더라고요. 얼마나 흔해요? 정말 다른 집도 다 그래. 그런데 다른 집도 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느낀 감정이나 내 경험은 무시당해도 좋을까요? 
'정상적인' 가정은 이탈자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견디지 못해 집을 나온 가출은 비행으로 취급하며, "그래도 널 키워주셨잖니, 그래도 널 사랑하실거야"라는 말로 양육자에 대한 증오의 감정조차 허락하지 않아요.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강제적으로 연극을 해야 합니다. 

네 번째 이유: 피해자인 것도 서러운데, 편견 때문에 두 번 죽는다


 

나는 내가 원해서 폭력가정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피해자도 폭력가정을 자기 의지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피해자가 된 것은 내 책임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피해자이기 때문에 '인격/정신장애가 있다'거나, '가정폭력을 저지를 거야'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는 거예요.

실제로 성인이 될 때까지 가정폭력을 당한 피해자들 중에서는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피해자들이 모두 어딘가 문제있다는 식으로 낙인찍는 방식으로 이어져야만 하나요? 그런 태도야말로 우리가 피해자로서 발언하지 못하게 입막음하는 겁니다. 미리 판단하지 마세요. 또한, 실제로 치료받는 사람들에게 환자라며 시혜적인 태도로 동정한다거나, '역시 집안에 문제있는 사람은 사회적 부적응자야'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들은 피해자됨을 넘어서, 힘든 과정이지만 상처를 회복하고 치유하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세요. 

그리고, '폭력이 대물림된다'는 말은 정말 잘못되었습니다. 내가 원치않게 피해자가 된 것도 억울한데, 나를 예비 가해자로 만들고 있잖아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학생이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피해야 한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요. 더구나 피해자들이 반드시 다른 사람과 가정을 이루리라는 법도 없습니다. 이는 비혼주의자의 존재까지 지워버리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다섯번째 이유. 양가감정- 사랑과 증오, 해방과 부채감 사이의 줄타기

피해자들이 떠나지 못하게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건 바로 이 양가감정 때문입니다. 분명히 무언가 잘못되었고, 이게 폭력이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여전히 양육자는 날 사랑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양육자가 술주정을 하며 폭력을 가해도 다음날 그 사람은 미안하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합니다.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체벌해도 그 지옥같은 순간이 끝나면 많이 아팠냐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나를 안아줍니다. 

필자의 경우에는 애증의 감정과는 조금 다릅니다. 나를 투자상품쯤으로 여기며 본인의 잣대로 나의 성취를 재단하는 엄마가 너무 싫고 도망가고 싶지만, 동시에 분명히 물질적, 정서적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부채감을 느끼고 있어요. 

바로 이런 양가감정 때문에 우리는 감히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피해자라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이 나를 물질적, 정신적으로 지원해준 것, 그 사람의 사랑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러나 그대로 있으면 나는 계속 괴로울거고. 그렇게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말하고 싶었던 것(2) 지금, 폭력을 폭력이라 말하지 못한다


저는 가정폭력을 경험한 '성인'입니다. 특별히 저는 지금 성인인 상태를 조금 많이 강조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특별히 성인이기 때문에 경험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된 지금, 우리가 폭력을 폭력이라 말하지 못하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이유도 많이 겹치겠지만, 중복되지 않는 이유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경제적/정서적으로 독립한 상황이라 갈등이 종결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과거 아동, 청소년기에 경험한 것들을 가정폭력으로 인식했든 아니든 지금 내가 고통받지 않으니 굳이 피해경험을 나눌 필요성이 없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더구나 앞서 이야기한 3,4번째 이유는 더더욱 경험을 말하지 못하도록 입막음하고요. 피해를 나눠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더구나 말해봤자 나에게 비난이 돌아온다면, 누가 입을 열고 싶어할까요? 

둘째로, 스스로를 피해자로 정체화하는 과정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된 현 시점에서 폭력이 지속되건 그렇지 않건, 나 자신을 피해자로 정체화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끄집어내야 합니다. 내가 겪었던 경험들이 가정폭력으로 분류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니까요.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묻어두었던 기억과 감정을 되살려야 해요. 시간이 흘렀기에 그 당시만큼 아프진 않더라도, 굳이 아팠던 기억을 회상해 가며 내 자신을 피해자라고 말해야 할까요? 앞서 말한 양가감정도 스스로를 피해자로 정체화하기 어렵게 합니다. 

셋째로, 무엇보다 우리 존재가 가시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정폭력 피해자라 한다면 우리는 흔히 기혼 여성이나 아동/청소년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나는 기혼 여성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은 이미 너무 성장했으니 아동/청소년 학대 피해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기도 어렵거든요. 우리는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어요. 분명히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배제당해 왔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는 용기내어 가정폭력상담소를 방문했는데, 첫날부터 꽤 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 "젊은 애기 엄마인줄 알았어요" 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때 확실히 제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배제당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앞서 언급한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인자녀로서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정하고 피해경험을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아동/청소년기에 경험하는 학대는 성격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번 형성된 성격은 바꾸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또한 지금 당장은 더이상 폭력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치유되지 않은 기억은 무의식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가 언젠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어요. 그로 인해 내가 왜 이러는지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당신에게 상처가 있다고 흉보는 말이 아니에요. 아물지 않은 곳을 방치하지 말고 연고를 바르고 회복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내가, 당신이 피해경험을 말함으로써 성인자녀의 위치에서 피해경험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보다 확산되기 때문입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일 때, 그것은 더 이상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관련된 정말 유명한 구호가 있지요. (개인적으로 2nd wave의 구호 중 가장 좋아하는 문구입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느낀 점


1. 친부가 가해자, 친모와 자신이 피해자인 경우가 대다수였으며, 친모가 피해자고 자신을 목격자라고 하는 케이스도 많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자기 엄마에 대해서는 가해자라기보단 불쌍하다, 같은 피해자라는 동질감을 느끼는데 저는 친모= 주된 가해자, 친부는 방관자라 공감이 잘 안되었어요. 특히 PPT 내용에서도 "아빠는 그래도 날 사랑하는데..." 라는 문구가 들어갔는데, 친부만 가해자로 등장해서 친모가 가해자인 사람들, 혹은 모부 외에 다른 양육자가 가해자인 피해 생존자들을 배제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2. 발언기회가 한 번밖에 없어서 아쉬웠어요.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정말 많았는데, 앞에서 말한 분들과 겹치기도 했고, 워낙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위에 써놓은 것 외에도 하고 싶은 말은 많아요. 이 글에 구체적인 피해경험은 제대로 드러나 있지 않잖아요?) 실제로 발언할 때는 구조화가 잘 되지 않았던 듯. 
3. 주제 선택은 꽤 좋았어요. 특히 가해자들이 했던 말을 나눌 때, 그리고 양가감정에 대한 경험담을 나눌 때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듯. 마지막 끝날 때 가서 가정폭력을 신고해 본 사람들의 경험담을 듣는 시간을 배치하는 등, 현실적인 해결책까지 제시하려 했던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4. 집담회 형식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70명이라는 인원에 여성의전화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도 많이 섞여 있었을 것 같지만, 3시간 동안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부 듣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비효율적이다. 특히 동일한 가정폭력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청중은 발언기회를 중복되지 않게끔 하면서 패널 중심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건 피해경험의 무게를 달리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대규모의 인원을 모아 진행하고자 했다면, 5-6명 정도의 인원으로 다수의 모둠을 구성한 후, 그 소모임에서 주제에 맞게 이야기를 나누며 피해 경험과 그때 느낀 감정 등을 정리한 후, 모둠별로 한 명씩 대표로 발언하게끔 하는 것이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이 경우 모든 사람들이 발언할 수 있고, 또한 그 경험들을 취합할 수 있으므로 효율적이었을 듯. 물론 이런 구성이었다 해도 선착순 70명은 너무 많아요. 아무리 많아도 절반 수준이어야 합니다. 
5. 사회자분께서 "2000년대에 카페를 만들고 소모임을 했는데 생각보다 흥하지 못했다"라고 하셨습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시금 이런 자리가 만들어졌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자 합니다. 피해자에서 배제되어 있던 성인자녀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데 힘써주셨으면. 다음번에도 가능하면 또 참석할텐데, 그 때는 어제보다 더 좋은 집담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원문은 2017년 6월 1일, 이전 블로그에 게시되었습니다.





  1. 굳이 양육자라 워딩한 이유는 대개 모부가 양육을 담당한다지만, 이혼 가정이라 한 사람만 담당하거나 혹은 조모부나 다른 친척들이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2. 현재 교직에 종사하는 분들을 마냥 탓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30여명을 다 철저하게 케어하기가 쉬운가요. 그러니까 선진국처럼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야 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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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혜리(Hyeri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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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

11월 2일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인 쉼터에 가해자가 찾아왔다고 한다. 경찰은 주거침입한 가해자에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방관했으며 도리어 피해자와 보호시설을 비난하기까지 하는 등 보호시설의 의미도 모르고 가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했다고.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https://hotline.or.kr:41759/news/35057)

가장 사적인 공간이자 흔히 안식처로 묘사되는 공간인 가정. 그 공간에서도 폭력은 일상적으로 발생하며, 그 피해자는 주로 여성이다. 우리는 대개 함구할 것을 강요받고 또 스스로 입을 다문다. 왜냐하면 가정의 불화는 개인의 치부로 인식되고 흔히들 "참고 살아" "우리 집도 그래"라는 말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그렇게 묻힌다. 자신이 당한 일이 가정폭력인줄도 모르거나 알아도 적당히 참으면서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첨부된 사진을 보자. 2016년에 여성가족부에서 낸 통계자료다. 그러면 이런 가정폭력은 얼마나 자주 발생하냐고요? 1/2. 두 집 중에 한 집 꼴이래요. 이렇게 많이 발생하는데 정작 가정폭력 감수성은 부재하다.  실제로, 피해자를 입막음한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각주:1]

이와 같은 사례들은 그나마 피해를 신고한 케이스 중에서 기사가 난 경우이며 실제 신고율은 1.3%에 그친다고 하니 얼마나 가정폭력은 비가시화되어 있는지. 경찰은   가정폭력 인식 및 대응방침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피해자를 구제해야 할 경찰마저도 사적인 일로 치부하고 피해자를 불신하면, 대체 피해자들은 어떻게 자신의 피해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1. 경향신문, <가정폭력 신고했는데…가해 남편 말만 믿은 경찰>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708101557001&code=940202 오마이뉴스, <가정폭력 여성들이 두 번 신고하지 않는 이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155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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